[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27] 암표의 질긴 역사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면 고향 가는 기차편을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 웃돈을 붙인 암표 판매의 문화는 지금도 여전하다. 역 주변이나 극장 매표소 근처 으슥한 곳에서 이루어지던 거래가 온라인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암표(illegal ticket)는 임영웅이나 BTS 같은 톱스타들의 공연이건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건 인기 관광지의 입장권이건 분야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성행한다. 암표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처벌 조항도 만들고 블록체인 기술까지 동원하며 티케팅 방식도 바꿔보지만 표를 자동으로 사들이는 매크로 수법은 날로 진화하며 어설픈 장벽을 쉽게 허물어 버린다.
한정된 공급량이 압도적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때 무시무시한 암표 전쟁이 벌어진다. 21세기 최대의 빅매치로 불렸던 2015년 필리핀 복싱 영웅 파키아오와 메이웨더 간 대결 당시 링사이드 로열석의 암표 값은 우리 돈으로 2억7000만원까지 치솟았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6·7차전이 중립 지역인 잠실구장에서 벌어지던 시절 전국구 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해태 타이거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맞붙는다면 감옥의 암표상들이 모두 탈옥할 것이라는 농담은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암표 거래가 자유 시장의 기능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라고 간주하고, 성인끼리 자율적으로 거래하는 것을 법으로 막아버리는 것은 초과 행정 비용이 들어가는 비효율적인 조치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부당하고 불법적인 통로로 대량 구매하여 이익을 보는 행위는 시장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는 엄연한 범죄다.
90년대 브리티시 팝의 기수였던 오아시스가 15년 만에 재결합하는 공연 티켓이 사전 예약 판매가 오픈된 지 몇 분 만에 100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재판매되었다. 암표에는 국경이 없다. 그들의 이 노래가 마치 암표의 끈질긴 생명력을 얘기하는 것 같은 환청처럼 들린다. “우리는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본다/너와 나는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We see things they’ll never see/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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