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명암 짚은 차별성 돋보여…탐사 보도도 나왔으면
경쟁·승리자 중심 보도서 벗어나
난민대표팀·성차별 등 시각 다양화
기후위기 관점서 본 기사도 인상적
남녀 성비 5대5였던 올림픽 폐막 뒤
여자 선수들 지면서 사라져 아쉬워
안세영 보도, 좀 더 적극적이었어야
스포츠에도 솔루션 저널리즘 필요
생활체육·노인 스포츠에도 관심을
요 몇년 새 국내 대부분의 신문은 스포츠 지면을 서서히 줄여왔다. 국내외의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 결과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언론사들이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다. 한겨레도 얼마 전부터 한주에 다섯면이던 스포츠면을 네면으로 줄였다. 지면이 줄었다고 콘텐츠 자체가 준 건 아니다. 스포츠 담당 기자들은 온라인에 다양한 속보와 읽을 거리들을 내보낸다. 때로는 스포츠 관련 이슈를 다룬 기획기사들도 발굴한다. 최근 파리올림픽 기간에는 1면을 포함한 종합면에도 많은 기사가 실렸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 12기 열린편집위원회 세번째 회의에서는 한겨레의 스포츠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제정임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권오성 기후솔루션 미디어팀장, 김지현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손종욱 아주대 학생(전 학보사 편집장), 송지현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장지연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경영기획실장, 진선미 언론인권센터 이사(노무사), 한겨레 주주·독자 온라인 커뮤니티 ‘한겨레:온’의 형광석 편집위원이 참석했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신승근 뉴스룸국 뉴스총괄부국장, 서정민 문화스포츠부장이 참석했다.
제정임 오늘은 파리올림픽 보도를 포함한 한겨레의 스포츠 콘텐츠에 대해 평가와 제언을 해보기로 했다.
장지연 이번 파리올림픽은 최초로 선수들의 남녀 성비를 50 대 50으로 맞춘 대회였다. 기업들의 광고에도 여성 선수들의 활기찬 모습이 굉장히 많이 등장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올림픽이 딱 끝나니까 그 많던 여자 선수들이 지면에서 다 사라졌더라. 메달이 비인기 종목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통해 인류가 기획해냈던 방향, 그 기획 의도를 좀 이어갔으면 좋겠다. 또 요즘에는 야구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은데, 경기를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즐기는 사람에게도 렌즈를 맞추는 게 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지현 올림픽 기사 중 파리에 취재하러 온 외국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기사는 여러 시각에서 올림픽의 명암을 조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성평등을 내세웠지만 성차별이 여전했다는 올림픽 결산 기사는, 성비 균형에만 초점을 맞춘 타사 보도와 차별성 있는 기사였다. 이번에 한겨레의 스포츠 기사들을 죽 훑어보면서 엘리트 체육 일색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동호회나 생활체육 쪽도 균형 있게 다뤄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교토국제고의 고시엔(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우승 기사들은 되게 관심 있게 읽었다. 끝으로 제안 하나 하고 싶다. 우리 아이 학교에서 체육행사를 하는데 종목을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이렇게 정해 놓았다고 해서 좀 황당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 아직도 그런 성별 고정관념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보도를 해주면 어떨까 싶다.
김지현 스포츠 기사들을 인공지능(AI) 시대와 결부지어 생각해봤다. 단순히 경기 결과를 전하는 기사들은 인공지능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겨레 기사들은 선수들의 서사를 담고 있는 기사나 맥락적인 기사들이 더 많더라. 이런 기사들은 사람 기자만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콜센터 노동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상담 분야에 인공지능이 많이 도입되면서 노동 강도가 오히려 세졌다고 한다. 예전엔 단순 상담과 고강도 상담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죄다 고강도 상담이라는 거다. 기사 쓰기에 인공지능이 활용되면 언론사도 고강도 업무가 늘고, 그걸 소화해낼 능력 있는 기자들만 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지점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권오성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가 열리면 많은 언론들은 국가 간 경쟁이나 승리자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겨레는 올림픽 때문에 외곽으로 밀려나는 시민 이야기 등 올림픽의 다양한 측면을 짚어주는 기사들이 많아서 돋보였다. 기후운동단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후위기 관점에서 올림픽을 조명한 기사들도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르몽드, 가디언, 뉴욕타임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국내외 주요 매체들과 한겨레의 인터넷 사이트를 비교해 봤다.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 시각화에 신경을 쓴 다른 언론사와 견줘 한겨레의 뉴스 서비스는 좀 단조로워 보였다. 한겨레 나름의 이유와 판단이 있겠지만, 그 내막을 모른 채 단순 비교하는 독자 입장에선 한겨레가 올림픽을 소홀하게 다룬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모든 언론사가 뛰어드는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는 창의적인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형광석 올림픽과 관련해선, 난민 대표팀 이야기를 다룬 ‘구정은의 현실 지구’와 패럴림픽을 앞두고 유럽으로 간 박경석 전장연 대표 기사가 눈에 띄었다. 꼭 필요한 보도였다고 생각한다. 차드의 ‘1점 궁사’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생활체육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다.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 파크골프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노인 스포츠의 활성화는 건강 비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노인 스포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달라. 스포츠 인권, 학생 선수의 학습권 문제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진선미 한겨레의 스포츠 보도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비교해봤다. 