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모두가 자신의 책을 쓰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 전 도서관에서 열린 자그마한 행사에 참석했다. 평일 저녁인 데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많은 분이 참석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행사 순서 중 참가자들이 각자 쓰고 싶은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굉장히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다. 한 참석자분은 30년 넘게 영업 일을 하면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책으로 엮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반려견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는 분은 반려동물의 장례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고, 다이어리 꾸미는 방법을 책으로 쓰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 나이와 성별 직업 관심사 모두 달랐지만, 자신이 쓰고 싶은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모두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간한 ‘2023년 출판시장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71개 출판사의 총매출액은 전년 대비 0.1%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42.4% 하락했다. 매출은 그대로인데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했다는 암울한 지표는 현 출판시장의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단군 이래 출판업이 호황이었던 적은 없었다지만, 이러한 내리막의 끝이 과연 어디일까 싶다. 사람들이 책 자체에 조금도 관심이 없으며 앞으로 변화할 여지도 없다면, 마땅한 탈출구가 없는 셈이다. 다만 사람들이 책과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하기에는, 행사장에서 만난 이들의 눈빛은 분명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실제로 출판 경기가 안 좋아지는 것과 달리,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독립출판 플랫폼 인디펍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독립출판물 수는 2022년 484종에서 2023년 765종으로, 무려 58% 늘었다.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북페어 ‘마포 책소동’과 ‘마우스 북페어’ 역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는 얼어붙은 출판 경기와 달리 자신의 책을 쓰고자 하는 욕망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과거처럼 단순히 책을 읽고 구매하는 소비자에서 그치지 않고 책을 쓰는 생산자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을 문화적인 역할 및 중요성을 제외하고 단순한 하나의 소비 상품으로 본다면, 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다만 책 쓰기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면, 개인이 책과 맺는 관계를 오로지 ‘독자’에만 한정 지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 반면 책을 쓰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개인이 책과 맺는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책의 장르나 주제, 내용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에너지,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책 한 권 분량을 단숨에 쓸 수는 없기에, 마감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꾸준히 써야 한다. 또한 간신히 쓴 글을 진저리가 날 만큼 보고 또 보며 다듬어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독자가 관심 가질 만한 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고, 혹시라도 내가 쓴 단어 혹은 문장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사지 않을까 고민해야 한다. 쉽고 가벼워 보이는 책마저 이처럼 험난한 여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것은 분명, 책을 쓰는 과정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출판에 대한 진입장벽이 점점 낮아지며 누구나 책을 쓰게 된다면 책과 작가의 권위가 떨어지는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책 쓰기를 통해 책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이들은 지금보다 많아질 것이다. 독서를 통해 자기 삶의 의미를 찾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면, 책 쓰기 역시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책을 쓰는 과정은 독서를 하는 것만큼이나 개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서가 유익한 행위라면, 책 쓰기도 그만큼 유익한 행위일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삶의 경험과 치열한 고민을 자유롭게 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될 만한 이야기를 망설이지 않고 마음껏 쏟아낸다면,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책을 쓰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치열한 삶의 언어가 서로 부딪히는 시끌벅적한 세상은, 우리가 우려하는 것보다 더 다채롭고 살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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