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02> 매천 황현의 대상(大祥) 때 제문을 지어 부친 난곡 이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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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하루저녁에(噫噫一夕·희희일석)/ 천지가 무너졌다오.
위 제문은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1861~1939)의 '매천 황현을 기리는 제문'(祭黃梅泉文·제황매천문)으로, 그의 문집인 '난곡존고(蘭谷存稿)'에 있다.
위 제문은 이건방이 1912년 8월 7일, 황현의 대상(大祥·죽은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 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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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하루저녁에(噫噫一夕·희희일석)/ 천지가 무너졌다오.(天地崩塌·천지붕탑)/ 권세가들은 (일본) 조정에서 춤을 추고(崔盧拜庭·최로배정)/ 꼬리 흔들며 귀 늘어뜨린 채 아양 떤다오.(尾搖耳帖·미요이첩)/ 오직 그대만이 비분을 참지 못하고(惟君慷慨·유군강개)/ 한 번 들이마시고 목숨을 버렸다오.(隕于一歃·원우일삽)/ 그 개결함은 달과 별이고(星月其潔·성월기결)/ 감도는 것은 하늘의 향기라오.(天香其浥·천향기읍)/ 맵디매운 기개가(
之氣·열렬지기)/ 만겁이나 드리우리라.(垂于萬劫·수우만겁)
위 제문은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1861~1939)의 ‘매천 황현을 기리는 제문’(祭黃梅泉文·제황매천문)으로, 그의 문집인 ‘난곡존고(蘭谷存稿)’에 있다. 전체 글의 일부이다.
황현은 24세인 1878년 서울에 가 이건창·김택영과 교유했다. 52세인 1906년 ‘형남 물가에서 소를 타다’(荊渚騎牛·형저기우)란 시를 지어 “나라가 망할 때는 권세가들이 먼저 망가지는 법(亡國先亡大夫·망국선망대부)/ 양나라 조정에 춤추는 이는 절반이 최씨요 노씨라네.(梁庭舞蹈半崔盧·양정무도반최로)”라고 했다. 당나라가 망하니 당을 무너뜨린 후량(後梁) 조정에 당나라 귀족들이 춤추고 있더라는 말이다. 당시 대한제국이 그랬다. ‘최로(崔盧)’는 망족(望族·명망이 있는 집안), 즉 권세가이다. 국록 먹는 이들이 일본에 빌붙어 아양 떠는 세상이었다.
그가 56세 되던 1910년 음력 7월 28일 이건방에게 간찰을 보냈다. ‘난곡 이건방에게 드리다’(與李蘭谷建芳·여이난곡건방)로 (‘매천집’ 4) 국가 존망이 닥친 시점에 지식인이 느끼는 불안감이 담겼다. 고종이 일본에 나라를 물려준다는 이른바 ‘양국조(讓國詔)’가 음력 8월 3일 구례에 도착했다. 그러자 8월 7일 황현은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위 제문은 이건방이 1912년 8월 7일, 황현의 대상(大祥·죽은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 때 보냈다.
얼마 전 필자와 고전 공부를 하는 학인들과 전남 구례군 광의면 월곡마을 매천 황현 순국지인 매천사를 답사했다. 황현의 우국심에 감명받은 학인들은 자주 그의 지조를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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