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도전하라”...첫 경기 치른 용산구 다문화 어머니 농구단
“엄마 달려!” “백(back), 뒤로 공을 패스해!”
24일 오전 11시, 서울 시내 여성 농구팀 경기인 ‘은평 클럽 리그’가 열리고 있는 서울 은평구 은평다목적체육관에는 묵직한 공이 바닥에 튕기는 소리와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가득 울렸다. 주황색 단복을 갖춰 입은 선수들의 긴장한 두 눈은 공 만을 쫓았다. 선수들은 훨씬 더 날쌔게 달리는 상대 팀 선수들을 보며 “대학생들이라 우리가 못 쫓아가”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1점이 목표”라는 말이 경기장에 울렸다. 응원석에서 공이 백보드를 맞고 튀어 나오면 큰 탄식이, 조금이라도 기세가 오르면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최연소 선수가 25세, 최연장자는 50세인 7개국 출신의 다문화 가정 어머니들이 속한 ‘맥파이스(magpies) 용산구 어머니 농구단’은 이날 3번의 경기를 통해 12점을 얻었고 세 경기를 모두 졌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뛴 첫 경기다. 엄마 선수들은 “경기 뛰어 본 게 어디냐” “오늘 해보니 조금만 연습하면 충분히 이기겠다”며 응원 온 남편,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흐뭇한 표정으로 선수들과 그 가족을 지켜보던 농구팀의 천수길 감독은 “열심히 뛰어준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다.
맥파이스 농구단은 작년 10월에 결성됐다. 천 감독이 2006년부터 이끌고 있던 ‘다문화 어린이 농구단’ 연습 때 만난 학부모들이 어느날 “아이들만 시키지 말고 우리도 해보자”는 말에 공을 튕겨봤고, 이날 어머니들 요청을 받은 천 감독은 어머니 농구단을 결성하고 지도하게 됐다고 했다. 농구단 결성 소식이 입소문을 타자 중국, 일본, 대만, 캄보디아, 베트남, 나이지리아, 이란 등 해외에서 한국으로 와 가정을 꾸린 20여명의 여성들이 농구를 하고 싶다며 연락해왔다.
일주일에 한번 모여 연습하기로 했지만, 살림하고 아이들 학원 보내느라 매주 모든 선수가 모여 연습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아 메이메이(중국·41)씨는 “아이 셋 키우려니 농구 연습에만 매진할 수는 없었다”면서 “그래도 농구 연습을 할 때 만큼은 육아 하며 쌓이는 고민과 걱정이 녹듯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사춘기 딸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한다”고 했다.
경기장에는 한국어, 중국어, 영어가 섞여 오갔다. 경기 중간에 작전 회의가 열리자, 선수들은 각자가 적절한 단어를 떠올릴 시간을 충분히 기다리고, 서로에게 열심히 귀 기울였다. 하야시 리에(일본·50)씨는 “중국어를 할 줄 몰라서 중국에서 온 어머니들끼리 얘기할 땐 가만히 뒤로 빠져 지켜본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이 농구단에선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몸 부딪히며 서로의 문화를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오후 1시 30분쯤 마지막 경기에 뛰는 맥파이스 농구단 선수들의 움직임은 첫 경기 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변해있었다. 직전 휴식 시간까지 “이기러 온 것은 아니다” “참가한 것 만으로도 좋다”며 웃음을 나누던 이들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자 “우리 점수를 조금 더 내보자”며 욕심을 보였다. 팀은 마지막 경기에서만 8점을 얻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레이업 슛으로 득점에 성공한 이수민(캄보디아·32)씨는 “처음엔 운동신경 없다며 입단도 거절했는데, 아들과 주말마다 즐겁게 연습한 덕분에 오늘 골도 넣었다”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이씨는 “합류한 지 2~3개월밖에 안 된 신입이라 긴장한 상태로 큰 기대 없이 경기에 나왔는데 정말 기쁘다”고 했다.
경기를 모두 끝낸 후 주장 송비비(중국·42)씨는 “시합을 해봐야 우리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걸 알았다”면서 “오늘 상대팀과 처음 경기를 해보니 팀워크 쌓는 방법과 룰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후회하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해 도전하라’고 가르치곤 하는데, 오늘은 내가 그 말을 몸소 아이들에게 보여준 날이라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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