파리올림픽 기사들을 제외하면, 평소 스포츠 기사들의 양이 타사와 견줘 너무 적었다. 내용도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타사들을 보면, 좀 더 공을 들인 듯한 기사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전반적으로 한겨레의 역량이 발현이 잘 안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담당 기자들이 너무 적어서 그런 건지 궁금하다.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가 제기한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보도를 해줬으면 한다. 인공지능 기술 활용과 관련해서는 한겨레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손종욱 스포츠를 되게 좋아해서 메이저리그 등 경기 중계를 즐겨 보는 편이다. 한겨레 기사에선 ‘이창섭의 MLB와이드’나 ‘한준의 EPL리포트’, 김양희 기자의 칼럼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다만, 스포츠 분야에서도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면 탐사보도나 솔루션 저널리즘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겨레는 방송이 아니라 신문이니까 더더욱 텍스트에 집중해서 조금 더 심층성 있는 보도가 필요할 것 같다. 기자는 스포츠 마니아보다 정보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겨레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들도 다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좀 아쉽다. 최근 문화방송(MBC) ‘스트레이트’에서 축구협회 관련 탐사보도를 했는데, 그런 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제정임 한겨레의 파리올림픽 보도를 다른 매체와 비교해 봤는데, 질적으로 훌륭한 기사들이 꽤 있었다. 선수들의 가슴 뭉클한 휴먼스토리에 집중하려 한다거나, 파리올림픽이 표방한 통합·성평등·친환경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루려고 애를 쓴 것이 그 예다. 올림픽 기간에 모처럼 여성 선수,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비중 있게 실려서 좋았는데, 평상시에도 이런 노력이 이어졌으면 한다. 안세영 선수의 폭로는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만큼, 인력 여건상 스포츠팀이 취재하기 어려웠다면 사회부 기자들이라도 나서 적극적으로 사안의 전모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정민 소중한 의견 잘 들었다. 변명을 하자면, 저희는 타사와 견줘 스포츠 담당 인력이 너무 적다. 팀장을 포함해 4명이 경기 결과 속보도 쓰고 서사가 있는 기사도 써야 하니 버거운 측면이 있다. 사실 모든 기자는 스토리가 있는 기사를 쓰고 싶어 한다. 인공지능이 단순 사실 전달 기사들을 잘 처리해줄 수 있다면 기자들이 깊이 있는 기사를 쓰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금방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신승근 말씀해주신 내용들 잘 새겨서 뉴스룸국에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 다음 회의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리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열린편집위원들의 단소리 쓴소리
열린편집위원들은 그달 주제에 대한 논의가 끝난 뒤, 한겨레의 논조와 기사 쓰는 방식, 뉴스 서비스 등 콘텐츠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독자 눈높이에서 비판과 제언을 쏟아낸다. 회의에서 나온 위원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 기후대응댐은 해당 지역에서는 정말 절박한 문제다. 한겨레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형광석 위원)
•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보도할 때 한겨레는 다른 언론과 달리 특정 대학교를 낙인 찍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측면을 잘 짚어줘서 좋았다.(손종욱 위원)
• ‘콜버스’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지방소멸, 고령화 시대를 맞아 대중교통의 역할과 이동권 보장 문제를 좀 더 깊게 조명해서 추가로 다뤄줬으면 좋겠다.(김지현 위원)
• 폭염을 산재 관점에서 꾸준히 보도한 점을 칭찬해 주고 싶다. 미국 대선 기사가 굉장히 많은데, 약간은 거리를 두고 ‘우리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좀 쿨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장지연 위원)
• 한겨레의 정보기술(IT) 관련 기사들을 보니, 너무 빅테크 기업 위주로 보도가 되는 것 같더라. 유망한 작은 기업들도 조명을 많이 해주는 게 한겨레다운 보도가 아닐까.(송지현 위원)
• 직업이 노무사이다 보니 노동 기사를 유심히 본다. 차별성 있는 기사가 많아서 유익하더라. 아쉬운 점도 있다. 얼마나 인력이 부족하면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그렇게 적은 인원으로 커버하는지 좀 궁금하다.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라도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진선미 위원)
• 한겨레 사이트의 검색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시리즈 제목을 정확하게 넣어도 검색이 잘 안 된다. 시리즈 기사에 이전 기사들이 묶여 있지 않는 것도 서비스 차원에서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한다.(제정임 위원장)
열린편집위원회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열린편집위원들은 8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55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한 콘텐츠는 ‘‘○○○ 능욕방’ 딥페이크, 겹지인 노렸다…지역별·대학별·미성년까지’ 기사였다.
1. ‘○○○ 능욕방’ 딥페이크, 겹지인 노렸다…지역별·대학별·미성년까지 사회부 고나린 기자
한줄평: “사건 하나를 시작으로 깊게 파고들어 이슈화” “불법합성물 성범죄 실태를 생생한 사례로 드러내”
2. 급식실 기온 50도…“정수기 없어, 수돗물 끓여 식으면 마셔요” 한겨레21부 손고운 기자
한줄평: “배식대 너머의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기사”
3. “코로나 치료제 1명분 남은 날도”…국정과제 팽개친 윤석열 정부 사회정책부 손지민 김윤주 신소윤 기자
한줄평: “코로나 ‘방임’ 상태인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 잘 짚은 기사”
4. 33살 파킨슨병, 1·2심 ‘산재’ 인정…근로복지공단은 버틴다 사회정책부 김해정 기자
한줄평: “산재보험은 노동자 재해에 신속하게 보상하는 제도인데…”
5. “그래, 난 왼손잡이야” 차별 맞선 외침…우리 삶도 스펙트럼이니까 토요판부 정혁준기자
한줄평: “그동안 주목받지 않던 왼손잡이가 겪는 차별에 대해 알게 해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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