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붕괴위험 빈집들…고령주민 “우리 죽으면 동네도 끝”
- 피란기부터 형성된 생존형 주택들
- 일단 비면 안채워지고 옆집도 비어
- 다세대주택 ‘반 빈집’도 큰 문제
부산 도심이 ‘빈집 감염병’에 시달린다. 빈집 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빈집은 바이러스처럼 확장성이 강하다. 빈집이 있으면 주변에 빈집은 더욱 늘어난다는 사실을 국제신문 취재진은 서구 초장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빈집 감염의 동심원
오래된 빈집은 또 다른 빈집을 양산했다. 지도를 보면 초장동은 지난 7년 새 마치 바이러스가 퍼지듯 오래된 빈집과 가까울수록 빈집이 늘었다. 현장에서 찾은 골목 하나가 모두 빈집인 밀집 구역도 동심원을 그리듯 확산했다.
그렇게 한번 사람이 떠난 초장동 빈집에는 사람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2017년 빈집(106곳) 가운데 2020년 사람이 들어온 집은 14곳에 그쳤다. 이마저도 2024년 9곳으로 줄었고 4곳은 빈집, 1곳은 철거됐다. 2020년 새롭게 발생한 빈집(125개) 중에서도 4년 뒤 사람이 들어온 집은 10개에 불과했다.
취재진이 살펴본 오래된 빈집은 공통된 특징을 지녔다. 주로 경사가 높은 곳에 지은 지 오래된 협소주택(50㎡ 이하·15평)이었다. 국공유지를 불법으로 점유한 무허가 주택(51%)은 물론이고 차나 오토바이가 다니지 못하는 좁은 길이 유일한 통로인 빈집도 많았다. 내구연한(30년)이 지나 빛바랜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 깨진 채 방치된 집도 더러 있었다.
2024년 현장 조사에서는 2017년·2020년에는 드물었던 새로운 유형의 빈집도 등장했다. 초장동은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과 부산대병원에 가까울수록 평지에 가깝고 식당·시장 등이 몰려있다. 지도를 보면 이곳(점선 내)은 2017년·2020년에 빈집이 드물었으나 2024년 조사에선 대거 늘었다. 시내 중심부 인근도 빈집으로 인한 슬럼화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빈집이 늘어난다는 건 단순히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낡은 집은 제때 손 보지 않으면 쉽게 담벼락이 무너지고 지붕이 내려앉는다. 내구성이 약한 탓에 화재에도 취약하다. 폭우가 쏟아지면 이웃 주민은 옆집이 무너질까봐 불안에 떨어야 한다.
초장동은 빈집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며 희망마저 비어가고 있었다. 취재진이 만난 주민은 본인과 초장동의 ‘공멸’을 자주 언급했다. 김도희(70) 초장동 10통장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몰리는데 살 곳이 없으니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도 제대로 없는 급경사지까지 집을 지었다”며 “그때 지은 집은 지금도 화장실에서 나온 오수가 골목 아래 얕게 묻힌 관으로 모여 심한 악취가 난다. 여름에는 방역해도 모기가 들끓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여기는 ‘내 죽으면 끝이다’는 생각으로 포기한 동네다. 10년 전만 해도 사람이 많아서 괜찮아질 거란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기대 안 한다”며 “죽을 때까지 살다가 우리가 다 죽으면 동네도 끝이지 뭐”라고 푸념했다.
▮‘반 빈 집’ 다세대주택도 즐비
초장동 슈퍼마켓의 70대 사장은 지도에 빨간 점을 찍으며 중얼거렸다. “영식이는 요양원에 갔고 6-40번지 할매는 돌아가셨지.” 그렇게 초장 6통의 골목 하나가 빨간 점으로 뒤덮였다. 모두 떠난 이의 빈 자리였다. 점이 스무 개를 넘어서자, 그는 헛기침하며 펜을 내려놨다. “예전에는 빈집도 몇 채뿐이고 금방 사람이 들어왔는데 요새는 너무 많아서 기억을 못하겠다”고 취재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욕보소”라는 인사를 건넸다.
주민이 체감하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단독주택 ‘빈집’ 뿐만 아니라 다세대주택 내 ‘빈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층짜리 건물에 1, 3층이 비어 있는 경우다. 기본적인 유지·관리가 이뤄져 겉보기엔 거주자가 있는 건물 같지만, 전체 5, 6세대 가운데 1, 2세대만 사는 집이 대다수라는 게 주민의 설명이다. 이번 조사에서 이런 곳은 빈집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빈집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마을 주민 A(50대) 씨는 “그나마 다세대 건물에 젊은 사람이 살았는데 다 빠져나가 젊은 사람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고 말했다.
▮짙어지는 초장동 주민 한숨
초장동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촌이 형성된 곳이다. 이후 1970~80년대 산업화 시기 슬레이트집으로 고치거나 2층으로 증축해 지금의 모습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 보니 초장동 빈집에는 오랜 시간 내재한 도시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체계적인 도시계획에 따른 개발이 아닌 궁핍했던 시절 생존을 위해 급히 지었던 집이 이제는 부산 시민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다.
국제신문과 함께 이번 조사에 참여한 경성대 도시계획학과의 카마타 요코 선임연구원은 “거주 환경이 열악하고 소유주가 오래 방치한 빈집이 많은 곳일수록 새로운 빈집이 빠르게 늘었다”며 “특히 4년 전 조사 때보다 빈집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빈집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고, 빈집의 유형도 달라졌음이 확인됐다. 적극적인 지자체의 개입으로 빈집의 확산을 저지해 주민을 공포·체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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