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17- 울릉도의 영화관과 영화제작 그리고 영화제까지
현포항에서 ‘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가 열렸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이라면 울릉도뿐인데 문화소외지역인 울릉도에서 무슨 영화제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상설극장조차 없는 울릉도라 예전부터 민간 단체에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한 적이 자주 있어 그중 하나쯤 되겠거니 했는데 올해가 벌써 여섯 번째로 2019년부터 빠짐없이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극영화 상영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베니스국제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제작자나 감독, 배우들도 참석하는 작으나 본격적인 영화제였다.
게다가 6회째인 올해는 ‘울릉, 섬, 자연’이라는 주제로 207편이나 출품되었고 최종 선정된 12편이 8월 9일부터 사흘에 걸쳐 상영되었다. 응모작품 수가 엄청나다.
개막작은 울릉도 바다를 배경으로 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우리 집 앞바다(권명준 제작)’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밤바다가 아름다운 현포항에서 울릉도산 수제 맥주를 마시며 고향의 이야기를 영화로 감상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내가 어렸을 적인 1950년대 중반만 해도 울릉도에서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영화 상영이 가능한 장소도 마땅히 없거니와 배편도 좋지 않아 자주 상영할 수 없고 업자들이 타산 맞추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6.25 사변 전후여서 당시의 울릉군이 영화상영 서비스를 할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우린 영화를 ‘활동사진’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날인가 ‘한청’(도동 앞골목 옛 한국청년단 자리, 해방 전에는 신사가 있던 자리) 앞마당에서 영화상영을 한다고 북을 치면서 요란한 선전을 하기에 저녁 무렵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가설영화관은 발전기를 돌릴 때 나오는 매스꺼운 기름 냄새와 밖에서는 볼 수 없도록 흰 광목천으로 울타리를 높게 둘러쳐 놓았고 좌석이라곤 바닥에 깐 가마니가 고작이었다. 몰래 숨어 들어갔는지 기억에 없으나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본 영화였는데 화면이 자주 끊기고 스크린에 숫자가 뒤바뀌어 나타나는 것만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다.
‘뒷골목’에 있던 건견장도 당시에는 군민회관 역할을 한 것 같은데 이곳에서 연극과 강연 그리고 무성영화도 자주 상영했었다. 난 언제나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 찾기에 혈안이었고 주로 기도 눈을 피해 몰래 들어가곤 했었다.
이후에는 울릉초등학교나 울릉중학교의 운동장에 마련된 가설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2002년 7월에는 중학교 건물벽에 대형 스크린을 걸쳐놓고 400여명이 관람했으며 대부분 스크린 영화를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다.
이후 공회당이라고 불리던 군민회관에서 각종 집회나 영화 상영이 이어졌고 1980년 초 KBS방송이 칼라방송을 시작하면서 울릉도에도 각종 영화를 TV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와서는 네이버나 쿠팡영화 등을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고 케이블TV, 넷플릭스 등으로 영화를 쉽게 볼 수 있음에도 울릉군은 대형 스크린에서 즐길 수 있는 극영화를 무료 상영하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개봉 예정인 ‘베테랑2’를 전국 동시에 상영할 예정이며 앞으로도 흥행성이 높은 영화와 어린이들과 장년층을 위한 영화상영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영화 등 문화 혜택이라고는 꿈도 못 꾸던 시기를 지나면서 2008년 1월 ‘울릉한마음회관’이 개관됨으로써 울릉도는 명실상부한 문화의 전당을 갖게 되었다. 특히 500석 규모의 대공연장은 지금도 울릉군민들을 위해 각종 극영화를 상영할 만큼 현대적인 시설로 변모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울릉도에 관련된 영화제작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울릉도 주민들의 실생활을 뉴스용으로 촬영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1960년대 초반 두 차례에 걸쳐 고대 기독학생회의 농촌봉사활동팀 20여명이 입도하여 석포와 사동리 등에서 우물을 파거나 농촌 일을 돕는 봉사활동이 있었는데 이를 촬영하기 위해 공보부에서 파견된 촬영기사를 내가 석포까지 안내해 준 일이 있었다.
