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의 세계화…유럽 마음 흔들 ‘심청’ 온다

임석규 기자 2024. 9. 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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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전주세계소리축제 공동 제작
제작비 10억 들여…내년 여름 초연
2023년 9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손진책 연출 창극 ‘심청’ 공연 장면. 국립극장 제공

역대 창극 사상 최대의 예산을 들여 만든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 합작으로 유럽 시장을 겨냥해 제작 중인 ‘심청’이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오페라 연출가 요나 김이 연출을 맡고, 무대 디자인에도 독일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창극을 뼈대로 하되, 서양관현악 요소를 추가해 기존 창극과는 색다른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여름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초연한 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시동이 걸렸다.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가 업무협약을 맺어 기획과 투자, 공연 등 전 범위를 아우르는 공동 작품 제작에 협력하기로 했다. 제작비는 국립극장이 6억원,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가 4억원을 출연해 모두 10억원을 투입한다. 달오름 중극장 창극에 3억~4억원, 해오름 대극장 창극에 5억~6억원이 드는 점을 고려하면, ‘심청’은 과거 어떤 창극보다 많은 예산을 들이는 작품이다. 국립극장이 다른 기관과 공동 제작에 나선 것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독일 제작진과 팀을 꾸렸고 전주세계소리축제 쪽과도 논의하면서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며 “유럽에선 먼저 독일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2022년 공연한 윤이상 오페라 ‘심청’. 1972년 동서 화합을 주제로 열린 독일 뮌헨올림픽 문화 행사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이번 ‘심청’은 창극의 세계화란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국립창극단은 지난해 8월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을 올렸는데,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 작품이 원작이다. 국립창극단이 10월3일부터 나흘 동안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 무대에 올리는 창극 ‘리어’도 셰익스피어 작품이 원작이다. 앞선 두 창극이 외국 관객에게 익숙한 서구 이야기라면, 이번 ‘심청’은 전통적인 우리 이야기다. 이동현 국립극장 공연기획팀장은 “‘트로이의 여인들’은 외국 이야기를 외국 제작진이 맡았고, ‘리어’는 외국 이야기에 국내 제작진이었는데, ‘심청’은 우리 이야기를 외국 정서에 밝은 한국인 연출가가 맡아 확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서도 ‘심청’을 선택한 배경엔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은 보편적 소재란 점이 작용했다고 한다. 1972년 동서 화합을 주제로 열린 독일 뮌헨올림픽 문화 행사에서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오페라 ‘심청’이 공연된 바 있다.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1972년 독일 뮌헨에서 세계 초연됐을 당시 공연 장면. 윤이상평화재단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 쪽은 전통 판소리에 뿌리를 두되, 국악관현악과 서양관현악, 오페라 요소를 다양하게 배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슈타츠오퍼), 빈 국립오페라극장,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에 오페라를 올린 최고 전문가 6명이 무대와 조명, 의상 디자인을 맡아 기존 창극과 차별성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연출가 요나 김은 “어떤 특정 장르라고 형식을 규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22년 11월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미국 뉴욕 공연 장면. 국립극장 제공

국내에서 대학을 마치고 오스트리아에서 연출을 공부한 요나 김은 2017년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에서 ‘올해의 연출가’로 선정됐다. 2022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바그너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 4부작(링 사이클)을 연출한 데 이어 10월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하는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를 연출한다. 작창은 한승석, 음악감독은 최우정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나 김은 “다양한 버전을 참고해 ‘심청’의 리브레토(극음악 대본) 초안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이 10월3일부터 나흘 동안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 무대에 올리는 창극 ‘리어’. 국립극장 제공

1900년대 초반에 새로 만들어진 창극은 정형화된 형식이 없어 여러 현대 예술 장르의 다양한 성분을 흡수하며 진화해왔다.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희곡, 웹툰 등으로 영역을 넓혔고, 연극과 오페라·뮤지컬 전문가들이 참여해 형식의 확장을 꾀했다. 2011년 독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내놓은 ‘수궁가’, 2014년 루마니아 태생 연극 연출가 안드레이 셰르반(안드레이 서반)이 발표한 ‘다른 춘향’, 2016년 이소영 연출의 오페라 창극 ‘오르페오전’ 등이 연장선에 있다.

이번 ‘심청’은 2010년 이후 꾸준히 이어진 창극의 현대화와 예술성 확보란 점에서도 기대를 모은다. 이왕준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은 “판소리를 재료로 완전히 새로운 무대극 또는 소리극을 만드는 혁신적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심청’은 내용과 형식에서 역대 어느 창극보다 실험적이고 논쟁적인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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