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신의 핀테크 스토리]블록체인, 미래 글로벌 채권시장 핵심 인프라 될 가능성 높아
토큰 증권은 다양한 기초자산(RWA)을 블록체인 기반에서 토큰화한 증권이다. 우리나라는 우선 기초자산 중 비정형적 증권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글로벌시장에선 전통적인 정형 증권도 포함해 범위가 훨씬 넓다. 주식, 채권 등 전통적 시장은 이미 형성돼 있는 시장 규모만 약 243조 달러(32경 5620조원). 이 중 5~10%만 토큰화한다 해도 무려 12~24조 달러의 엄청난 규모다. 특히 채권은 전통적 시장의 55%를 차지해서, 그만큼 관심도가 큰 자산이라 할 만하다.
이런 채권시장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발행 시도는 비교적 일찍부터 시작됐다. 2018년 세계은행과 호주 연방은행이 함께 발행한 Bond-i(Blockchain Operated New Debt Instrument) 1억 호주달러(818억 원)가 세계 최초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에 의하면 지금까지 블록체인 기반 채권은 38건, 5조9044억원 발행됐다. 지역적으로도 독일, 스위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이 20건, 일본, 홍콩 등 아시아 13건, 중남미 2건, 미국 2건, 이스라엘 1건 등 다양하다. 기존 인프라와는 완전히 다른 블록체인 기반에서 발행된 점을 고려하면, 건수도 많고 규모도 꽤 크다는 생각이다.
왜 이렇게 블록체인 기반 채권에 대해 관심이 많을까. 전문가들은 첫째, 효율성 제고와 비용 절감을 꼽는다. 블록체인은 실시간 결제·정산이 가능해서, 기존 채권시장의 시간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에서 직접 거래할 수 있어서 중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활용하면 발행과 거래는 물론, 이자 지급, 원금 상환도 자동화할 수 있어 그만큼 채권시장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단 의견이다. 둘째, 거래의 투명성 확보에 따른 보안성 강화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성격상 위변조 방지기능을 갖고 있어 데이터 조작과 사이버 위험을 방어할 수 있는 데다, 데이터 복제로 거래의 투명성과 추적기능도 갖추고 있다. 90% 이상이 장외시장인 채권시장의 신뢰도 제고에 한몫할 수 있단 얘기다. 셋째, 글로벌 접근성에 대한 제고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블록체인이라는 통합 플랫폼을 통해 국가 간의 서로 다른 규제 환경이나 인프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발행엔 어떤 특징이 있나 살펴보자. 우선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법 개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부나 국제기구, 인프라 구축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은행 등의 발행이 많아, 총발행액의 98.3%, 건수로는 76.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국제기구와 은행의 비중이 75%로 압도적이다. 회사채는 건수론 23.7%지만, 금액은 총발행액의 1.7%로 극히 적다. 1건을 제외하곤 모두 일본(8건)에서 발행됐다. 부동산 토큰 증권에 익숙한 개인투자자들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소액 발행·판매하는 회사채를 사고 있다고 한다. 투자자로선 발행 비용 절감만큼 더 좋은 금리로 투자할 수 있고, 기업으로선 회사채 판매 기반을 넓힐 수 있는 이점이 있는 셈이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특징은 블록체인 기반의 녹색 채권, 일명 '그린본드'의 발행이다. 왜냐면 ESG가 강조되면서 가성비 좋은 녹색 채권 발행이 중요해진 데다, Green Washing이 늘면서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원산지 증명 등 추적(tracing) 능력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HSBC는 2019년 보고서에서 블록체인 기반으로 녹색 채권을 발행하면, 기존 그린본드 대비 발행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2023년 2월 홍콩 정부가 발행한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녹색 채권을 필두로 지금까지 일본의 노무라증권, 히타치, 네덜란드의 ABN AMRO 등 5건의 녹색 채권이 발행됐다.
또한 채권 그 자체는 아니지만, 최근 화제를 몰고 있는 토큰 채권펀드도 있다. 이더리움 온체인 상의 토큰 채권펀드로 미국의 단기국채, 환매채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는 블랙록의 '비들(BUIDL)'이 그것. 지난 3월 출시된 이후 8월 말 현재 5억 달러(약 6700억원)를 넘어섰다. 또 '비들'의 선전에 힘입어 미국의 토큰 펀드 총규모도 20억 달러(2조6800억원) 이상이라고 한다. 시장에선 '비들'의 성격이 사실상 스테이블 코인과 다를 바 없는데, 기존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이자도 있고, 블랙록의 높은 신용도 갖추고 있어서 가상자산투자자에게 인기가 높다고 분석한다. 향후 이들 토큰 펀드가 계속 늘어나 미국 국채의 새로운 수요로 자리매김하면, 국채 수요 부족이 걱정인 미국 정부로서도 내심 크게 반길만한 일이다.
아무튼 블록체인 기반 채권의 장점과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녹색 채권, 미국 국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토큰 채권펀드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블록체인이 미래 글로벌 채권시장의 핵심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개인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민간, 정책당국 모두 보다 전향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실행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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