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李 회담, 합의 못 해도 만나는 편이 낫다
여야 대표 회담은 당초 예정됐던 90분을 훌쩍 넘겨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합의했다고 밝힌 것은 민생 공통 공약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기구를 운영하겠다는 것뿐이다. 금융투자소득세와 관련해 주식시장의 구조적 문제 등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고, 현재 의료사태와 관련해 추석 연휴 응급 의료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어차피 큰 기대를 가졌던 만남은 아니었다. 여야 대표가 한 번 만나서 주요 쟁점에 대해 합의를 이루기에 지금 우리 정치는 너무나 극단적인 대치 상황이다. 섣불리 상대방 입장에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지지층의 불만과 실망을 살 위험이 있다. 여당 대표의 경우 대통령과 상의 없이 기존 입장을 절충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야 정당 대표 간의 회담이 지난 11년간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한 합의가 불발됐다고 했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확인했다고 했다. 의료사태에 대해서도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2025년 의대 정원만큼은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했다. 이렇게 직접 만나서 마주 앉아 얘기하다 보면 어느 대목이 막혀 있고 어느 대목은 그래도 통할 여지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타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99가지가 달라도 1가지 타협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발견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국민은 양측이 주고받은 대화를 되새겨 보는 과정에서 어느 쪽 이야기가 더 타당한지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국민여론이 의견을 조율해 나갈 수 있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갖는다. 적어도 서로 자기 지지층만 바라보면서 상대를 비난하는 목청 대결을 벌이는 것보다는 바람직하다. 양당 대표는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만남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러길 바란다.
한동훈, 이재명 대표 두 사람은 양 진영의 대표적인 차기 지도자감으로 꼽힌다. 국민은 두 사람이 만나서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지역에 따라, 세대에 따라 두 동강 난 이 나라를 이끌고 가기에 누가 적임자인지도 살펴보게 될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