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처럼···변치않는 뚝심으로 불혹맞은 신한동해오픈
5일 클럽72서 총상금 14억 놓고 3개투어 열전 시작
장유빈·김민규·고군택·이시카와·크루거 등 우승 후보
국내 남자프로골프를 대표하는 대회 중 하나인 신한동해오픈. 그런 만큼 대회 이름에 ‘동해’가 들어가는 이유도 웬만한 골프 팬은 다 알게 됐다.
1981년이었다.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 등 재일동포 실업가들이 모국 골프 발전과 국제적 선수 육성을 취지로 대회를 창설했다. 재일동포 골프 동호인들의 고국을 그리는 마음을 대회 이름에 담았는데 일본에서 고국을 보려면 동해를 바라봐야 하기에 동해오픈이라 지은 것이다. 신한금융그룹이 대회의 타이틀 스폰서로 나선 1989년부터는 신한동해오픈으로 열리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 초유의 순수민간자본은행인 신한은행과 제일투자금융, 신한증권이 공동 주최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대회 초대 집행위원 14인 중 유일한 생존 인물인 강정부 회장은 “한국에 우리가 직접 대회다운 대회를 만들자고 뜻을 모으게 됐다”며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동해’라는 아이디어를 냈고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동해를 바라보며 모국을 그리워한다는, 알려진 의미가 맞다”고 돌아봤다.
그 신한동해오픈이 올해 40회 대회를 치른다. IMF 외환위기 때를 포함해 몇 차례 열리지 않은 시기가 있어 올해가 40회다. ‘40주년’은 2021년이었다. 국내 순수 기업 스폰서 프로골프 대회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회가 바로 신한동해오픈이다. 제40회 신한동해오픈은 9월 5일부터 나흘간 인천 영종도의 클럽72 오션 코스(파72·7204야드)에서 펼쳐진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아시안 투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의 강자들이 모여 우승 상금 2억 5200만 원(총상금 14억 원)을 놓고 열전을 벌인다.
장유빈 vs 이시카와 료 vs 콩왓마이
신한동해오픈은 KPGA 투어 간판 대회이자 아시아의 중요한 대회다. 3개 투어 공동 주관이기 때문이다. 3개 투어 공동 주관은 국내에서 유일하며 신한금융그룹은 내년까지 이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다.
3개 투어 자존심 대결에서 한국의 자존심은 신한금융그룹 후원 선수이기도 한 장유빈이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멤버인 임성재, 김시우, 그리고 같은 아마추어 국가대표인 조우영과 힘을 모아 금메달을 딴 장유빈은 본격적인 프로 첫해인 올해 KPGA 투어의 대세로 떠올랐다.
우승 전력을 갖추고도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돌아서며 준우승 세 번을 기록하던 장유빈은 7월 군산CC 오픈에서 우승하며 마침내 프로 데뷔 첫 승의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해 아마추어 신분으로 우승한 데 이어 군산CC 오픈 2연패를 이룬 것이다.
직전 대회 18번 홀(파4)에서 50㎝도 안 되는 파 퍼트를 놓친 바람에 연장에 가서 결국 우승을 내줬던 장유빈이지만 트라우마는 없었다. 4타의 리드를 안고 나선 최종일 2위에 만족해야 했던 그는 3타 차 선두로 나선 군산 대회에서는 위기를 딛고 끝내 트로피와 함께 포효했다. 상금왕·제네시스 대상·최소타수상의 트리플 크라운도 충분히 가능하다. KPGA 투어에 트리플 크라운은 2021년 김주형이 마지막이다.
일본의 이시카와 료는 JGTO 통산 20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6월 재팬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19승째를 달성했다. 이시카와는 2009년 세계 랭킹 29위까지 올랐던 일본의 원조 골프천재. 2009년에 18세 80일의 나이로 JGTO 최연소 상금왕을 차지했고 아마추어 시절인 2007년에는 투어 첫 우승과 프로 전향 1년 만에 상금 1억 엔 돌파 등의 숱한 기록을 남겼다.
아시안 투어 대표는 태국의 파차라 콩왓마이다. 지난해 신한동해오픈에서 거의 우승할 뻔했던 선수다. 고군택에게 5타나 뒤진 채 최종 라운드를 출발했는데 버디 9개를 쓸어 담으며 무섭게 추격했다. 마지막 홀에서 3m 남짓한 버디를 놓친 게 아쉬웠다. 라운드 중반 고군택의 더블 보기에 콩왓라이는 3타 차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고군택이 버디 3개를 잡아 연장전이 성사됐다.
18번 홀(파5)에서 진행된 연장. 고군택의 두 번째 샷은 러프에 잠겼다. 콩왓마이에게 유리했는데 페어웨이 우드로 2온을 시도하려다가 오른쪽으로 치우쳐 물에 빠졌다. 파 세이브에 성공해 끝까지 물고 늘어졌으나 고군택의 버디에 고개 숙였다. 35회 대회 우승자 제이비 크루거(남아프리카공화국), 32회 우승자 가간짓 불라(인도), 호주의 앤서니 퀘일, 필리핀의 미겔 타부에나 등 아시안 투어 강자들이 대거 클럽72에 모습을 드러낸다.
