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끼니] 국밥의 밥 혹은 국밥과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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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은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우려낸 돼지 국물과 다양한 부위의 수육으로 자신만의 돼지국밥 스타일을 자랑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백반에 어울리는 쌀, 국밥에 어울리는 쌀, 김밥에 어울리는 쌀, 볶음밥과 비빔밥에 어울리는 쌀을 선택할 수 있다.
돼지국밥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국과 밥에 대해 이정도 기준은 가짐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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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은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우려낸 돼지 국물과 다양한 부위의 수육으로 자신만의 돼지국밥 스타일을 자랑한다. 그런데 국과 수육만큼 큰 비중을 가지는 밥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신경을 쓰지 않는다. 파는 사람뿐만 아니라 먹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밥은 그냥 ‘당연히 있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이미 명칭에서 절반을 차지하듯 밥은 국밥의 완성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쌀의 대부분은 탄수화물이다. 그리고 이 탄수화물을 구성하는 핵심은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이라는 두 가지 전분이다. 쌀밥 찰밥 보리밥 등의 물리적 특징은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의 비율로 결정된다. 즉 같은 쌀밥이라도 품종에 따른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의 비율에 따라 경도와 찰기가 달라진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백반에 어울리는 쌀, 국밥에 어울리는 쌀, 김밥에 어울리는 쌀, 볶음밥과 비빔밥에 어울리는 쌀을 선택할 수 있다. ‘밥 장사’를 하면서 자신이 파는 음식에 가장 적합한 쌀을 선택할 수 있는 선구안이 있다면? 이건 엄청난 경쟁력이다.
그럼 국밥에 어울리는 밥, 그리고 그런 밥을 가능하게 하는 쌀 품종은 따로 있을까? 당연히 그렇다.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의 비율에 따른 물리적 특성만 이해하면 이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국밥 장사를 하시는 분은 거의 없다. 아주 드물게 과학적 원리는 몰라도 경험적으로 국밥과 찰떡궁합인 쌀을 선택하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이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을 분석해보면 결국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의 비율로 귀결된다. 경험도 쌓이면 과학이 된다.
밥이 아무리 좋은들 완성도 떨어지는 국물을 더 낫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밥은 국을 망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밥은 임기 말년의 지지율 낮은 대통령과 비슷하다. 차기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없어도 누굴 못되게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좋은 국밥집을 꼽는 기준은 국이 6할이고 밥이 4할이다. 국이 수준 미달이면 더 볼 것도 없다. 그런데 국은 훌륭한데 밥이 형편없을 땐 참 답답하다.
국밥에 어울리는 밥은 아밀로스 비율이 높아 찰기는 적고 전분이 국물에 잘 녹아나지 않아야 하며 뜨거운 밥보다 살짝 식은 밥이 좋다. 국물에 말았을 때는 밥알이 서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물에 적시면 금방 풀어져야 하고 밥알과 밥알 사이에 공기층도 적절해야 한다. 이런 밥이 국밥에 어울리는 밥이고, 이런 밥이 국 맛을 다치지 않게 하는 밥이다.
토렴은 우리 선조들께서 고안해낸 정말 훌륭한 조리법이다. 하지만 밥이 국과 어울리지 않으면 토렴은 정말 끔찍한 결과를 낸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따로국밥을 권한다. 일단 밥의 상태를 보고 말아 먹을지 따로 먹을지를 결정하라는 의미다. 밥을 말아보면 국밥에 어울리는 밥인지 아닌지 금방 드러난다. 국에 밥을 말고 숟가락으로 서너 번 휘저어 주고 밥이 풀린다? 그럼 양호하다. 그런데 국에 밥을 말고 숟가락 등으로 꾹꾹 눌러줘야 한다? 그럼 글렀다고 보시면 된다. 돼지국밥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국과 밥에 대해 이정도 기준은 가짐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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