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딥페이크'에 노출된 학교, 보호받지 못하는 교사

허시언 기자 2024. 9. 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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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내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사례 속출
교사들 역시 범죄의 타깃돼 피해 신고 잇따라
청소년에게 딥페이크는 이미 '그들만의 문화'
처벌 약하고 붙잡히지 않아 장난 정도로 치부
피해 교사 향해 2차 가해 저지르는 일도 빈번

“10대들의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보면서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별로 놀라지도 않았어요. ‘드디어 사건이 드러나는구나. 다행이다’ 이렇게 안도했습니다.”

딥페이크 등 디지털 범죄의 온상으로 주목받는 소셜미디어(SNS) 텔레그램. AP 연합뉴스


▮딥페이크 사진을 목격하다

중학교 교사 A 씨는 지난 3월 말 자신의 얼굴과 상반신이 노출된 사진을 합성한 딥페이크 음란물이 텔레그램 방에서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A 씨가 재직 중인 학교의 학생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경찰은 가해 학생을 특정하지 않은 채 미제 사건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가해 학생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 분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고, A 씨는 가해 학생이 있을 지도 모르는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가 개최됐을 때는 약간의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교보위에서 공감을 받고, 힘을 얻어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보위 측은 딥페이크 유포 의심 학생을 신고자로 보고하는 등 제대로 된 사실 파악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고, 사건에 공감하고 조치를 취해주겠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피해 교사들을 취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가해 학생이 있을 지도 모르는 교실 앞에서 수업을 진행할 자신이 없어 병가를 냈습니다. 학교 측은 딥페이크 사건 이후 학생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는 등 후속조치를 했지만, 미온한 대처라고 생각합니다.”

▮텔레그램 방의 정체를 알게 되다

중학교 교사 B 씨는 지난 8월 초 텔레그램 방에서 자신의 사진과 신상정보를 업로드하며 “내 지인들인데 능욕해 줄 사람은 개인 메시지를 보내라”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한 가해 학생 C 군에 대한 제보를 받게 됐습니다. C 군은 다른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진을 가지고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해 공유하기도 했죠. 피해 사실을 알게 된 B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지지부진하게 수사를 끌었습니다. B 씨는 C 군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경찰은 신고 후 3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B 씨가 신문고에 민원을 넣은 후에야 C 군의 휴대전화 압수를 시도했지만 C 군은 휴대전화를 이미 없앤 뒤였습니다.

학교는 C 군의 행동을 일회성이라고 판단해 등교중지 5일, 특별교육이수 10시간이라는 가벼운 징계를 내렸습니다. B 씨는 지속적으로 C 군과의 분리조치를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학교 측에서 C 군에게 부모동행체험 신청을 권유했고, C 군이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된 후에야 같은 공간에서 분리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보위가 제 말을 좀 더 주의 깊게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교보위에 들어가자마자 ‘SNS에 사진 직접 올리신 겁니까? 그럼 학생은 선생님이 올린 사진을 그냥 퍼가기만 한 거네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사건 처리 방향을 이미 정해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는 딥페이크 사건 이후 가정통신문을 배포하는 등 후속조치를 했지만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고요. C 군은 현재 학교에 없지만 해당 학년에는 이미 제 피해 사실이 전부 소문난 상태입니다. 그 학년 아이들만 보면 수치심이 들어서 제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도망 다니기 일쑤입니다.”

▮‘그들만의 문화’가 된 딥페이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달 27일과 28일 이틀간 진행한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총 2492건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와 유치원, 특수학교에서도 피해 신고가 잇따른 것으로 나타났죠. 직·간접적인 피해자는 총 517명으로, 이 중 교사는 20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가해자 연령은 어려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10대와 20대 사이에서 허위 영상물 제작·유포 등 불법 행위가 주로 발생하고 있죠.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성적 허위 영상물 유포 피의자 수는 120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10대 피의자 수는 91명으로, 전체 피의자의 75%가 10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피의자의 대다수가 10대인 만큼 학교 내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데, 교사들 역시 범죄의 타깃이 됐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딥페이크 제작은 ‘그들만의 문화’가 된지 오래입니다. 장난과 조롱, 희롱을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죠. ‘조롱’을 위해서 딥페이크를 사용해 교사의 사진으로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제작하고, ‘희롱’을 위해서 교사의 사진과 노출 사진을 합성합니다. 딥페이크를 제작한 사실이 알려져도 학교와 경찰의 수사 의지가 낮기 때문에 미제 사건으로 남거나, 가해자를 밝혀내도 약한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범죄라는 인식은 있지만 장난 정도로 치부합니다. 소극적인 수사와 약한 처벌은 청소년들에게 ‘저런 짓을 해도 괜찮다’ ‘어차피 못 잡는다’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잡혀도 크게 처벌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심어줬죠.

▮‘사제관계’라는 특수성

문제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교사는 제대로 된 지원과 대책을 약속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학생과 교사라는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가해 학생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 피해 교사에 대한 충분한 피해 지원을 어렵게 만들죠. 피해 교사는 가해 학생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강요 당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나 교보위, 수사기관이 피해 교사를 향해 2차 가해를 저지르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가해 학생을 피해 교사로부터 분리하는 일도 쉽지 않아 피해자는 가해자가 돌아다니는 학교에 고스란히 노출됩니다. 학생 관리와 인권 등의 문제로 인해 가해 학생을 격리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어, 가해 학생에 대한 강제전학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 이상은 완전한 분리조치가 어렵습니다. 결국 피해 교사가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는 일도 발생하죠.

▮‘안전한 학교’ 만들기

학교는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고, 제도는 청소년들의 범죄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교사들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관련 교육 과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가정통신문 몇 장, 디지털 성범죄 교육 몇 시간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입을 모아 말했죠.

초·중·고 3곳의 교내 딥페이크 관련 공문을 확인한 결과, 디지털 성범죄 관련 교육이나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 시 신고 방법에 대한 공문 등은 있지만 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 학교 차원에서의 딥페이크 대응법,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규정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딥페이크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 보급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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