고군택은 대회 2연패를 노리고 김민규도 강력한 우승 후보다. 김민규는 2022년과 올해 코오롱 한국오픈 우승자다. 올해 코오롱 한국오픈 준우승자로 JGTO가 주무대인 신한금융그룹 후원 선수 송영한, 2022년 신한동해오픈 우승자인 일본의 히가 가즈키도 골프 팬들이 눈여겨볼 다크호스다.
신한동해서 반전 발판 찾는 PGA 투어 영건
신한금융그룹에는 또 한 명의 후원 선수가 있다. PGA 투어 멤버인 김성현이다. 한국과 일본을 찍고 미국 진출에 성공한 김성현은 한일 양국 프로골프협회 선수권대회를 석권한 기록으로 유명하다. 2020년 월요 예선을 거쳐 출전한 KPGA 선수권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일본 PGA 챔피언십을 제패했다. ‘58타 사나이’라는 별명도 있다. 일본에서 뛰던 2021년 5월 골프파트너 프로암 토너먼트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2개와 버디 8개로 꿈의 스코어를 작성했다.
PGA 투어에 데뷔한 2022~2023시즌 포티넷 챔피언십 단독 2위 등으로 바람을 일으킨 김성현은 올해는 다소 주춤했다. 그래도 5월 더 CJ컵 바이런 넬슨 공동 4위 등으로 시즌 상금 104만 달러를 벌어 PGA 투어 멤버의 ‘위엄’을 보여줬다.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하지 못한 김성현은 후원사 주최 대회에서 반전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2라운드 뒤 컷 탈락해 팬들에게 주말 경기를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까지 한 번에 씻으려 한다.
꿈의 무대 밟는 고교 1년생
대회 이름에 ‘신한동해’가 들어가는 아마추어 대회가 올해 처음 열렸다. 신한금융그룹이 신한동해오픈 자문위원단과 함께 대한골프협회 주관 대회를 만든 것. 신한동해 남자아마추어선수권이다. 지난달 강원 원주의 오로라골프앤리조트(파70)에서 국가대표와 국가상비군 등 쟁쟁한 아마추어 선수 112명이 참가한 가운데 4라운드 72홀 스트로크플레이로 치러졌다.
상위 입상자들에게는 국가대표 선발 포인트 등 각종 혜택과 부상이 주어졌는데 특히 우승자에게는 올해 신한동해오픈 출전권이 돌아갔다. 주인공은 서강고 1학년생인 국가상비군 유민혁. 4라운드 합계 15언더파 265타를 기록했다. 7월 드림파크배 아마추어선수권 우승 등 올해 벌써 3승째다.
유민혁은 “좋은 기회를 주신 신한금융그룹, 대한골프협회, 그리고 오로라골프앤리조트 등 대회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 우승을 바탕으로 더욱 훌륭한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신한동해오픈 주최사인 신한금융그룹과 대회 자문위원단은 40여 년 전의 신한동해오픈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로 아마추어 선수를 지원하고 한국 골프 꿈나무들을 육성하기 위해 이번 대회를 창설했다”며 “국내 골프 유망주들이 더욱 성장해 큰 무대로 뻗어나갈 도약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한동해의 사나이들
배상문은 이 대회 역사에서 마지막 ‘멀티 챔피언’이다. 2013년 인천 송도의 잭니클라우스GC 코리아에서 열린 대회에서 그는 2·3라운드 연속 노 보기라는 절정의 플레이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같은 해 PGA 투어 첫 우승과 함께 최고의 해를 완성한 것이다. 2014년도 배상문의 해였다. 역시 잭니클라우스GC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배상문은 2위와 3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해 5타 차의 압도적인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15번 홀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려 보기를 적었으나 마지막 18번 홀에서 먼 거리 버디 퍼트로 팬 서비스를 확실히 했다. 당시 PGA 투어 2승째를 달성한 뒤 한 달 만에 국내 팬들 앞에서 남다른 ‘클래스’를 뽐내 ‘역시 배상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승 상금 2억 원 전액을 최경주재단과 함께 고향 대구의 불우 이웃을 돕는 데에 써 더 큰 박수를 받았다.
배상문 이전 신한동해오픈의 사나이는 최경주와 최상호가 있다. 최경주는 경기 용인의 레이크사이드CC 남코스에서 열렸던 2007년과 2008년에 연속 우승했다. PGA 투어 2승을 기록 중이던 최경주는 2007년 매 라운드 선두를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로 우승했다. 앞서 2005년 연장 접전 끝 준우승, 2006년 3위로 돌아섰던 아쉬움을 훌훌 털었다.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최경주는 경기 중반 짐 퓨릭(미국)에게 잠깐 선두를 내줬지만 후반 맹타로 신한동해오픈 첫 우승을 완성했다. 2008년 우승은 최경주에게 생애 첫 2연패라는 영광을 안겼다. 선두에 2타 뒤진 채 최종일 경기에 나선 데다 첫 홀 보기로 출발했지만 2번 홀부터 징검다리 버디로 분위기를 가져왔다. 11번 홀에서 환상적인 이글 퍼트로 공동 선두에 오른 뒤 결정적 버디를 보태며 승기를 틀어쥐었다.