뉴스용 이외에는 다큐멘터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사동리에 거주했던 험프리 렌지씨가 ‘저 먼, 외로운 섬’(Out There, a Lone Island)을 제작했는데 1960년대 울릉도 주민들의 의식주, 관혼상제, 생업 등 다양한 생활상을 다큐 형식으로 촬영했으며 당시 최보영이라는 울릉도 청년이 주인공이 되어 촬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영화는 지금도 독도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독도의용수비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몇몇 제작사들이 시도했으나 더러는 실패했고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오엔터테인먼트사에서 만든 최현묵 감독의 ‘미안하다. 독도야’와 권순도 감독의 러닝타임 67분짜리 ‘독도의 영웅’도 제작 발표되었다. 나 또한 서울 광화문 인디스페이스 극장에서 개최된 시사회에 다녀온 적도 있다.
2023년에는 독도 다큐 영화인 ‘아버지의 땅’이 제작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매튜 코슈몰(35) 미국 영화감독이 만든 러닝타임 75분의 ‘아버지의 땅’은 독도의 최초주민인 최종덕 씨와 그의 딸 은채(경숙) 씨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또한 정신장애를 가졌음에도 74년간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부담을 주지 않고 오직 노동으로 돈을 벌며 살아온 이상호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행복한 울릉인’으로 2014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오징어, 호박엿과 함께 울릉도의 3대 명물이라고 회자하던 이상호 할아버지를 시인 유영준이 월간 국보문학에서 “덕장에 걸린 오징어들/탱기 치고, 발 펴고/귀 뒤집던, 상호 할아버지가/리어카에 하루바리를 싣고/느릿느릿 멀어질 때면....”(생략) 라는 시로 그의 삶을 표현할 만큼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였다.
울릉도를 무대로 촬영한 첫 극영화도 2014년 공개되었다. 울릉도 올로케이션 영화다. ‘프로덕션하우스 산책’에서 제작했고 박종률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서 ‘서울메가박스 센트럴시티점’에서 개최된 영화 시사회에 난 재경향우들과 함께 참석했다. 감격스러운 울릉도 극영화였다.
이제 다시 울릉도 영화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그르노블1대학에 유학 중이던 조안나씨가 2014년 고향인 울릉도에서 처음 영화제를 열었다. '익스트림 나리섬 다큐 페스티벌‘이다.
어떤 영화였는지 알 수 없으나 대아리조트 야외무대에서 3일간 개최되었다. 당시 23세의 어린 학생이 부모님이 사는 울릉도를 알리고자 영화제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가 전공이 아닌 토목공학과 재학생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울릉살이를 위해 육지에서 건너온 젊은 청년이 6년째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영화제를 고군분투하며 이어가고 있다. 노마도르의 박찬웅 대표다. 2018년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인 ’한 달 살이‘ 프로그램으로 입도한 그는 울릉도에 매료되어 현포리에 눌러앉았다.
2019년 울릉군으로부터 영화제에 관한 제의가 있어 첫 행사를 시행하였으나 2, 3회째는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지원이 끊기게 되자 자력으로 행사를 꾸렸다고 한다. 4, 5회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받고 6회째인 올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가 끊기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청년들과 함께 수익모델을 창출하기 위해 온갖 포트폴리오를 진행하고 있다. 일정한 소득 발생 없이 희생과 자체 수익만으로는 이런 행사를 영속할 수 없다. 어쩌면 칸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울릉군이 적극 지원함으로써 한층 더 품격 있는 관광섬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꿈을 안고 울릉도에 입도한 젊은이들이 실망한 채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모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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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저동초등 병설유치원 아이들이 파자마 파티 및 영화관 놀이를 했다. 영화표도 만들고 매점에서 팝콘도 팔고 자리 안내를 하는 등 영화관 놀이를 즐겁게 했다는 후문이다. 이제 이 꼬마들이 다음을 또 이어갈 것이다. 울릉도는 확실히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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