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장 후보자의 성경 인용 [한승훈 칼럼]

한겨레 2024. 9. 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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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 용어 중에 프루프텍스팅(proof-texting)이라는 것이 있다. 마땅한 번역어가 없는지 영어 표현 그대로 사용되곤 하는 이 개념은 자신의 해석을 증명하기 위해서 맥락과 별 관련이 없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아전인수식 경전 읽기의 폐해는 자신의 주장과 대립하는 나머지 구절들을 배제할 경우에 더욱 심각해진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 지명자가 2012년 9월13일 헌법재판관 후보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을 결정하였다. 그 결정문의 말미에는 한 헌법재판관의 보충의견이 실려 있다. 그는 재판부의 결정에 동의하는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헌법의 권력구조가 모든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주장을 피력하였다. 나아가 비선조직의 개입이나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파면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 재판관의 이름은 안창호, 현재 인사청문회를 앞둔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이다.

안창호 후보자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탄핵 심판 결정문의 보충의견서에서도 그는 두차례나 성경 구절을 인용하였다. 첫번째 인용문은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는 아모스서의 한 대목이다. 대통령 탄핵이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 갈등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의 수호와 관련된 사안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두번째는 본문을 직접 옮기지 않고 장절만 언급되어 있는 이사야서의 구절이다. “그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 행사를 통해서만 사회 통합과 국가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맥락이었다.

정교분리를 주창하는 세속국가의 헌법재판관이 헌법과 법률, 판례 등이 아니라 특정 종교 전통의 경전을 통해 법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 파격적이다. 그의 매체 기고글들에서도 이런 방식의 ‘성경 인용’은 반복되었다. 국민일보에 연재된 칼럼들에서 성경은 주로 그의 정파적 견해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었다. 부동산 소유자에 대한 증세를 반대하기 위해서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인간)에게 주셨도다”라는 시편 구절이 언급되거나,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거짓말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글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거론되는 식이다.

기독교 신학 용어 중에 프루프텍스팅(proof-texting)이라는 것이 있다. 마땅한 번역어가 없는지 영어 표현 그대로 사용되곤 하는 이 개념은 자신의 해석을 증명하기 위해서 맥락과 별 관련이 없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아전인수식 경전 읽기의 폐해는 자신의 주장과 대립하는 나머지 구절들을 배제할 경우에 더욱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땅을 인간에게 주셨다”는 위의 시편 구절은 신의 도움과 축복에 감사하는 노래이지 고가 부동산에 대한 중과세를 반대하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 더구나 고대 히브리 종교의 부동산 관련 율법으로 더 유명한 것이 있다. 레위기에 의하면 모든 땅은 신의 것이며 개인 간의 토지 거래는 항구적이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땅 부자라도 49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그동안 매매했던 땅을 모두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아무리 신심이 깊은 법률가라도 이런 ‘위헌적’인 성경 말씀을 현실에 적용하자고 주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신학자, 법률가, 의학자 16인이 본 동성애 진단과 대응 전략’이라는 책에 실린 “차별금지법과 기본권”에서도 그런 식의 성경 인용은 여전하다. 그는 비규범적 성관계를 금지하는 성경 구절들을 확대 해석하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한편,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는 로마서의 문구만은 “내적 자아와 정체성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 확보 행위는 민주공화국 가치와 질서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한계가 지워져야 한다”며 축소 해석하고 있다. 헌법과 성경이라는 두 신성한 텍스트에서 보장하고 있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제한해도 된다는 이 놀라운 주장의 근거는 헌법 제37조 2항이다. 그러나 그는 그 조항의 뒷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하였다.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내적 자아와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바로 그 ‘본질적인 내용’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의 적법성이 공의와 정의에 대한 재판관의 종교적인 신념과도 합치했다면 좋은 일이다. 왜 판결문에까지 그런 신앙 고백을 실어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국제인권규범에 따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안 후보자의 종교적 신념은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동성애의 죄성”을 지적할 수 없고,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괴한 신념에 빠져 아무 죄책감 없이 타인의 정체성을 모독해도 된다고 믿는 인물이 인권 보호를 위한 기구의 장이 되려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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