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못’ 대통령의 필연적인 ‘일못’

한겨레21 2024. 9. 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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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논란 잇따르자 “대통령은 뉴라이트 의미 모른다”는 해명, ‘알못’ 대통령이라는 본질 담고 있을지도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8월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문화미래리포트 2024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인사한 뒤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이 뉴라이트 아니냐는 질문에 김태효 대통령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답했다. “대통령께서는 뉴라이트라는 의미를 정확히 모를 정도로 이 문제와 무관하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8월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솔직히 나는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 말은 아마 진실일 것이다. 이 한마디에 정권의 본질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이 뉴라이트인지를 의심하는 것은 정권이 유별나게 한-일 관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8월23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1주년을 하루 앞두고 야당의 사과를 요구하며 “1년간 정부는 괴담과 싸워왔다”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 1조6천억원이 이 과정에 투입됐다”고 했다. 야당의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오염수 방류에 대응을 따로 하지 않았을 거라는 황당한 자기 고백이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대일 저자세 배경?

일본 언론은 오염수 방류가 최장 100년도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후쿠시마 원전 내부의 핵물질을 꺼내는 데 실패해 오염수가 계속 생산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지금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리긴 이르다. 오히려 앞으로도 일본에 투명한 정보 공개 등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실의 메시지가 이런 식으로 나와선 안 된다.

대통령실이 다시 한번 ‘괴담론’을 꺼내든 것은 최근 뉴라이트 논란 등으로 불거진 친일 논란에 반격을 가하면서, 야당이 제기하는 다른 의혹 역시 ‘괴담’ 프레임으로 받아치려는 의도가 실린 게 아닌가 의심된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있더라도 정권이 일본 이슈에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집착하는 이유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서 2025년을 겨냥한 ‘큰 그림’의 존재를 의심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자 광복 80주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같은, 기념비적인 무언가를 계획할 수 있다. 최근 보수언론 분위기도 심상찮다. ‘친일몰이’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정치권 일부의 정략에 불과하다는 식의 기획이 대표적이다. 양국 국민이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왕래도 잦아졌다는 건데, “증오와 저주는 보복의 악순환을 낳는다” “광복 80년, 한-일 수교 60년을 앞두고 과거사에 대한 대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조선일보 8월28일 김윤덕 칼럼 중)라는 식의 감상적 접근도 나온다.

양국 국민이 가까워지는 것과 통치세력이 과거사를 직면하고 슬기롭게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이런 접근은 논리적 오류다. 그런데도 국민 일반의 ‘반일 정서’를 낮추기 위해 이런 캠페인(?)이 진행 중이라면, 내년에 한-일 정상의 합의 내용(그런 계획이 있다면 말이다)에 양국 간 경제적·문화적 교류를 강화하면서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 수준을 파격적으로 제고하자는 내용이 포함되는 걸 예측할 수 있다.

한-일 간 군사적 밀착은 과거사 정리가 필수다. 여기서 윤석열 정권의 해법은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임을 우리는 ‘물컵의 절반’ 발언 등을 통해 이미 확인했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무작정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고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는 전문가가 상당수다. 그럼에도 밀어붙인다면? 많은 국민이 ‘알못’(알지 못하는) 대통령이 덜컥 국정을 맡아 나라가 이상한 데로 가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대통령은 뉴라이트를 ‘알지 못한다’는 김태효 1차장의 말은, 이러한 측면에서 그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진실을 가리키게 된다.

‘알못’ 대통령의 이상한 국정 운영

‘알못’ 대통령의 일면은 2025년도 예산안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금리를 동결했다.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 때문에 금리를 인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아쉬움을 표했다. 내수부진이 심각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거다.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금리 인하의 걸림돌인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를 키워온 것은 이 정권이라는 사실이다. 2023년 10월 동아일보에 ‘저절로 떨어지는 집값도 못 잡은 정부는 처음’이란 제목의 칼럼이 실릴 정도였는데, 이미 그때도 오늘날과 같은 상황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현 상황은 경기회복과 가계부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라는 함정으로 정부 스스로 걸어 들어온 것과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8월27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2024 국제 사이버범죄 대응 심포지엄 개회식 참석 뒤 K-과학치안 전시 공간에서 딥페이크 탐지 소프트웨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금리 인하 효과를 제때 기대하기 어렵다면 재정을 써서 내수 진작을 도모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예산안을 보면 2025년은 명백한 긴축이다.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 감세로 세수결손이 초래된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니 지출은 더더욱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조합이 왜 2025년에 필요한지는 더 설명이 필요하다. 못하면? ‘알못’ 대통령이다. 그러나 사실 딱히 설명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낙수효과의 신봉자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러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정부 5년 동안 400조원 이상의 국가채무가 늘면서 정부가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또 ‘전 정권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알못’의 늪에 빠져 있는 이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잘알’(잘 아는) 정치로 차별화를 해보려는 듯하다. 금융투자소득세 같은 복잡한 얘기로 용산과 한편에 서 야당을 압박하는가 하면, 응급실 운영 중단 등 파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 문제에선 중재자를 자처하는 게 그렇다.

물론 용산은 내밀하게 주고받았어야 할 2026년 의대 증원 유예 제안이 언론에 바로 보도됐다는 점에서 한동훈 대표의 ‘자기 정치’를 의심한다. 8월30일로 예정됐던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찬도 그래서 갑작스럽게 유예됐다. 하지만 의료 현장은 심각하다. 그 누구의 ‘자기 정치’건 뭐건 정권이 의정 갈등의 출구전략을 찾을 기회가 생겼다면 그걸 충분히 활용하는 게 유능한 통치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여기서도 ‘알못’ 본능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한동훈 대표는 채 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여사 문제, 역사관이 의문시되는 인사 논란 등 대통령과 정면충돌하거나 보수 지지층과 등 돌릴 수밖에 없는 의제는 피해가면서 ‘민생’과 ‘유능함’이라는 코드를 겨냥하고 있다. 이런 게 말하자면 ‘잘알’ 행보일 거다.

철학 없는 ‘잘알’ 면모 전시해봤자…

나름대로 소재를 잘 고른 것 같지만 여전히 놓치고 있는 게 있다. 각종 민생 문제에 대한 ‘유능함’을 전시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그 답을 하나로 꿰뚫는 통치 비전과 철학을 전달하는 것이다. 윤석열 시대에 유권자들이 지도자에게 원하는 것은 단지 ‘잘알’이 아닌, ‘정잘알’이라는 거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한동훈 대표의 철학을 아직 알 수 없다는 건 문제다. 검사 시절 만물박사 같던 윤석열 대통령이 ‘알못’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통치 철학의 부재가 원인이다. 지금이야 대립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똑같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정치인 한동훈으로선 이 의문을 넘는 게 가장 큰 시련일 것임을, 오늘의 이 난장판은 보여주고 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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