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3만원 대타 구해요"…워킹맘 울리는 '녹색 봉사'
무리해 연차 쓰거나 조부모·알바까지 동원
교내 행사 불참 잦아 소외감…불이익 걱정도
전문가 "일률적 부과보다 합의·양보 과정 필요"
[이데일리 이유림 박동현 기자] ‘○○초등학교 녹색 알바 구합니다. 직장인이라 연차 내기가 어렵네요’, ‘오전 8시 10분부터 9시까지 녹색 봉사 대타 구합니다. 사례비 3만원 드릴게요.’
대표적인 학부모 활동인 녹색 학부모회는 등하굣길 차량을 통제하며 어린이 교통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맡는다. 자발적 참여가 원칙이지만, 현실은 다소 다르다. 일부 학교는 날짜와 순번을 정해 통보하는 식으로 강제 할당이 이뤄진다. 특히 학생 수가 적은 지방의 초등학교나 다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의 경우 1년에 수회씩 참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연차를 내기 어려운 맞벌이 부모들은 조부모나 친인척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녹색 학부모회 아르바이트’ 구인 글을 올리며 대체자를 찾는 것이 일상이다.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는 40대 워킹맘 A씨는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녹색 봉사가 순번제”라며 “가정통신문에는 당일 봉사가 어려우면 협의를 통해 날짜를 바꾸거나 담임에게 연락 달라고 돼 있는데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연근무가 가능한 남편을 보내거나 그마저도 여의찮으면 (대체해 줄)알바를 구하려 한다”며 “아이에게 최대한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근무하는 초등교사 박모(32)씨는 “녹색 봉사가 강제는 아니라지만, 불참했다가 혹시라도 자녀가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되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촌이거나 교육열이 높은 지역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근무하는 초등교사 김모(31)씨는 “학부모가 맞벌이라 시간이 안 되는데 억지로 나오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일단 배정해 드릴 수밖에 없다”며 “학부모 간 형평성 문제로 불만이나 갈등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일 그만 둔 엄마까지…전업맘·워킹맘 갈등
문제는 녹색 학부모회가 활동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급식 모니터링단’, ‘학부모회 임원 선출’ 등 학부모가 참석해야 하는 일정이 뒤를 잇는다. 이 때문에 교내 행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들과 교내 업무를 주로 떠맡는 전업맘들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40대 워킹맘 B씨는 “학부모 행사에 자주 참여하지 못해 눈치가 보인다. 거기에 전업맘들은 방과 후 아이를 서로 집에 초대하며 가까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한번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중간에 끼어들기도 쉽지 않아 불편하다”고 했다. 이런 탓에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휴직계를 내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40대 워킹맘 C씨는 “자녀가 입학하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져 휴직을 신청한 상태”며 “전업맘들이 따로 단체 대화방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휴직한 뒤에서야 알게 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자녀 교육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은 “학령 인구가 감소하고 맞벌이 부부는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라 봉사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계속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학부모 참여가)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만큼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선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부모의 역할과 책임을 일률적으로 부과하기보다는 각자의 여건에서 합의하고 양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내 아이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 전체 아이들을 다 함께 잘 기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맞벌이 학부모도 학교 자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교·교육 행정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나 기업 문화, 노동 문화 전반으로 연계해 생각하고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림 (contact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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