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한 줄’의 힘…어느 한편 허투루 쓰이지 않은 드라마 길라잡이

안진용 기자 2024. 9. 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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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평론가가 쓴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드라마는 ‘대중’ 문화다. 늘 대중의 범주에 속하는 우리 곁에 있다. 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끔은 귀한 줄 모른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그걸 상기시키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빤하다’고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 흥미로운 의미를 도출하고, 또 그걸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가 펴낸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페이지2북스 펴냄)은 그동안 그가 공들여 본 드라마 속에서 주옥같은 대사와 속내를 꺼내 자신의 이야기와 버무린 에세이다.

정 평론가는 "어디 가서 드라마 보는 게 일이라고 하면 모두가 ‘너무 좋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하루에도 몇 편씩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을 챙겨 보고 글을 쓰는 건 때론 고역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다. 지상파,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뿐만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유튜브 등에서도 신작 드라마가 소개된다.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괜찮은 드라마를 고르는 건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정 평론가의 책은 일종의 길라잡이가 된다. 해당 드라마를 본 사람에게는 재차 곱씹을 기회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시간을 투자해 꼭 챙겨볼 것을 권하는 일종의 추천서다.

정 평론가는 5개의 파트에 걸쳐 드라마 총 45편을 다룬다. 파트1의 제목 ‘그저 당신이면 족합니다’는 ‘연인’의 대사다. 조건부터 따지는 세상, 조건없는 사랑에 빠진 남녀의 사랑을 다룬 이 사극을 통해 저자는 "난 그저 나로 족합니다. 날 사랑하는 나, 그 무엇이든 난 나면 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라고 일러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명대사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를 통해서는 늘 옆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망각하고 사는 엄마를 비롯해 가족의 소중함을 되짚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는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 거야. 근데 니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대사로 위로한다. 이 드라마에서 워킹맘의 애환을 다루는 장면을 함께 보던 아내에게 "너무 애쓰며 살지 말자. 그런 의미에서 저녁은 치킨에 맥주?"를 권했다는 저자의 자기 고백은 드라마 한 편, 대사 한 줄에 위로받는 여느 필부필부의 모습이 투영됐다.

정덕현 평론가

배우 전도연, 정경호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아 쓴 ‘네 가치는 가격으론 못 매겨’ 챕터는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1조 원의 남자’라 불리는 일타 강사가 한끼 도시락의 대가로 1:1 과외를 해주겠다는 제안을 내놓으며 "가격과 가치는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척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위로다. 저자도 예외는 아니다. 원고 청탁에 달가워하면서도 ‘그래서 원고료가 얼마인가요?’라는 질문을 입 속에서 몇 번이나 되뇐 후에야 뱉어내고, 또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생각하는 ‘가치’에 턱없이 부족한 ‘가격’의 글값을 받고 원고를 넘겨야 하는 스스로를 두고 번민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 평론가가 수 년 간의 시간을 투자해 꼼꼼히 지켜본 드라마 45편에 대한 고찰과 그 이야기에 제 삶의 고리를 연결시키는 솜씨가 빛나는 ‘어느 하루 눈부시기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의 ‘가치’는 권당 1만7500원이라는 ‘가격’을 크게 뛰어 넘는다.

짧은 호흡으로 각 드라마의 본질을 꿰뚫는 이 책을 두고 ‘더 글로리’·‘도깨비’의 김은숙 작가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쇼츠처럼 재밌다"고, ‘동백꽃 필 무렵’·‘쌈, 마이웨이’의 임상춘 작가는 "아껴 먹고 싶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까먹어버린 그놈의 금박 초콜릿 같은 책"이라고 추천사를 적었다. 그리고 배우 김혜자의 명연기가 찬란하게 펼쳐졌던 ‘눈이 부시게’의 대사를 이 책의 제목으로 허락한 이남규 작가는 "이 책은 당신의 삶을, 당신의 드라마를 더욱 반짝이게 할 것이다"라는 상찬을 내놨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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