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여권 통문의날’과 딥페이크 성착취

이명희 기자 2024. 9. 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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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통문’에 대한 기사를 ‘별보’로 실은 1898년 9월8일자 황성신문.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캡처

1898년 9월8일자 황성신문은 논설을 빼고 그 자리에 ‘별보(別報)’를 실었다. “하도 놀라고 신기하여 우리 논설을 빼고 아래에 기재하노라”라는 설명을 달았는데, 그 놀라운 일은 서울 북촌 양반 여성들의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始通文)’(여권통문) 발표였다. 여성의 평등한 교육권과 경제 활동 참여권(직업권), 정치 참여권(참정권) 주장이 주된 내용이다.

황성신문뿐 아니라 다음날 독립신문 등에도 전문이 게재됐다. 선언은 이소사·김소사의 이름으로 9월1일 발표됐는데, 여기서 소사는 기혼 여성을 가리킨다. 여성들이 이름도 없이 소사로 통칭되던 시절, 여권통문 발표는 세상을 뒤집을 만한 ‘사건’이었다. 그들의 외침은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국내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 설립으로 이어졌고, 1899년 회비를 모아 최초의 민간사립 여학교 순성여학교를 개교하기에 이른다.

여권통문은 한국 최초의 여성 권리선언이었다.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친 때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다. 2019년 정부는 이 뜻을 기려 9월1일 ‘여권통문의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우리에겐 ‘여성의날’(3월8일)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날이다.

한 세기 전 여성들이 성평등을 외쳤건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가족부가 존폐 기로에 내몰린 지 오래고, 성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퍼지고 있다. 미국의 사이버 보안업체에 따르면 전 세계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의 53%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지난달 29일 “(딥페이크 성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적 성차별이고 해결은 성평등”이라는 공동성명을 냈다. 그러나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물 삭제 지원과 피해자 상담 등을 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약 2억원(6.3%) 삭감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석열 정부에서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126년 전 여성들의 선언이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여성들이 얼마나 불안한지, 대통령은 모른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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