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역대급’ 국채 발행···‘자금 돌려막기’에 시장 부담 커지나
정부가 내년 역대 최대 규모의 국고채를 발행키로 하면서 채권시장에 ‘공급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세수결손 여파로 자금 ‘돌려막기’에 나선 정부가 부족해진 재원을 만회하려는 것인데, 건전재정 기조 하에서도 세금은 깎아주고 국채 발행은 늘리면서 시장 부담만 키운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국고채 발행 물량 201조원 ‘역대 최대’
지난 27일 기획재정부는 내년 국고채 발행 계획 물량을 201조3000억원으로 발표했다. 이는 올해(158조4000억)보다 42조8000억원(27%) 늘어난 것으로 역대 가장 많다. 국고채 발행 규모는 2021년(180조5000억원)을 기점으로 쭉 감소해왔는데 내년엔 크게 불어나면서 4년만에 증가세로 전환하게 됐다.
특히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국고채 순발행이 크게 늘었다. 순발행액은 올해(49조9000억)보다 33조9000억(67.9%) 늘어난 83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같은 계획이 발표되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반영해 하락세를 보이던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며 시장이 출렁였다. 같은 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5bp(1bp는 0.01%포인트) 오른 연 2.940%, 2%대에 진입했던 10년물 금리는 9.9bp 상승한 3.073%에 거래를 마감했다.
채권 시장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데, 공급이 많으면 채권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수익률)는 상승한다. 당초 시장에선 건전재정을 강조한 정부가 올해와 비슷한 160조원 내외를 발행할 것이라고 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풀기로 하면서 ‘공급 리스크’에 금리가 오른 것이다. 30일에도 3년물 금리는 연 2.953%, 10년물은 연 3.088%를 기록하며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국고채가 늘어난다는 건 빚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국고채 발행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순 없다. 빚을 낸 만큼 정부 지출을 늘려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내년 국채 발행 증가는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세수결손으로 이곳저곳에서 끌어다 쓴 자금을 상환하기 위한 성격이 크다는 점이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팬데믹 이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정부가 빌린 규모는 연평균 81조원으로 2019년 34조원을 크게 웃돈다”며 “(내년 국채 발행량 증가는) 대규모 세수 결손 등으로 인해 공자기금을 갖다 쓴 결과 부족해진 재원을 국고채 발행으로 만회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공자기금은 정부가 공공자금을 공공목적에 활용하기 위해 운용하는 기금으로, 다른 공공기금에서 여유 재원을 빌려오거나, 자금이 부족한 곳에 빌려주는 역할을 해서 ‘기금의 저수지’로 불린다.
지난해 막대한 세수결손이 생기자 정부는 공자기금을 일반회계(일반재정)에 빌려주는(예탁) 방식으로 자금을 끌어다 썼다. 환율 급변동에 대응하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의 여윳돈도 공자기금으로 끌어와 일반회계로 전용했다. 세수는 부족한데 재정건전성에 얽매여 재정 지출은 늘리기 어려우니 가능한 자금을 돌려막기 한 것이다.
세수결손으로 외평기금을 끌어다 쓰다보니 최근처럼 환율이 급락(원화 강세)하는 국면에선 대응하기도 어려워졌다. 기재부는 이를 감안해 올해 별도로 18조원의 원화 외국환평형채권(외평채)를 발행해 환율 관리에 사용하려 했다. 원화 외평채를 발행하려면 외국환거래법이 국회에서 개정돼야 하는데, 여당에서 발의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발행되지 못했다.
결국 2년 연속 막대한 세수결손에 따른 재원 부족과 발행이 어려워진 원화 외평채까지 감안해 정부가 국채 발행을 크게 늘린 셈이다. 이를 두고 경제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재정이 건전해지지도 못하는 국채 발행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근본 원인은 세수 부족”이라며 “세금을 깎아주면서 국채 발행을 늘린다는 것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건전성이) 개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국채 물량이 시장에 쏠리면서 당장 부담은 커졌다. 하반기부터 늘어난 은행채와 한전채의 증가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이와 맞물려 채권시장의 수급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는데다 선호도가 높은 국고채·은행채·한전채가 수급을 빨아들이면 회사채의 금리는 오르고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법이 개정돼 내년 20조원에 달하는 원화 외평채 물량도 시장에 풀릴 경우 충격은 더욱 클 수 있다.
다만 채권시장의 ‘돈맥경화’로 금리가 치솟았던 2022년 레고랜드 사태와 달리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큰 만큼 실제 충격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심할 필요가 있지만 2022년은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기였고 여러 사태가 맞물렸다”며 “지금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시장금리를 계속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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