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찬구의 스포츠 르네상스] ‘금광 효과’로 스포츠를 구원케 하라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2024. 9. 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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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지금은 프리미어리그 사우스햄프턴을 포함, 다수 축구팀을 보유한 ‘스포츠 리퍼블릭’의 CEO가 된 사회학자 라스무스 안케르센이 2010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가 저서 ‘금광 효과(The Gold Mine Effect)’를 준비하며 ‘왜 대한민국은 여자골프 최강국인가’에 관해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연구 주제는 브라질의 축구, 미국의 농구, 케냐의 중장거리육상, 대한민국의 여자골프 등 “왜 특정 국가에서 특정 스포츠가 강한가”였다.

그의 결론은 시장과 생태계였다. 어느 시기 영웅이 등장해 부와 명예를 가진다. 그를 추앙하는 한 세대 아래 유소년들이 대거 입문하고, 경쟁 수준이 높아지며, 가족·사회의 투자가 뒤따른다. 그들이 최고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좌절과 장애물은 영웅이 보여준 영광과 보상을 욕망하며 인내한다. 이렇게 축적된 인적 인프라와 육성 시스템이 생태계를 이뤄 선순환되기 시작하면 다른 사회에서 같은 수준으로 뒤쫓아가기 어려워진다.

그래픽=이철원

K 여자골프는 1977년생 박세리의 1998년 US OPEN 우승 이후, 그를 추종한 1987~89년생 최나연, 박인비, 김하늘, 유소연, 신지애 등 ‘세리 키즈’가 LPGA 상위권을 독식했다. 염원대로 명예와 경제적인 보상을 누렸고, 이후 선순환이 이어졌다. 금광 효과는 시장과 산업도 견인했다. 1998년 당시에는 골프장 약 120개였고, KLPGA 7개 대회 총상금은 8억원 미만이었다. 24년에는 골프장이 540개를 상회하고, KLPGA 31개 대회 총상금은 331억원에 달한다. 골프산업은 20조원 이상으로 성장했다.

파리올림픽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금메달 수상 직후 배드민턴 안세영의 협회 저격 발언이 트리거가 되어 체육계를 향한 비판이 쏟아진다. 안세영은 부상 이후 재활 과정에서의 협회 비효율, 개인자격 활동 범위 제한, 용품 선택에 있어서의 자율성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협회는 협회장 및 임원들의 구태, 국가보조금과 특정 스폰서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등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다. 협회의 재정자립도는 46.73%로 파리올림픽 금메달 종목 중 최하이고, 기부금 실적은 전무하다.

배드민턴협회가 이런 방식으로 선수 관리와 재정구조를 운영해 온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1996년 금메달리스트 방수현이 “혼자 금메달 딴 것이 아니다. 특혜를 주기 어렵다”는 발언을 한 것이나, 대한체육회장이 “이용대도 묵묵히 했다”라고 한 발언에서 ‘예전부터 해 온 방식인데 뭐가 문제냐’는 시각이 보인다. 권위주의 시대를 통해 성장한 체육의 틀에서 ‘태극전사’가 개인을 논하는 것은 금도였다. 협회는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선수를 출전시켜 성적을 내는 것이 지상과제였고, 국가보조금과 스타플레이어의 인지도를 자산으로 받는 용품업계의 후원금으로 재정을 운영해왔다.

안세영은 7년을 기다렸다고 호소했다. 김연아, 박태환 등 다른 종목 스타들, 해외 배드민턴 선수들이 상업적 자율성을 보장받고, 전문가들에 의해 코칭과 트레이닝을 받으며 좀 더 완성도 있는 선수의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대표팀 체제안에서 한정된 자원을 공유하며 ‘형평성에 맞게’ 훈련하는 방식은 월드클라스로 나아가기 위해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협회는 ‘할 만큼 했다’고 강변하나, 눈높이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경기력에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는 용품을 협회와 스폰서 계약을 맺은 브랜드로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것도 선수 입장에서는 상식적이지 않다.

배드민턴은 스타플레이어와 저변을 둘 다 가진 종목이다. 방수현, 박주봉, 하태권, 이용대 등의 스타들을 꾸준히 배출해 왔다. 국내 배드민턴 인구는 약 3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 참여 인구는 3억3000만명으로 큰 시장을 가진 종목이다. 그러나 놀랍고도 안타까운 것은 배드민턴협회가 인지하고 있는 데이터다. 협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등록선수 2438명, 동호인수 1만9947명에 불과하다. 이는 그동안 협회가 엘리트 선수의 육성을 위주로 운영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배드민턴에 ‘금광 효과’의 길을 권한다. 안세영의 발목을 묶지 말고 날개를 달아줘라. 상업적, 사회적, 스포츠적으로 월드스타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고, 그의 영광을 추종하는 ‘키즈’를 육성하라. 협회는 300만명에게 서비스하는 조직으로 발전해야 한다. 300만명의 잠재고객을 원하는 스폰서들이 줄을 설 것이다. 팬, 소비자, 미디어와의 관계설정을 통해 부가가치 창출을 고민해야 한다. 공공이 제공하는 파이에 기대고 있는 제로섬 게임에 익숙한 기득권들은 현 체제가 변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시장이 커지면 그들의 기회도 많아진다. 리그와 클럽이 활성화될 것이다. 레슨시장과 인프라 및 용품시장도 성장할 것이다.

배드민턴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체육이 이제는 눈을 뜨고 시장과 스포츠 소비자를 봐야 한다. 국가는 생활체육, 스포츠산업, 유·청소년 스포츠교육 등 다양한 수요에 응해야 한다. 올림픽 메달이 종목의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다. 대한체육회도 이미 “스포츠를 통한 국민의 건강과 행복, 사회통합 실현”이라는 사명을 명문화해 놓고 있다. 관행에 입각한 과거가 아닌 시장과 산업화를 지향하는 미래에 답이 있다.

올림픽에서 역대급 메달 실적이 나왔지만, 대회 이후 체육계 행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한다. 예전 같으면 국위 선양 프레임에 과정도 묻혔겠지만 이번엔 양상이 다르다. 이번 사안이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닌 본질적으로 대한민국 사회와 시장의 스포츠에 대한 선진화된 요구와 구체제 대한민국 체육 간의 가치 충돌의 과정이라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여론과 언론은 물론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개혁을 요구하는 이례적 상황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정책의 시간이 열렸고, 체육계는 대한민국 사회와 국민이 스포츠에서 바라는 시대적 요구가 무엇인가를 원점에서 생각해 내부 개혁에 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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