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는 집값…일꾼 재촉한다고 곡식이 자라지 않는다[아기곰의 부동산산책]
8·8 부동산 대책 이후 3주가 지났지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상승세가 더 확대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2주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51%나 올랐다. 2주간 상승률이 0.51%이니 이런 추세로 1년간 오른다면 연간 상승률은 13.26%까지 오를 수 있다. 이런 상승률은 지난 20년 동안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 8·8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8·8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공급을 원활하게 만들어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 등 수도권의 대량 공급 창구인 재건축·재개발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과 그린벨트 해제를 통하여 수도권에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의 정상화를 위하여 세금을 투입하여 비아파트 주택을 정부에서 매입하여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겠다는 대책도 같이 내놓았다. 한마디로 수요과 공급이라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입각한 원론적이고 정석인 해법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대책이 왜 시장에서 먹히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일까? 이런 대책들이 현재의 집값을 잡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미래의 집값을 잡기 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수요자에게 준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정부에서는 단기적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는 대책을 왜 내놓지 않는 것일까? 내놓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집값이 오르는 원인이 (일부 음모론자의 주장대로) 망해가는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서 현 정부에서 대출을 확대하여 시중에 유동 자금을 많이 풀어서일까?
그것은 아니다. 아래 표는 올해 하반기 아파트 상승률이다. 지난 8주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0.17%에 그쳤다. 이 상승률은 연간 기준(52주)으로 환산하면 1.11%의 상승률이 된다. KB국민은행 통계가 시작된 1986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가 연평균 상승률이 5.13%인 것을 감안하면 평년의 5분의 1 수준의 상승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년에 비하면 상승세가 저조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 국한해서 보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1.52%가 올랐으며 이를 연간 상승률로 환산해보면 9.89% 상승 수준이다. 역사상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 평균치가 5.96%인 것을 감안하면 평년 대비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다섯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 하겠다.
이와 반대로 지방 부동산 시장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난 8주 동안 지방 소재 5개 광역시(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는 0.44%나 하락하였고 기타 지방(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는 0.16%나 하락하였다. 같은 기간 동안 수도권이 0.64%나 상승한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만약 현재 집값이 오르고 있는 원인이 정부에서 대출을 마구 풀었기 때문이라고 가정하면 지방 집값 하락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서울 사람에게만 대출을 해주고 지방 사람에게는 대출을 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락론자들이 대출 확대의 주범으로 삼고 있는 정책 대출, 그러니까 2023년의 특례 보금자리 대출이나 2024년의 신생아 특례 대출의 경우 9억원 이하짜리 주택에만 적용된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평균가가 12억원이 넘는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4년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1387만원이다. 서울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울 아파트 평균 거래가는 12억4625만원이다. 9억원 이하에만 적용되는 정책 대출 대상은 극히 일부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수도권에서도 신생아 특례 대출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은 경기도이고 그다음은 인천이다. 서울은 대출 신청 건수가 가장 적다. 하지만 매매가 상승률은 서울(1.52%)이 경기도(0.29%)나 인천(0.19%)을 압도한다. 결국 이번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은 정책 대출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 때문일까. 집값이 상승할 때마다 주범으로 지목되는 투기꾼 때문일까? 지금의 매매가 상승이 일부 투기꾼 때문이라고 쳐도 전세가 상승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 너무 늦은 대책
결국 전국 모든 지역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일부 지역만 오르고 매매가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전세가는 그보다 더 오르는 현상을 설명할 유일한 단어는 바로 ‘공급 부족’이다. 서울의 주택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세가도 오르고 매매가도 오르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지방은 아직도 수요 대비 공급 과잉이기 때문에 매매가도 떨어지고 전세가도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공급 대책에 주안을 둔 8·8 대책은 현재 주택 시장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만든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대책이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 것일까?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 찍어내고 싶다”고 예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이 그 해답이다. 아파트를 공급하려면 최소 3년이 걸린다. 콘크리트 반죽이 딱딱한 콘크리트로 굳는 데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택지 개발이 끝난 상태일 경우다.
재건축·재개발도 마찬가지다. 과거부터 얼기설기 엮어진 규제를 뚫고 재건축 사업이 공급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잡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현재의 공급 부족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8·8 부동산 대책이 2024년이 아니라 적어도 3년 전인 2021년에 수립됐어야 했다. 공급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3년 전에 제거하고 공급을 준비했어야 지금의 공급 부족, 그리고 내년 이후에 닥쳐올 더 큰 공급 부족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3년 전에 정부에서는 왜 이런 공급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2021년은 민주당 정권이었으니 현 정권은 책임이 없다는 것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가 2021년에도 있었다고 하더라도 공급 관련 규제 완화 정책을 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021년에는 집값이 크게 오르던 시기이다. 이때 공급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집값 상승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던 2022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새로운 정책이 집값을 자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국민의 수준이 정책의 수준을 만든다. 왜 시장에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때까지 가만 있었냐고 비난하는 것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과거 누구의 잘못이든 공급 부족 현상은 기정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내년에는 수도권 전역으로 퍼져 나갈 것이고 2026년에는 지방까지 공급부족 현상이 퍼져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단기 대책은 없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을에 추수할 것이 없는 것이다. 추수하는 일꾼을 재촉한다고 땅에서 곡식이 금방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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