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빌려준 통장이 졸지에 사기 통장으로...대법 “손해배상 책임 없어”

박강현 기자 2024. 9. 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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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빌려준 통장이 사기 범죄에 쓰였더라도 이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계좌 주인이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필요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조선일보 DB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1일 투자자 A씨가 계좌 주인 B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등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B씨는 30년 이상 알고 지낸 고등학교 동창 C씨가 정상적으로 금융 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2011년부터 자신 명의의 통장 등을 빌려줬다. 이후 C씨는 B씨의 계좌를 위험성이 높은 해외선물 거래에 썼는데, 2020∼2021년 A씨로부터 투자금 1억2000만원을 이 계좌를 통해 받은 뒤 돌려주지 않고 잠적했다. 이 과정에서 C씨는 B씨를 사칭해 반환약정서를 써준 것으로도 조사됐다.

A씨는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계좌 주인인 B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투자금 1억2000만원을 반환하거나, C씨의 사기 범죄를 방조한 책임이 있으므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이러한 기망 행위에 대해 B씨도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앞서 1심과 2심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6000만원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B씨가 자신 명의의 계좌를 양도한 이상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란 취지로 봤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B씨가 계좌 관련 접근매체를 양도함으로써 C씨의 입출금 및 주식 투자 거래가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넘어서 투자 사기와 같이 불법 행위에 해당하는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과 이 계좌가 그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며 “그런데도 원심은 B씨가 A씨에게 공동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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