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이 방송 장악” “일제가 만행?”…이런 사람들이 역사교과서 만들었다

김원진·탁지영 기자 2024. 9. 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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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력평가원 ‘검정 자격’ 논란

친일 인사·이승만 독재 옹호, 일본군 ‘위안부’ 축소 서술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필진이 뉴라이트 성향에 가까우며, 교과서에도 이 같은 인식을 반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학력평가원의 검정 자격 검증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달 30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초중고교 검정교과서 심사 결과를 관보에 게재했다. 내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새 교육과정이 적용돼 교과서가 바뀐다.

이번에 처음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는 친일 인사·이승만 독재 옹호, 일본군 ‘위안부’ 축소 서술 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필진은 과거 일제 식민지나 이승만·박정희 정부 등 독재정권을 두둔하거나 미화하는 듯한 글과 발언을 수차례 남긴 인물들이다. 새 역사교과서 공개 이후 복수의 역사 교사들은 “전형적인 뉴라이트식 역사 인식이며, 교과서에 이들의 인식이 반영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과서 필진 가운데 이병철 문명고 교사는 2022년 8월26일 역사연구재단 세미나 자료에서 “한국사의 어느 시대보다 현대사만큼은 방송 기획자와 대중 역사가의 편향된 의식이 현저하게 보인다”며 “대한민국 건국 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에 관해서는 거의 융단폭격하듯 비난하는 것이 다수”라고 주장했다. 이 교사는 또 “좌파 성향의 인물들이 수십년간 방송 미디어에 진출해 각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방송 미디어를 통해 좌편향된 교육을 학생에게 심어 대한민국의 국가관과 자유시장 체제를 뒤엎고 좌파 중심의 국가 주도 체제를 실현하고 있다”고 썼다.

“집필진,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제작 관련 세미나 참여 이력”

또 다른 필진인 배민 부산외대 교수는 2021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일제시대는 간악한 일제에 의한 수탈과 착취, 억압과 각종 비윤리적인 만행의 역사다?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2022년 9월에는 역사연구재단 세미나에서 “진정한 착취와 수탈 관계는 일제시대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라기보단, 19세기 조선 사회 속 양반과 농민의 관계로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썼다.

배 교수는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달 30일 자신의 블로그에 “(교과서는) 공적인 발언의 공간이므로 내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내가 맡은 교과서 내용 부분 그 어디에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썼다. 역사교과서에 자신의 생각을 담지 않고 정부의 검정 기준에 맞춰 교과서를 썼다는 취지다.

역사학계와 역사 교사 등은 이 교사, 배 교수 등이 역사교과서 관련 세미나 등 공적 영역에서 밝힌 일제 식민지 옹호 등의 입장과 교과서 서술 방향이 일치한다고 반박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집필진은 뉴라이트 사관을 담은 역사교과서를 제작해야 한다는 목표를 명확히 밝혀온 세미나 등에 참여했고, 이번 역사교과서 곳곳에는 교묘하게 집필진의 입장과 견해가 반영됐다”고 했다.

또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필자 6명이 의견을 나누고, 여러 챕터를 공동 집필한 정황도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1일 교과서 집필자였던 김건호 교육부 청년보좌역에게서 “(특정 부분을 맡은 게 아니라) 공동으로 집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김 보좌역은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 집필을 마무리한 뒤 지난해 11월 교육부로 자리를 옮겨 이해상충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종 필진에서 김 보좌역의 이름은 빠졌다.

한국학력평가원이 검정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혹에 대해 교과서 검정을 담당했던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는 사흘째 “확인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교과서 검정 신청을 하려면 ‘최근 3년간 검정 신청 교과와 관련된 도서를 1권 이상 출판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학력평가원은 검정 실시 공고 직후인 지난해 7월 도서 내지에 ‘2008년 수능 대비서’라고 적힌 수능 기출 문제집을 출간했다. 검정 자격을 얻으려 ‘표지갈이’만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김원진·탁지영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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