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공직 인사와 민주주의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도전 중 하나는 정치가 정책을 통해 사회문제를 푸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면서 정책을 집행하는 기술관료제가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선출된 권력에 기반한 대의기구와 전문성에 기반한 기술관료제는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오늘날 국가권력을 분점한다.
기술관료제의 구성요소인 공공조직의 수장인 장관, 위원장, 공공기관장 등의 임명은 대의제와 기술관료제의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선거만큼이나 중요한 민주적 행사다. 수장을 관료제 내부 출신으로 임명하면 ‘관피아’라는 말에서 보듯이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 물론 그 내부자가 외부의 정치세력과 긴밀한 인적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민주적 통제의 약화가 아니라 과잉을 염려해야 할 수도 있다. 반면 수장을 정치인으로 임명하면 논리상으로는 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 전문성이 객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데도 정치인을 임명하는 이유는 논공행상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민주적 통제를 확보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런 정치적 임명은 현재 한국의 제도와 관행의 기본이면서, 과거부터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같은 비판에 시달려 왔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는 기존의 제도와 관행에서 미처 발현되지 않았던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바로 해당 조직의 목표 및 사명과 지명된 기관장의 개인적 신념 혹은 경력 간 거리가 있는 인사가 잦아졌다는 사실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정부 조직의 와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부적절한 수장을 임명하는 것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추진되는 특정 부처 해체나 통폐합과 다름없는 결과를 낳게 될 인사라는 의미이다.
기술관료제는 선거에 기반한 민주적 대표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정권을 통한 민주적 통제하에 놓여야 한다. 하지만 기술관료제는 특정 시기의 정권뿐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민주적 통제, 즉 국민의 이름으로 제정되고 개정되는 헌법과 법률의 통제하에 이미 놓여 있다. 그리고 법률은 모든 공공조직들의 존재 이유와 목표를 규정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제1조 목적조항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 의의를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이라 적고 있다. ‘국민’은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공공조직으로 하여금 모든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라고 위임해 놓은 것이다. 이는 특정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정치적 통제 시도 이전에 기본적으로 합의된 보다 근본적인 민주적 요청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 독립기념관뿐 아니라 모든 공공조직은 그 기본적 사명에 따라 ‘적임자’의 범위가 가늠된다. 특히 다양하고 상반된 정책을 집행하는 거대 중앙부처와 달리 조직 목표가 상대적으로 분명히 기술되어 있는 소규모 기관의 경우, 중요한 것은 후보자가 해당 조직의 목표와 사명에 일치하는 개인적 신념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이다. 신념의 차이로 인해 수장이 조직 목표에 반하는 결정을 하거나 목표를 방기해도 좋을 공공조직은 없다. 성과의 예측 가능성은 공공조직의 중요한 미덕이다.
기관장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기관장이 되어 조직의 목표를 추구할 경우 개인의 양심에 반하는 일이 발생한다. 반대로 조직의 목표를 거슬러 개인 혹은 진영의 신념을 추구하려는 것이라면 관료조직의 장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마음껏 펼 수 있는 ‘정치’를 하는 것이 맞다. 더욱이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민, 공익, 법률에도 봉사해야 하는 직업공무원들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현실은 이런 이상과는 차이가 있다. 특수 목적의 소규모 조직들일수록 기관의 독립성이 기관의 성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폐쇄적인 엘리트 집단 지배체제에서는 제도적으로 기술된 독립성은 인사 하나로 사실상 무력화된다. 표면상 상호 견제 관계로 보이는 대의기구와 기술관료제의 밑바닥에는 국민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촘촘하게 얽힌 사회관계망이 깔려 있다.
조직 목표에 부합하는 신념은 적임자의 역량 중 하나이다. 선거민주주의의 부산물로서 고위 공직이 전리품이 되는 현상에는 장단점이 공존한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조직의 기능을 형해화하는 인사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지 않다. 와해와 견제는 다르다. 조직 목표에 부합하는 인물을 세우고, 헌법에 따라 외부적 통제를 가하는 것이 견제이다. 민주주의는 와해가 아니라 견제의 원리 위에 서 있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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