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기후 소송 ‘5대4’ 박빙 대결 펼쳐진 까닭[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지난 2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아시아 최초로 기후정책에 대한 판단을 내놨습니다. 2019년 소송이 제기된 이후 약 4년 만에 내려진 판단이었습니다.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된 부분은 1가지였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이 2030년과 2050년의 감축 목표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 사이 시점에 대한 목표는 정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기후정책이 최소한의 일관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중간 시점의 목표치도 법으로 정해둬야 한다는게 헌재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9명의 헌법재판관이 가장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탄소중립법에 쓰여진 ‘배출량’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였습니다. 용어 해석에 따라 정부가 내놓은 기본계획이 전면 수정돼야 할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다수 의견은 위헌이었습니다. 9명 중 5명이 정부가 기본계획에 사용한 배출량 개념이 잘못됐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위헌 결정을 내리려면 9명 중 6명의 동의가 필요해 결과적으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배출량 목표치 산정 방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연도별·부문별 감축목표의 전제인 ‘배출량’ 기준이 틀렸다는 겁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배출량’ 개념을 별도로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세우면서 기준이 되는 2018년의 배출량은 온실가스 총배출량으로 정하고, 2030년 배출량은 온실가스 순배출량으로 정했습니다.
순배출량은 온실가스 총배출량에서 흡수량을 뺀 값입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한해 6억톤의 탄소를 배출하고, 산림 등을 통해서 1억톤의 탄소를 흡수했다면 총배출량은 6억톤이지만 순배출량은 5억톤이 됩니다.
청구인측은 이같은 개념 적용이 위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관된 기준을 택하지 않고 탄소 감축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꼼수’를 부린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헌법재판관들도 공개변론 과정에서 배출량 개념 해석을 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정부는 1997년 체결된 기후변화협약인 교토의정서 체제 국가 사례를 참조한 것일뿐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덕영 교수(청구인측 참고인) 일부 국가는 순배출량 대 순배출량으로 비교해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교토의정서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건 없습니다.
문형배 재판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도 기준연도가 총배출량이면 목표연도도 총배출량으로 하고, 기준연도가 순배출량이면 목표연도도 순배출량으로 읽어야 문언에 맞지 않나요?
박덕영 교수 그게 옳은 해석입니다. 정부에서 2018년은 총배출량으로 하고, 2030년은 순배출량으로 해야 40%를 맞추기 쉽습니다.
문형배 국제사회에서 총배출량-순배출량으로 제출한 나라 있다고 해도, 국내법과 시행령을 만들었다면 우리가 법률을 해석해야 하는 것이지. 외국 사례를 들어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5명의 헌법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습니다. 정부의 자의적인 법률 해석이 제도의 실효성을 해쳤다는 겁니다. 개념 정의는 정부의 판단에 맡길 것이 아니라 법을 통해 확실하게 정해둬야 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위헌의견은 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 기본계획 등에서 배출량 개념을 ‘순배출량’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만큼 산림 확대,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등 흡수·전환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반면 위헌 소지가 없다는 기각의견은 배출량 개념에 대한 해석은 정부의 권한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음은 이종석·이은애·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의 기각의견입니다.
기각의견은 기준연도와 목표연도의 배출량 개념을 달리 설정한 것을 치명적 오류로 볼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탄소중립기본법 이전에 있었던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녹색성장법), 파리협정에 따라 정부가 UN에 제출한 탄소감축계획 등에도 기준연도와 목표연도의 배출량 개념이 차이가 있다는게 근거입니다. 배출량 기준을 통일하지 않을 때 생기는 감축량 차이 또한 위헌 결정을 내릴만큼 중대하지는 않다고 봤습니다.
사실 환경단체에서는 이번 결정에 아쉬움이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크게 4가지 쟁점 중 단 1가지 쟁점만 헌법불합치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2030년까지 40% 감축이라는 목표가 부족하다는 주장이나 구체적인 감축경로의 부적절성, 산업 부문 탄소 감축 목표의 하향 조정에 대한 문제제기 등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 헌재 결정이 대한민국 기후 대응에 큰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국회가 기후 입법을 하고, 정부가 기후 정책을 만들 때 ‘미래세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기 때문입니다.
헌재는 2026년 2월 28일까지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탄소 감축 목표가 없어져버리는 최악의 공백 사태가 발생합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내용 외에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입법과 정책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국회는 4년의 공방, 2번의 공개변론, 104쪽의 결정문이 당부한 기후위기 대응을 더이상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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