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간토학살 희생자 추도…후쿠다 前총리 "적극 조사해야"(종합)

박상현 2024. 9. 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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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지사 8년째 추도문 안 보내…태풍 탓에 요코아미초공원 추도식 축소 진행
실행위 "비참한 과거 망각해선 안돼"…주변서 극우단체 집회 열려
주일대사, 민단 행사서 "새로운 미래 위해 역사 직시·성찰 용기 필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진혼무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진혼무를 추고 있다. 2024.9.1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우리는 지금 과거의 비참한 역사에서 도망치지 않고 (역사를) 확실히 응시하려 합니다. 이번 추도식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비참한 과거를 망각하지 않으려는 행사입니다."

일본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원회 미야가와 야스히코 위원장은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101주년 추도식에서 행사의 의미를 이같이 규정했다.

그러면서 "슬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자녀, 손자, 후배, 주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은 도쿄와 요코하마 등 일본 수도권이 포함된 간토(關東) 지방을 강타했다. 이 지진으로 10만여 명이 사망하고 200만여 명이 집을 잃었다.

일본 정부는 당시 계엄령을 선포했고, 일본 사회에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방화한다' 같은 유언비어가 널리 유포됐다.

이러한 헛소문으로 약 6천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일본 자경단원, 경찰, 군인 등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됐다.

일조협회 도쿄도연합회, 일중우호협회 도쿄도연합회 등이 참여한 실행위는 1974년부터 매년 9월 1일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추도식을 개최해 조선인 학살 희생자를 추모해 왔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혼 위로하는 승려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승려인 오야마 고센 씨가 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의 혼을 위로하고 있다. 2024.9.1

이날 행사는 일본 열도를 덮친 제10호 태풍 '산산' 영향으로 예년보다 시간을 단축하는 형태로 예년에 비해 간략하게 치러졌다. 예년에는 1시간 정도 진행됐던 추도식이 이날은 약 40분 만에 끝났다.

승려 오야마 고센 씨가 희생자 넋을 위무한 뒤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하얀 한복을 입고 혼을 위로하는 진혼무를 선보였다.

실행위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문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외면하고 올해까지 8년 연속으로 추도문 송부를 거부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고이케 지사는 취임 첫해인 2016년에는 추도문을 보냈으나, 이후에는 도쿄도 위령협회 대법요(大法要)에서 "대지진으로 극도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희생된 모든 분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메시지를 밝힌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송부를 거절했다.

미야가와 위원장은 고이케 지사 이전에 역대 지사들이 추도문을 보냈다는 점을 언급하고 "지사가 참석하지 못한다면 추도문을 당연히 보낸다"고 지적했다.

아베 신조 정권 시절에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을 지냈던 마에카와 기헤이 씨는 실행위에 보낸 추도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이 두려운 대사건을 절대 잊지 말고 다음 세대에 확실히 말로 전해 현재와 미래의 중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역사적 사실을 바꾸고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극작가인 사카테 요지 씨도 추도 메시지에서 "간토대지진의 배경에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지금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차별과 편견과 증오의 연쇄에 항거할 것을 맹세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1일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조선에 돌아가라", "너희들은 쓰레기" 같은 발언을 했던 극우 단체 '소요카제'는 이날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집회를 열었다.

도쿄도는 지난달 이 발언을 조례에 어긋나는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로 인정했고, 일부 지식인은 이 단체의 집회를 불허해 줄 것을 도쿄도에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 참석한 후쿠다 전 일본 총리 (도쿄=연합뉴스)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1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 주최로 열린 '제101주년 관동(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 참석해 앞쪽을 응시하고 있다. 2024.9.1 [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와 별도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도 이날 도쿄 신주쿠구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제101주년 관동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 연립 여당 공명당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 등 일본 정계 인사를 포함해 290여 명이 참석했다.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는 추념사를 통해 "불행한 참상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며 "아픈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겸허히 직시하고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전직 총리들도 조선인 학살을 입증할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에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한일 양국이 조선인 학살을 추가로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므로 더욱 적극적으로 여러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일본 사람들은 아쉽게도 (조선인 학살) 사실을 잘 모른다"면서 "많은 국민(일본인)이 이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총리를 지낸 집권 자민당 인사가 민단 주최 조선인 희생자 추도 행사에 참석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별도로 보낸 추도 메시지를 통해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조선인 학살이 이뤄졌다면서 "(학살을) 역사의 비참한 사실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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