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정부, 노후 계획도시 정비 약속 꼭 지켜라
빠른 선도지구 지정으로 지역 주거 환경 개선 해야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 살면 늘 마주하게 되는 것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23년을 기준으로 할 때 부산에는 1만1330동(연면적 9231만7223㎡)의 아파트가 있다.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등 전체 주거용 건물(23만6696동·1억2462만4082㎡)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다. 그러나 아파트 연면적으로만 따지면 이 수치는 전체의 74.1%까지 치솟는다. 17개 시·도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아파트가 사실상 부산지역의 핵심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게 마련. 부산의 주거용 건축물 23만6696동 가운데 16만2633동이 준공된 지 30년이 지났다.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하면 상당수 시민이 낡은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대규모 아파트단지도 상황은 좋지 않다. 만덕지구는 1985년, 모라지구는 1989년, 해운대 1·2지구는 지난 1997년 각각 준공됐다. 건축물의 내구성 한계와 최근 조성된 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기반시설 등을 고려하면 어떤 식으로든 주거 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 같은 현상은 전국도 마찬가지다. 이에 정부는 그동안 노후 아파트 단지 정비 때 적용됐던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하고 제도 개선에 들어갔다. 국회도 국민 여론을 수용, 지난해 12월 ‘노후 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낡은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을 높이고 안전진단을 면제하는 등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 4월 27일부터 시행됐다. 국토부는 신속한 사업 진행을 위해 ‘노후 계획도시 정비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별법을 둘러싸고는 잡음도 많았다. 법을 만든 취지가 수도권 1기 신도시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 4월 나온 선도지구 선정 공모가 논란에 불을 붙였다. 국토부는 사업 대상을 경기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으로 한정했다. 특별법 통과 이후 노후 계획도시 재개발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던 비수도권 지자체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국토균형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여론이 악화되자 국토부는 비수도권 지자체의 신속한 기본계획 수립을 지원하겠으며 사업 타당성 등을 따져 선도지구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5월에는 부산에서 설명회도 가졌다.
이후 상황은 다소 개선되는 조짐을 보인다. 국토부는 지난달 30일 회의를 열어 노후 계획도시가 있는 전국 23개 지자체의 기본계획 수립 추진 현황 등을 들었다. 부울경의 사업 대상지는 부산·울산·경남(광역지자체)과 창원·김해·양산(기초지자체) 등 6곳이다. 이날 부산은 현재 사업 진척 상황을 설명한 뒤 노후 계획도시가 많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급적 빨리 선도지구 지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7월 부산의 기본계획 수립 착수보고회에 참석, 자문을 실시한 바 있다.
지역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도 고무적이다. 시는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후 계획도시 정비 대상 지역을 해운대 1·2, 화명·금곡, 만덕·만덕 2, 다대 1~5, 모라·모라 2지구로 변경한 뒤 본격적인 기본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그동안 후보지로 거론됐던 개금·학장·주례 일대는 일단 대상에서 제외됐다. 아울러 시는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시민참여위원회와 자문단 등을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주민 간담회와 설명회도 수시로 개최한다.
시에 따르면 해운대 1·2, 화명·금곡지구는 2025년 8월에 기본계획 수립이 끝난다. 만덕·만덕 2, 다대 1~5, 모라·모라 2지구는 2026년 3월에 모든 일정이 완료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부산과 안산 수원 용인 등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한 4개 지자체(대상지 9곳)는 현재 유력한 선도지구 지정 후보군에 속한다. 사업 타당성 적정성 효율성 등이 확인되고 지자체와 주민의 의지가 강하면 기본계획이 완료되기 이전이라도 선도지구 지정을 할 수 있다는 뜻을 국토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내비쳤기 때문이다.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누리고자 하는 바람은 모든 국민이 갖고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노후 계획도시 정비에 대한 부산 시민의 열망은 이미 확인됐다. 그런 만큼 남은 과제는 정부의 변함없는 사업 수행 의지와 전방위적 지원이다. 지역과 더 많은 소통을 통해 애로를 파악, 해결함으로써 향후 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믿음을 주지 못하면 주택 정책에 대한 신뢰성은 한순간에 추락할 수밖에 없다.
염창현 세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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