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역사서 도망치는 건 부끄런 일”…간토대지진 101주기 추도식
시민단체 ‘호센카’ 이사 “일본 정부 가해 인정할 생각 없는 것 같아”
한국 정부도 진상규명 요구 적극적이지 않아
“과거 비참한 역사가 있었던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거기서 도망치려 하는 건 더 부끄러운 일 아니냐.”
일본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1주년인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 미야가와 야스히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원회’(실행위) 위원장은 이날 열린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식이나 손자, 주변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이야기하는 건 우리의 책임이 아니냐”고 호소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1일 일어난 규모 7.9 이상으로 추정되는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헛소문이 퍼지며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하고 군과 경찰도 가담한 사건이다.
당시 일본 전역에서 숨진 조선인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아 정확한 희생자 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제 10호 태풍 ‘산산’ 영향으로 간간히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는 한국과 일본 시민 수백명이 자리를 빼곡히 메웠다.
일본 도쿄도위령협회의는 해마다 요코아미초공원에서 도쿄대공습(3월10일)과 간토대지진(9월1일) 때 희생된 일본인을 위해 추모 행사(대법요)를 여는데, 1974년부터 일본 시민단체가 도쿄도 의회 허가를 얻어 이 공원 한켠에서 간토대학살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식도 열리고 있다.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최근 3선에 성공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올해도 요코아미초 공원 추도식에 추도문 송부를 거부했다. 그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여러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도위령회 대법요에 대지진 당시 희생된 모든 분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8년째 송부를 거부했다.
조선인 학살은 자연재해로 숨진 이들과 성격이 다르다. 이 때문에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극우 성향 정치인을 포함해 역대 도쿄도지사는 ‘일조협회’ 등 일본 시민단체가 열고 있는 이 추도식에 1974년부터 추도문을 보내왔지만, 고이케 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일본 중앙정부 또한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엔 입헌민주당 의원이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살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넷이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판결문이 발견됐다며 문서를 근거로 구체적으로 따져 묻자, 하야시 마사요시 관방장관이 “일반론을 전제로 정부로서는 재판소가 확인한 사실에 대해 옳은지 여부를 평가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일본 정부의 진상조사와 사과가 미뤄지는 사이에 일본 사회 한편에선 혐오와 차별이 커지고 있다. 이날도 요코아미초 공원에선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근처로 다가와 “(추도비에 적힌) 조선인 6천명이 죽었다는 거짓말이 인정돼선 안 된다”며 소동을 일으켰다. 추도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당신들이다”, “혐오 행위가 부끄럽지도 않느냐”며 이들에게 맞서기도 했다.
해마다 9월에는 요코아미초 공원뿐 아니라 도쿄와 요코하마를 포함한 간토지방 곳곳에서 조선인 학살 추도제가 열린다. 스미다구 아라카와강 인근에서 열리는 추도식도 그중 하나다. 아라카와강 제방은 간토대지진 당시 지진을 피해 온 조선인이 학살당한 대표적 장소 중 한곳으로 참혹한 ‘피의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당시 도쿄 스미다구 근처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지진 여파로 일어난 대형 화재를 피하려 다리를 건너려고 했지만, 반대편 다리 입구에서 지역 재향군인회·청년단 등으로 구성된 자경단이 조선인 등을 골라낸 뒤 무차별 학살했다.
지금은 철거됐지만 아라카와 강을 잇고 있던 다리 ‘요쓰기바시’ 근처에서 많은 조선인이 희생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1982년 뜻있는 시민들이 첫 추도식을 열었다.
추도식을 열고 있는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해 위령하는 모임 호센카(봉선화)’ 사무실이 아라카와강 제방 건너편 주택가에 있다. 호센카 사무실 옆에는 봉숭아가 앞에 심어져 있는 작은 비석이 있다. ‘悼’(도)라고 새긴 추도비 옆면에는 ‘간토대지지진 때 한국·조선인 추도지비’, 뒷면에는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일본의 군대, 경찰, 유언비어를 믿은 민중에 의해 많은 한국·조선인이 살해당했다. 도쿄의 서민 주거지에서도 식민지였던 고향을 떠나 일본에 와 있던 사람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귀중한 생명을 빼앗겼다”는 글귀가 새겨졌다.
호센카의 신민자 이사는 30일 “참사가 일어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일본 정부 등은 가해자로서 아픈 과거를 인정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미래 세대를 위해서 시민사회라도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회피하고 있지만 당시 참극을 알려주는 기록과 증언은 넘쳐난다. 간토대학살 당시 생존자였던 조인승씨는 “소방대원 4명이 우리를 밧줄로 묶더니 '밧줄을 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는데, 아라카와역(현재 야히로역) 쪽 둑방이 시끄러웠는데 설마 그게 조선인을 죽이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주검이 다리에 가득 찼고, 제방에도 장작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고 기억했다.
일본인 생존자였던 아사오카 시게조도 “스미다구 강변에서 조선인을 10명 정도씩 묶은 채 기관총으로 쏴 죽였다”고 증언한 기록이 남았다. 지바, 도치기, 군마 등에서도 조선인들이 아무 잘못없이 총, 일본도, 죽창 등으로 살해당한 일이 각종 문서와 증언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도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채 101년이 지나가고 있다. 역사 문제엔 눈감은 채 한-일 관계 개선에 ‘올인’ 중인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학살 100주년’이라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는데도 진상규명과 사죄에 대한 어떤 요구도 내놓지 않았고 또다시 1년이 흘렀다. 국회에선 2014년 간토대지진 진상규명 등에 관한 법안이 제출됐다가 폐기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7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간토 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이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에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법안은 “1923년 일본 간토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 당시 유언비어와 계엄령 선포로 일본의 군인, 관헌 및 민간인에 의해 6천여명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대학살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나 피해자에 대한 배상 및 유족에 대한 보상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며 “2013년 피해자 명부의 발견 뒤에도 유족에 대한 조사나 무고하게 대학살된 조선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처가 없다”고 꼬집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간토대학살진상규명및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를 통해 진상조사와 책임규명, 피해 유족 심사와 명예회복, 추도공간 조성 등이 이뤄질 수 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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