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어렵게 얻은 판결, 어렵게 세운 판례

기자 2024. 9. 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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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 인식의 변화
동성부부 피부양 자격 인정
어렵게 나온 이 판례가
사회적 약자 보호 이끄는
부동의 이정표로 남길 바라

소송 사건엔 사건마다의 운명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한할 때도 있다. 지난 7월18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성소수자가 자기의 권리구제를 위해 무척이나 힘들여 얻은 것이지만, 내 보기에 이 동성부부는 운이 아주 좋았다.

1963년 제정될 당시의 구 의료보험법은 부양가족 중 하나인 ‘배우자’의 개념에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1976년 법이 개정되면서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규정은 삭제되었고, 현행의 국민건강보험법에도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자격관리업무지침’을 마련하여 실제의 운영에서는 사실혼 배우자를 법률혼 배우자에 준하여 피부양자로 인정해 왔다. 공단이 피부양자를 인정하는 범위와 요건은 여러 차례에 걸쳐 변해 왔고 이는 건강보험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을 넓게 보호하기 위한 행정목적에서 그리된 것이었지만, 아무튼 자격관리업무지침의 제정과 운영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기본적 사정이 돼 주었다.

직장 가입자인 소성욱씨는 2020년 공단 홈페이지에 자신이 김용민씨와 동성부부임을 밝히고 피부양자 자격 취득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긍정적 답변이 나왔다. 혼인 의사로 부부 공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인우보증서를 내어 김용민씨는 피부양자로 인정되었다. 운이 좋았다.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자 착오 처리라는 이유로 피부양자 취급이 취소되기는 했으나, 만약 당초부터 피부양자의 자격을 취득하지 못했더라면 이번 판결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이 판결 이유로 내세운 평등권 침해의 논리는 이렇다. 즉 피부양자 자격을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 집단에게는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 집단에게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하다는 것이다. 이런 판결을 내릴 만한 진보적 사법철학을 가진 판사들이 속한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된 것도 원고인 김용민씨에게는 행운이었다고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에서는 견해가 갈렸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이 느는 쪽으로 대법원의 구성이 변해 왔는데도 관여 대법관 중 3인만 다수의견에 반대한 것도 놀랍다.

물론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선 법이론적 비판이 나와 있다. 우선 판결 자체에 별개의견이 붙어 있다. 그 주장의 핵심은 두 가지다. 다수의견이 동성 동반자는 동거·부양·협조·정조 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어 공단이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의 집단과 차이가 없다고 봤으나, 별개의견은 동성 간 결합엔 혼인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다수의견이 건강보험이라는 기본적 사회보장제도에서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하는 건 합리적 근거 없는 차별로 위법하다고 봤으나, 별개의견은 법률이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데도 입법이나 위헌심판이 아닌 판결로 이들을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법원의 ‘법률수정적 법형성’에 해당해 타당치 않다고 했다.

이런 비판론에는 쉽게 찬성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성소수자의 권리 보호 문제를 두고 국회나 행정부는 늘 소극적이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여 왔고,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 말고는 어느 국가기관도 이들을 위한 실효적 권리구제에 나서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의 딱한 현실이다. 법이 당장의 시급한 권리구제를 못한다면 그런 법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번 대법원 판결 중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에는 경구 같은 감동적 표현들이 많다. 그중 하나를 옮겨 본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성적 지향을 받아들이고 동성 동반자로서 인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이를 외부에 공표하는 것은, 편견과 차별을 감내하더라도 자기 존재를 긍정하고 약속대로 동성 동반자에 대한 애정과 동거·부양·협조·정조 의무를 다하겠다는 깊은 고민과 결단의 표명이다. 이는 인간 존엄성에 바탕을 둔 그들의 실존적 결단이다.” 고등법원 판결의 다음 문장은 또 어떤가.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아름답다. 어렵게 나온 이 판례가 성소수자, 나아가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이끄는 부동의 이정표로 남길 바란다.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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