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환타'가 'K-환타' 보다 맛있는 이유

김아름 2024. 9. 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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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국가별 과일 탄산음료 기준
유럽은 과일 탄산음료에 과즙 함유 의무
제품명에 '~향' 붙으면 합성향료로 맛 내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환타 마시러 이탈리아 간 사연

최근에 여름 휴가로 이탈리아를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는 첫 방문이었는데요. 수천년 전 고대 유적들이 도시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무척이나 이색적이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걱정했던 소매치기 문제도 겪지 않았고 음식도 나름대로 입에 잘 맞아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그 먼 이탈리아에 다녀왔으니 이탈리아 음식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죠. 세계 3대 미식 국가라는 이탈리아까지 갔는데, 당연히 파스타나 피자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오늘 [생활의 발견]은 탄산음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 오렌지 환타와 색깔과 맛이 전혀 다른 이탈리아의 오렌지 환타/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이탈리아는 물 마시기 참 힘든 나라였습니다. 거의 모든 식당이 물값을 따로 받죠. 싸지도 않습니다.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1.5유로(약 2200원)는 받고 유명 관광지 인근이라면 3~4유로(4000~6000원)를 받기도 합니다. 어디서나 공짜 물을 마시는 한국인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탄산음료를 많이 마셨습니다. 가뜩이나 느끼한 피자와 파스타류를 먹는데, 돈까지 내고 먹으려면 물보단 탄산이 낫죠. 저의 선택은 늘 '환타'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국에서 먹던 환타와 비교도 안 되는 천국의 맛인 겁니다. 먼 곳으로 여행을 와서 기막힌 풍경을 보며 마신 탓일까요? 제 혀는 그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탈리아 환타는 '정말로' K-환타보다 맛있습니다. 왜일까요.

12% VS 0%

사실 탄산음료, 특히 환타나 써니텐 같은 과일맛 탄산음료 마니아들에게 유럽은 '성지'입니다. 한국에서 마시는 과일맛 탄산음료보다 훨씬 풍부한 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역시나 '법'에 있습니다. 유럽연합(EU)에서는 과일맛 탄산음료에 의무적으로 실제 과즙을 넣도록 돼 있습니다. 최소 4% 이상의 과즙이 들어가야 패키지에 해당 과일 맛이라고 표기할 수 있죠. 

대부분의 나라는 이 기준을 훨씬 넘는 과즙을 탄산음료에 넣습니다. 국내에서 '환타 맛집'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경우 오렌지맛 환타에 오렌지 과즙을 8%나 넣습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프랑스산 오렌지 탄산음료 '오랑지나'는 오렌지과즙이 9.2% 함유돼 있습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웬만한 오렌지에이드보다 과즙 함량이 높죠. 제가 마신 이탈리아의 오렌지 환타는? 무려 12%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판매 중인 환타의 성분 표기. 오렌지 과즙 농축액(succo di arancia da concentrato)이 12% 들어 있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한국에서 판매되는 오렌지 환타는 어떨까요. 전성분 중 오렌지와 관련있는 건 합성향료(오렌지향)뿐입니다. 진짜 오렌지 과즙은 단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산 오렌지 환타와 한국의 오렌지 환타는 색깔부터 차이가 납니다. 이탈리아의 오렌지 환타가 밝은 노란색을 띠는 반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오렌지 환타는 진한 주황색이죠. 오렌지 과육 색과 오렌지 껍질 색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환타와 유럽의 환타는 법적으로 아예 다른 음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식약처의 식품 표시기준에 따르면 합성향료만을 사용해 맛을 낸 경우 성분명이나 원재료명 다음에 반드시 '향'자를 붙여야 합니다. 유럽의 환타는 '오렌지 환타'고 한국의 환타는 '오렌지향 환타'라는 이야기입니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환타 오렌지/사진=쿠팡

이 차이는 패키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과즙을 넣은 유럽의 환타나 오렌지 주스의 경우엔 패키지에 오렌지 사진이 들어 있는 반면 과즙을 넣지 않은 국내산 환타는 오렌지로 보이는 단면과 잎사귀를 그려넣었을 뿐입니다. 향료만 사용했을 경우 실제 과일 사진을 넣을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바닐라향 등 천연향료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아이스크림에 바닐라 향료를 넣었다고 해도 '바닐라향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입니다. 

0.0009%의 비밀

그렇다면 '향'자가 붙지 않은, 실제 과즙이 들어 있는 제품은 유럽과 비슷할까요. 애석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원재료를 넣을 것만 규정하지 원재료의 함량을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델몬트 오렌지에이드의 경우 오렌지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고 패키지에도 오렌지 사진이 있는 '오렌지 음료'인데요. 실제 오렌지 과즙 함유량은 2.5%에 불과합니다. 오렌지향도 넣었죠. 유럽이었다면 '오렌지향 에이드'가 됐을 겁니다.

음료 외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예시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허니버터칩의 경우 실제 버터는 0.3%, 꿀은 0.06% 함유돼 있는데요. 전성분 중 가장 적게 들어간 두 성분이 바로 '허니'와 '버터'입니다. 그럼 이 '단짠' 맛은 어떻게 낸 걸까요. 1.6%가 들어간 '허니버터맛 시즈닝'으로 냈습니다.

감자칩의 대명사 포카칩 트러플솔트맛은 이 분야의 끝판왕입니다. 물론 트러플이 적은 양으로도 강한 향을 내는 식재료긴 하지만 한 봉지에 트러플이 0.0009% 함유됐습니다. 포카칩 한 봉지가 60g이니, 한 봉지에 트러플이 0.00054g 들어 있는 셈입니다. 감이 잘 안 오죠? 트러플 1티스푼을 넣으면 포카칩 1만 봉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해태제과 허니버터칩/사진제공=해태제과

트러플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해외에서 인기있는 트러플 감자칩 브랜드인 '헌터스' 제품의 경우 트러플시즈닝 4%, 천연트러플향 0.32%, 합성트러플향 0.32%가 들어 있습니다. 합성향료를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양입니다. 해외에서 먹었던 트러플 감자칩과 오렌지 환타가 더 맛있었던 건, '휴가 플라시보 효과'가 아닌 팩트였습니다.

과즙 12%와 0%의 차이는 고스란히 맛의 차이로 돌아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렌지향과 과당으로 맛을 낸 K-환타가 더 좋다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탈리아 환타의 손을 들어 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여행 기간 동안 오렌지 환타만 한 열 병 넘게 마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럽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맛있는 환타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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