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0곳 중 8곳 "한국도 첨단산업 세액공제 현금으로"
#재작년 시설투자를 단행한 이차전지 부품제조업체 A사는 2022년과 2023년 잇따라 영업이익이 나지 않아 2년 연속 세액공제를 받지 못했다. A사는 "공장 증설은 했지만 영업이익을 끌어올리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 세액공제액을 당분간 이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미국처럼 현금으로 환급해 준다면 경영상 안정은 물론 적극적 투자계획 수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소재업체 B사는 최근 라인 확장 계획 연기를 검토했다. B사 관계자는 "올해 영업이익 전망이 좋지 않고 세액공제 혜택도 즉각 받을 수 없어 자금수혈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결국 계획대로 라인 확장을 진행했지만, 투자금액의 일부를 즉각 현금으로 환급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대신 투자 결정이 좀 더 신속히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 기업 10곳 중 8곳이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환급해 주는 '직접환급제'(다이렉트페이)를 도입해 국내 첨단산업 지원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한국배터리산업협회,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한국바이오협회와 공동으로 조세특례제한법(이하 조특법)상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를 받고 있는 첨단산업분야 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접환급제 도입이 기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직접환급제 도입이 기업의 자금사정이나 투자 이행 또는 확대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한 기업이 80%에 달했다고 대한상의는 설명했다. '별 도움 되지 않음'은 20%였다.
현행 조특법상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대상으로 지정되면 사업화 시설 투자액에 대해 대기업·중견기업은 15%, 중소기업은 2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세액공제 방식이 '법인세 공제'에만 국한돼 있어 대규모 초기 투자나 업황의 급변으로 충분한 영업이익을 담보하기 어려운 첨단산업분야 기업들에겐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응답기업 10곳 중 4곳(38%)은 현행 법인세 공제 방식에 대해 '세액공제분 실현이 즉각 이뤄지지 못해 적기투자에 차질을 빚는 등 제도의 실효성이 미흡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응답기업의 62%는 '납부 법인세가 공제액보다 크거나, 미공제액은 10년 내 이월 가능하므로 큰 문제를 못 느낀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대한상의는 "법인세 감면을 못 받게 될 경우 세액공제액을 10년 간 이월할 수 있지만, 대규모 투자를 적기 집행해야 하는 첨단산업 특성상 세액공제 수혜를 즉각 받게 하는 것이 정책효과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며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빠른 시일 내에 직접환급 제도가 시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해외 주요국들은 영업이익과 관계없이 첨단기업의 투자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직접 환급해주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세액공제액 전부를 현금으로 지급하거나 다른 기업에 양도할 수 있도록 했고, 프랑스 역시 올해 3월 시행된 녹색산업 투자세액공제를 통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분야 투자에 대해 법인세를 상쇄하고 남은 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환불해줌으로써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캐나다는 지난 6월 청정기술 관련 자본 투자액의 최대 30%를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청정기술 투자세액공제를 도입했다.
또 조사기업 절반가량은 투자세액공제액을 이월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납부 법인세가 세액공제액보다 적어 이월했던 적이 있는지'에 대해 응답기업 50%가 '그렇다'고 답했다. '없다'는 50%였다. 기업규모별로는 상대적으로 투자규모가 큰 대기업(90.9%)의 이월 경험이 월등히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견기업은 33.3%, 중소기업은 54%였다.
'올해 예상 투자액 및 영업이익 등을 감안한 이월공제 가능성'에 대한 답변 역시 비슷해 '그럴 것으로 예상한다'는 답변이 51%를 차지했다. '아니다'는 49%였다. 대기업의 이월 전망(81.8%)이 중소기업(60%)과 중견기업(30.8%)보다 높게 나타났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정부가 국가전략기술 세제지원 확대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행 법인세 공제 방식은 성장 가속화와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수록 혜택이 제한되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게 업계의 평"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이렉트 페이 도입을 통해 기업들이 즉각 세액공제 효과를 누리고 이를 적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도록 국회와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현재 국회에는 '다이렉트 페이' 도입을 위한 '조특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다.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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