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니까, 청춘이니까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한겨레 2024. 9. 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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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화려한 진열장, 빛나는 조명 아래 전시된 값비싼 보석들이 있다. 백화점에 있는 보석상 앞, 사람들은 동화처럼 반짝이는 보석들에 잠시라도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반면 어두운 광산 안이나 광야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원석들도 있다. 흙먼지가 묻어있고 투박한 돌멩이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다.

​ 이 세상에는 숨겨진 원석같이 빛나는 인디뮤지션들이 있다. 대형 기획사의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규모로 직접 기획하고 제작해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인디’라고 보통 이야기한다. 인디뮤지션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가기 위해 말 그대로 북 치고 장구 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자유를 선택한 대신 감내해야 하는 난관과 거친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현실적인 문제들, 폭풍 같은 모험 길이 펼쳐진다.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면 수많은 이야기꽃이 여기저기 피어난다. 산에도 바다에도 남겨진 발자국들. 누군가의 가슴에 은은한 향수처럼 음악을 남겨두고 떠나온 길. 나는 그들의 길을 유랑길, 또는 낭만로드라고 표현하고 싶다. 지금부터 낭만로드에 올라타 원석같이 거칠고 아름다운 인디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드라이브를 떠나보자.

​ 홍대에는 여러 인디뮤지션들이 공연하는 라이브 클럽들이 있다. 간단한 음료를 마시고 공연을 보며 소통하는 소극장 형식의 공연장이다. 토요일 밤, 여느 작은 라이브 클럽 입구에서부터 쿵쿵대며 울리는 저음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오디오로 음악을 크게 들어도 라이브 공연의 생생한 감동은 느낄 수 없다. 음원의 사운드는 전문 엔지니어가 듣기 편하게 가지런히 잘 다듬어 놓은 반면, 라이브 클럽에서의 연주와 노래는 날것의 생동감이 스피커를 통해 입체적으로 걸어오는 듯하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기타의 굉음과 질주하는 드럼, 목이 터져라 외치는 보컬.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이고 열광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 음악이라는 파도를 타고 서로 노를 저어 보이지 않는 꿈을 향해 항해하는 느낌이다.

조명에 비친 땀방울들은 작은 라이브 클럽에 모여든 별들 같다. 지친 별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인디뮤지션들은 우리에게 음악이라는 위로를 건네준다. 음악 색깔도 천가지 무지개처럼 다양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저돌적인 펑크락 밴드도 있고, 하얀 국화꽃 한송이처럼 짙은 향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싱어송라이터도 있다. 아픈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음표로 그림을 그리고, 인디뮤지션의 고단한 삶을 유쾌한 마당극처럼 풀어 가기도 하고, 억울한 일에 핏대 높여 노래하기도 하고 조곤조곤 행복할 권리를 읊조리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 음악으로만 생계가 유지된다면 좋겠지만, 대다수 인디뮤지션은 음악을 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바쁜 일상이겠지만 시간을 쪼개어 노래를 만들고, 앨범 커버를 직접 그리며, 공연을 기획하고 홍보까지 직접 한다. 때로는 행사에 나가서 괄시도 받고, 출연료도 떼먹히고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정말 세상살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들은 풀꽃처럼 자유롭고 강하다. 커다란 공장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사는 대신 자그만 오르골처럼 이곳저곳 유랑하며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 세상에 숨겨진 원석 같은 인디뮤지션을 소개하고, 그들의 음악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캡틴락인디’라는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었다. ‘차세대’라는 밴드와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이 팀은 직접 ‘당신들의 다음 세대(이하 당다세)’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직접 팬들과 소통하고 지속 가능한 음악을 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라이브 공연과 각종 이벤트가 가능한 공간이다. 밴드들이 직접 만들면서 겪은 고생담을 들으니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도 마음 한편이 뭉클했다. 바닥을 고르게 하는 작업을 하는데, 지하실에서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신고를 받은 소방차 여러대가 출동하는 바람에 해명하느라 민망했다고 한다. 전기 작업을 돕다 감전되어 잠시 황천길 드라이브할 뻔하고, 공사를 도와주신 아버지와 절연할 뻔했다고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공간 ‘당다세’를 두고 인디밴드 차세대는 말한다. “피라미드는 인간이 만들었다”고.

​누군가는 생고생이라고 하겠지만, 난 지금 동시대를 사는 인디뮤지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름이었다. 청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원석이고 스스로 빛나고 있다”고.

​ 다양한 이야깃거리, 독특한 과일같이 청량한 음악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 라이브 클럽으로 떠나보자. 자신만의 취향으로 삶을 아름답게 물들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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