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푹 꺼졌다, 이곳에서도 [사이공 모닝]

이미지 기자 2024. 9.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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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 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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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꺼지고 땅이 솟으면 ‘기적’일 텐데 멀쩡하던 땅이 꺼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 29일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에서 싱크홀(땅 꺼짐)이 발생해 운전자 2명이 중상을 입었고, 다음 날에는 인근 도로에서 도로 침하가 추가로 발견됐지요. 서울 종로에서도, 강남에서도 비슷한 도로 침하가 발생했습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지요.

베트남 호찌민시의 한 도로에서 발생한 싱크홀. /VN익스프레스

그런데 이런 싱크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땅이 꺼지는 현상은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요. 특히 급격한 도시화로 기반 시설이 증가하고, 지하수나 화석 연료 소비가 급증한 도시에서는 도시 전체가 가라앉는 지반 침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베트남 호찌민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안 도시 중 지반 침하 속도가 가장 빠른 곳으로 꼽혔던 도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반 침하와 땅 꺼짐 공포가 커진 지금, 가장 빠르게 가라앉는 도시 호찌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가라앉는 도시 늘어나

최근 몇 년 사이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비가 오면 물에 잠겨 사라지는 도로가 많습니다. 매년 우기마다 더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오토바이를 끌고 물에 잠긴 도로를 헤쳐나가는 사람이나 침수된 차량을 놓고 떠날 수 없어 차량 보닛 위에 올라가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 등이 보도되곤 하지요. 제가 살던 동네는 사이공 강이 가까웠는데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넘쳐 흐르곤 했습니다. 강변에 있는 고급 식당에 검은 강물이 넘실거리며 흘러들어오곤 했었지요.

올해 5월, 폭우로 잠긴 도로에서 이동 중 쓰러진 오토바이를 쳐다보는 남성. /VN익스프레스

지반 침하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안 도시들의 숙제입니다. 급격한 도시화로 지하수 사용이 늘고, 무거운 빌딩들이 늘어나면서 지반이 내려앉는 가운데 기온 상승으로 해수면까지 상승하면서 침하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이지요.

지난 2022년 싱가포르 난양기술대(NTU)가 네이처 지속가능성(Nature Sustainability)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호찌민시는 매년 평균 16.2㎜씩 가라앉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해당 연구를 위해 조사한 전 세계 48개 대규모 해안 도시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입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이 호찌민 뒤를 이었고, 인도 서부의 아흐메다바드,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와 미얀마 상업 중심지 양곤도 지반 침하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호찌민 도시에서도 싱크홀이 발생하곤 합니다. 동 단위로 지반 침하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빈떤군의 안락프엉 지역은 10년간(지난 2010~2019년) 지반이 81㎝나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가 일본 도쿄와 함께 베트남 호찌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태국 방콕 등에 싱크홀 관련 현황을 조사하겠다고 요청하기도 했지요.

메콩 델타 끼엔장성에서 땅 꺼짐이 발생해 2층 짜리 주택이 땅 속으로 내려앉았다. /VN익스프레스

지반 침하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올해 베트남 메콩 델타 끼엔장성 지역에서는 2층짜리 집이 지하 1층과 지상 1층으로 바뀌는 사고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지상 2층짜리 집이 땅속으로 푹 꺼지면서 지상 1층이 지하 1층으로 묻혀버리고, 밖에서는 2층이었던 부분만 보이게 된 것이죠. 이 지역에서는 올해 지반 침하로 주택이 파손된 경우가 26건에 달하고, 금이 가거나 붕괴 위험에 노출된 주택도 54채나 된다고 합니다. 메콩 델타의 또 다른 지역인 까마우성에서도 지반 침해 사례가 340건 가까이 보고됐습니다. 메콩 델타의 가뭄이 심해지면서 지하수가 말라 땅 꺼짐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땅이 꺼지는 공포라니. 상상만 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지요.

◇현황 파악이 필수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도시 개발을 통한 경제 발전을 포기할 수도, 안전 문제를 외면할 수도 없는 베트남 정부는 골머리를 앓습니다.

호찌민시의 경우 지역별 지반의 강도를 확인하고 나섰습니다. 지반이 약한 지역에 도로와 아파트,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건설 업계에서는 지반이 단단한 지역과 무른 지역을 구분해 기초 공사를 할 때 땅을 다지는 깊이를 다르게 합니다. 땅이 무를수록 철근 구조물을 더 깊게, 많이 박아야 해 공기(工期)와 건축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지요. 일부 도로에 침수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하고, 교각 전체를 들어 올리는 공사를 하기도 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도심 과밀화를 막고, 지반이 단단한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폭우가 멈춰도 도시는 넘치는 물로 출렁거린다. /호찌민=이미지 기자
폭우가 멈춰도 도시는 넘치는 물로 출렁거린다. /호찌민=이미지 기자

지하수 개발과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작년 신장률이 10%가량으로 높아 7억 달러 규모로 커진 베트남 생수 시장도 지하수 고갈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메콩 델타 지역과 호찌민에는 산업용 우물만 9650개, 가정용 우물은 99만개가 있다고 하지요. 여기서 매일 퍼올리는 지하수가 산업용은 200만㎡, 가정용은 84만㎡에 달합니다. 지하수를 퍼올릴수록, 땅속엔 빈 공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무분별한 취수를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베트남에서는 각 지역별로 침하 정도를 파악하고, 지반의 강도를 확인하는 작업이 수년째 이뤄지고 있습니다. 작은 면적의 싱크홀을 넘어 우리나라로 치면 동(洞) 단위 행정 구역 단위로 지역을 나눠 침하 정도를 파악하는 겁니다. 이에 따라 도시 계획을 수정·보완한다는 목표이지요. 문제 해결의 속도가 빠르냐 그렇게 않느냐는 차치하더라도, 국가 전체의 침하 문제에 대해 세밀한 현황을 파악하고 나섰고, 이 정보를 도시 개발 등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5년간 발생한 싱크홀 면적을 합치면 여의도 면적에 달한다고 합니다. (본지 31일 자 A12면 <끊이지 않는 싱크홀… 5년간 여의도만큼 땅이 주저앉았다> 참고) 일상적으로 오가는 도로가 갑자기 꺼질 수 있다는 공포. 명확하게 현황을 파악하고, 납득할만한 대안을 내놓는 것만이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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