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뉴라이트’ 교과서 검정 통과, 역사교육 우경화 우려한다
내년 고교 1학년 학생부터 쓰게 될 한국사 교과서 검정 결과가 나왔다. 교육부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교과서 검정 결과를 보면 9종 교과서 모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했다고 명시했다. 윤석열 정권 들어 ‘민주주의’만으론 부족하다며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 당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반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유의 다양한 의미가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담고 있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좁혀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에 처음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는 역사교육 우경화 징후를 보여준다. 이 교과서는 이승만·박정희의 공을 부각한 반면 일본군 ‘위안부’ 기술을 축소하고 ‘친일’을 희석했다. 이승만 집권기를 ‘장기독재’라고 한 다른 교과서와 달리 ‘장기집권’으로 표현했다. 1946년 6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말한 이승만의 ‘정읍 발언’에 대해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후 어떻게 됐을까’라며 토론 과제로 제시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현행 헌법으로는 평화 통일을 뒷받침할 수 없다며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여 헌법을 개정하였다’고 중립적으로 기술하는가 하면 산업화 성과는 5쪽에 걸쳐 상세히 다뤘다.
이 교과서는 ‘위안부’ 문제를 다른 교과서의 절반 분량에, 그것도 참고자료와 연습문제 형식으로 다뤘다. ‘강제동원’ ‘구타와 성폭력’ 등 구체적 기술이나 일본 정부의 역사 부정은 담지 않았다. 시인 서정주 등 친일 지식인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질문하는 식으로 우회했다. 뉴라이트의 역사수정주의 인식이 담긴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선장 유죄 선고 사실, 검찰 수사 결과 등을 나열하면서도 국가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학력평가원은 공공기관을 연상시키는 이름과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사설 입시교재 출판사다. 검정 자격을 갖추는데 필요한 출판 실적이 미미한데다 집필자 중 한 명이 교과서 검정을 앞두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 보좌관이 된 것으로 나타나 검정 신청 자격 시비도 일고 있다.
역사 연구의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존중하고, 국가 건설이나 근대화에 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독재의 역사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는 이 사회의 합의된 원칙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청소년 역사교육에 쓰일 교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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