통산 43승으로 KPGA 투어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전설 최상호는 신한동해오픈에도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출전 선수 명단에 다양한 국적의 강자들이 많아졌는데 1985년 당시 한국의 간판스타 최상호는 일본 선수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자존심을 지켜냈다. 1993년과 1995년 우승도 최상호의 차지였다. 1993년 대회는 그때까지 가장 화려한 해외 톱 랭커들의 출전으로 화제였다. 아시안 투어 상금 랭킹 2위의 셰진성(대만), 미국의 게리 노퀴스트, 호주의 브레드 앤드루스 등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하지만 우승은 그들 중에서 나오지 않았고 최상호가 가져갔다. 우승 없이 넘어갈 뻔했던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맞은 1995년 대회. 최종일 선두에 4타나 뒤져 이번엔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최상호는 후반 9홀에 따라잡았다.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잡아 최경주, 마이크 채터(미국) 등을 연장으로 끌고 간 것. 연장전 버디로 최상호는 기어이 대회 최초의 3회 우승 기록을 썼다. 모두 한성CC에서 이룬 업적이다. 세 차례 우승 기록은 지금까지도 최상호만이 갖고 있다. 최경주는 1995년 대회에서 아깝게 우승은 놓쳤지만 당시 프로 2년 차로서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박상현은 우승은 한 번이지만 2018년 보여준 ‘임팩트’가 정말 컸다.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1~4라운드 내내 선두를 내주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로 우승했는데 특히 최종일 경기는 박상현의 골프가 얼마나 단단하고 강렬한지 증명된 라운드였다. 버디만 8개를 잡아 63타를 적었고 합계 22언더파 262타의 대회 최소타이자 코스 레코드로 넉넉하게 우승했다. 난도 높은 코스에서 나흘간 72홀을 치르면서 보기는 단 2개였고 버디 24개를 쓸어 담았다. 2위 스콧 빈센트(짐바브웨)를 5타 차로 따돌렸다. 2013년과 지난해 공동 6위에 올랐고 다른 해에도 10위권 성적이 보통일 만큼 박상현은 신한동해에서 활약상이 뚜렷하다.
2020년 김한별, 2021년 서요섭, 지난해 고군택은 신한동해오픈 우승으로 자신들이 왜 KPGA 투어의 대표 영건인지 증명해 보였다. 고군택은 지난해와 같은 코스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2013·2014년 배상문 이후 10년 만의 2연패 기록에 도전한다.
작품이 된 신한동해오픈
신한동해오픈의 40회 역사가 ‘작품’에 담겼다.
신한금융그룹은 국내 유일 원로 골프작가로 알려진 신정무 화백에게 신한동해오픈 40회를 기념한 작품을 의뢰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전통을 잇고 미래를 열다’다. 신한동해오픈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신 화백은 신한동해오픈 창설 주역인 재일동포 사업가들이 대회 창설을 결정한 시간과 장소인 1980년 일본 고마CC를 그림에 담았다. 고마CC는 간사이 지역 동포 경제인들이 뜻을 모아 만든 골프장이다. 다보탑을 빼닮은 탑이 있고 그늘집은 한옥 형태다. 클럽하우스 대표 메뉴는 곰탕, 불고기, 냉면.
그림 속 티잉 구역을 벗어나 시선을 위로 옮기면 시간의 흐름과 대회의 발전상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프로골프 대회로 성장한 현재의 신한동해오픈이 찬란하게 표현돼있다. 대회 3라운드가 열리는 토요일 저녁에 인천 파라다이스시티호텔에서 과거 우승자들을 초청해 기념 만찬을 여는데 그림은 여기에 전시된다.
신한금융그룹은 40회 대회 개최 기념 아트 포스터도 제작했다.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한국 대표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 2002 한일월드컵 20주년과 지난해 K리그 40주년 기념 작품을 진행한 스포츠 아티스트 박승우(Kaze Park) 작가의 작품이다. 초대 챔피언인 한장상부터 지난해 39회 우승자 고군택까지 총 34명 역대 우승자들의 영광의 순간이 그림 속에 살아 숨 쉰다. 작품의 배경에는 대회의 타이틀인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가 있고 고마CC의 다보탑 재현 석탑, 한국을 상징하는 숭례문이 함께 담겼다.
신한동해오픈은 크고 무거운 트로피로도 유명하다. 2010년 26회 대회를 맞아 새롭게 제작한 뒤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무게 12.2㎏에 높이 71㎝, 지름 27㎝인 PGA 챔피언십의 워너메이커 트로피가 크고 무겁기로 유명한데 신한동해오픈 트로피는 지름과 높이는 워너메이커 트로피와 비슷하고 무게가 1.8㎏ 더 나가는 14kg이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양준호 기자 사진 제공=신한금융그룹·KPGA migue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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