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영의 ‘슬픈 마네킹’…1990년과 2024년을 연결했다

서정민 기자 2024. 9. 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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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아트센터 ‘어떤가요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
지난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어떤가요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 공연에서 현진영이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타임머신을 타려는 이들이 대기 중인 로비부터 공기가 달랐다. 지난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는 시간여행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름 멋 부리고 차려입은 중장년 관객들의 마음은 벌써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수다로 더욱 들떠 보였다.

이날 예정된 무대는 ‘어떤가요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 마포문화재단이 ‘음악은 타임머신’이라는 주제로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추억의 가수를 소환해 펼쳐온 시리즈 공연 ‘어떤가요’의 열번째 무대다. 오늘날 전세계를 사로잡은 케이(K)팝이 본격 태동하기 직전 우리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1990년대 댄스가수들이 주인공이다.

먼저 무대의 문을 연 이는 R.ef. ‘레이브 이펙트’를 뜻하는 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자음악의 한 장르인 레이브를 추구한 3인조 그룹이다. 센터이자 메인보컬 이성욱은 성대현·박철우와 함께 강렬한 음악과 춤으로 90년대 중후반 가요계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이날 팀을 대표해 혼자 무대에 선 이성욱은 ‘고요 속의 외침’, ‘상심’, ‘찬란한 사랑’ 등 히트곡 메들리로 시계를 단숨에 90년대로 되돌렸다.

지난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어떤가요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 공연에서 R.ef 이성욱이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당시 이성욱은 홍콩 배우처럼 선이 뚜렷한 외모로 큰 인기를 누렸다. 50대에도 여전한 외모에 객석의 팬들은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환호했다. 요즘 케이팝 공연장에서 볼 법한 번쩍거리는 응원봉을 흔들고, 이성욱이 물을 마실 때면 “꺄악” 소리를 질렀다. 이성욱은 “R.ef도 늙었다 하는데, 괜찮죠?” 하고 묻고는 “세월은 (날아다니는) 깃털과 같다. 손으로 잡을 순 없지만, (아름답게) 움직이는 걸 보며 웃을 수 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또 다른 히트곡 ‘이별공식’으로 무대를 달구고 내려간 이성욱의 뒤를 이은 주자는 노이즈. 90년대 당시 생소했던 하우스, 테크노 등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한 댄스음악을 선보인 4인조 그룹이다. 리더이자 메인보컬 홍종구, 프로듀서로 곡을 만든 천성일, 탁월한 춤꾼 한상일·김학규가 조화를 이뤄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지난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어떤가요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 공연에서 노이즈 홍종구(오른쪽)와 한상일이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이날 홍종구·한상일 2인조로 무대에 오른 이들은 “우리는 유닛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R.ef에선 R(이성욱)만 왔는데, 우리는 노이즈에서 ‘노이’까지 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노이즈 두 멤버는 8명의 백업댄서들과 함께 히트곡 퍼레이드 무대를 펼쳤다. ‘너에게 원한 건’, ‘착각’, ‘이젠’, ‘성형미인’, ‘체념’, ‘어제와 다른 오늘’ 등 낯익은 선율에 관객들은 ‘떼창’을 하며 추억에 젖어들었다. 홍종구의 보컬은 안정적이었고, 한상일의 춤선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아까 성욱이가 ‘R.ef가 노이즈보다 잘나갔다’고 하던데, 기록을 얘기하자면 노이즈는 앨범 6장을 내면서 1위를 30번 했고요,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하면 주는 골든컵을 두번이나 받았어요. 이런 기록 가진 가수는 얼마 없어요.” 홍종구의 말대로 노이즈는 당대 ‘국민 댄스그룹’이었다.

지난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어떤가요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 공연에서 노이즈 홍종구(오른쪽)와 한상일이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흥이 한창 오를 즈음 깜짝 게스트가 등장했다. 공연에 놀러왔다가 무대까지 오르게 된 클론의 강원래다. 2000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 ‘쿵따리샤바라’, ‘월드컵 송’을 부르며 여전한 흥을 과시했다. 강원래 양 옆에서 클론 시절 구준엽과 강원래를 형상화한 인형탈을 쓴 댄서들이 춤을 추며 무대를 꽉 채웠다. 강원래 무대 이후 다시 나온 노이즈는 ‘상상 속의 너’로 자신들의 순서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이는 한국 힙합의 개척자로 불리는 현진영. 재즈힙합 ‘소리쳐봐’로 무대를 연 그는 탁월한 가창력과 춤 실력으로 객석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이어 강렬한 랩이 당대 신선한 충격을 안긴 ‘현진영 고 진영 고’와 ‘두근두근 쿵쿵’을 부르자 객석은 더욱 뜨거워졌다. 한 남성 관객은 “와, 미치겠다, 진짜”라며 주체할 수 없는 흥을 표출했다. 후렴구에 반복되는 “현진영 고 진영 고” 대목에선 모두가 목소리 높여 외쳤다.

지난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어떤가요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 공연에서 현진영이 객석으로 내려와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댄스음악으로 알려진 현진영이지만, 그는 빼어난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김광진의 애절한 발라드 ‘편지’와 나얼의 찌를 듯한 고음으로 유명한 ‘바람기억’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은 역시 ‘흐린 기억 속의 그대’. 1992년 발표 당시 충격에 가까운 바람을 일으키며 전국 청소년들이 X자 그려진 후드티에 헐렁한 바지를 잔뜩 내려 입게 만든 현진영의 대표곡이다. 노래를 부르던 현진영이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자 마포아트센터는 순식간에 1992년 가요 프로그램 공개홀로 변했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관객들은 현진영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앙코르”를 연이어 외친 관객들의 부름에 현진영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1990년 데뷔곡이자 국내 최초의 뉴잭스윙 곡 ‘슬픈 마네킹’을 선보였다. 요즘 그룹 뉴진스의 뉴잭스윙이 각광받으면서 다시 주목받은 노래다. 유튜브에는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 방송 장면에 뉴진스의 ‘슈퍼내추럴’ 노래를 입힌 영상이 올라와 많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 그렇게 1990년은 2024년과 연결되고, 돌고 도는 음악 트렌드는 과거를 현재와 이어준다. 이날 무대를 단지 과거로의 추억여행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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