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야 헤어졌다② 74건의 죽음이 남긴 단서 [창+]
[시사기획 창 '죽어서야 헤어졌다' 중에서]
<인터뷰> 故 이은총 씨 사촌언니
아침에 출근을 하겠다고 동생이 문을 열고 나갔고요. 동생이 나간 지 1~2분 만에 바깥에서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집에 들렸는데 작은엄마가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나 할 정도로 가늘고 조그마한 소리였대요.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갔는데 칼을 겨누고 범인이 서 있었던 거죠. 그 당시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셔서 맨손으로 한쪽 손은 깁스였지만 한손은 맨손이었는데 칼을 잡으신 거죠. 그렇게 하는 와중에 아이가 나온 거예요.
아이가 ‘할머니’하고 불러서 가해자도 봤고 할머니도 봤죠. 그 순간에 들어가라고, 아이한테 ‘들어가’라고 소리를 쳤는데 아이가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 저희 작은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을 하시고 아이 쪽으로 가다가, 몇 발자국 가다가 그 순간에 딸이 걱정이 되셨나 봐요. 그래서 뒤를 돌아봤는데 그 찰나에 동생은 쓰러져 있고 이미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하남 교제살인 피해자 언니(음성변조)
그 사건 당일에 00가 4시에서 5시쯤 헤어지자고 통보를 했고 그때 헤어졌어요. 그래서 이제 00가 친구들한테 나 헤어졌어 했는데, (그리고 나서) 전 남친이 강서구 PC 방 살인사건 흉기 이거를 검색했고 7시 경에 매장에서 칼 4자루나 샀고 샀어요. 그리고 00한테 한번 만나자고 얘기를 해서 00를 불렀고...
제 동생이 친구한테 마지막으로 뭐지 왜 전화를 안받지 이 카톡을 한 시간이 11시 8분이예요.목격자분이 신고를 한 시각이 11시 16분이예요.
<인터뷰> 하남 교제살인 피해자 어머니(음성변조)
11시 반에 전화가 왔어요. 아이가 다쳤으니 내려오래요. 그래서 제가 정말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어요. 불과 1시간 반 전까지 저랑 같이 있었던 애가 나간다는 말도 안 했는데 그런 전화가 오니까 당연히 저는 ‘말도 안되는 얘기야’ 끊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2분 있다가 또 전화가 왔어요. ‘아이가 지금 1층에서 많이 다쳤어요’ 이렇게 전화가 또 왔어요. 그래서 아빠랑 오빠를 내려보냈죠. 가보라고. 그러더니 이제 내려가서 한 5분 있다가 아빠한테 전화가 와서 울면서 지금 00가 너무 많이 다쳤다고… 00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녹취> 하남 교제살인 피해자 어머니-친척 통화
우리 00가, 우리 00가… 집 앞에서 칼을 맞아서.
병원인데 살 가망이 없대. 아 어떡해, 아 어떡해. 나 좀 살려줘. 지금 와줘.
<인터뷰> 하남 교제살인 피해자 어머니(음성변조)
힘들 거 같다고. 힘들 거 같다고. … 의사가 와서 죄송하다고 숨이 멎었다고 와서 확인하라고.
아빠랑 저랑 들어와서 아이가 맞는지 확인을 하려고 들어갔죠. 그런데 아이를 봤는데 아이가 너무 상태가 엉망인 거예요. 너무 심하니까 목 아래는 가려서 안 보여주시더라고요. 제가 이제 손만 봤는데 손이 여기가 다 찢어져서, 양쪽 손이 다 찢어져서 너덜너널해 있더라고요. 양쪽 손이 전부 다. 그게 밥 먹고 난 두 번째 본 저희 아이 모습이에요.
우리는 이같은 죽음들을 ‘교제 살인’ 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교제 살인’은 얼마나 될까?
국가는 이들 죽음에 대해 공식적 통계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시사기획 창은 직접 교제살인 실태를 파악해보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검색어 조합을 통해 300여 건의 판결문을 확보하고,
일일이 내용을 확인해 연인 관계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만을 추렸습니다.
3년 반 동안 74건의 죽음이 드러났습니다.
우선 피해자의 연령대는 40대가 31%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20대였습니다.
피해자 가운데 여성은 85% 정도, 남성이 15% 가까이 됐습니다.
살인의 방법에는 흉기(58%)나 둔기(8%)를 사용한 경우가 66%로 가장 많았습니다.
때리거나(14%) 목졸라 죽인 경우(12%)가 그 다음이었습니다.
범행 장소는 피해자의 주거지가 가장 많았고(30%), 가해자 주거지 등 순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숙박업소, 차량 등 밀폐된 공간이 많았습니다.
2021년 제주에서 전 연인의 집에 침입해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사건처럼 가족이나 지인을 살해하거나 다치게 한 경우도 15%였습니다.
<인터뷰>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너무 중요해요. 이것만, 이 단계만 잘 거쳐나가면 피해자 사망하지 않습니다. 정말 확신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스러져가고 있는 그 여성들의 사건을 보고 들을 때마다 정말 다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다 살 수 있는 여자들이었다.
정말 막을 수 있는 단계가 있었을까?
전문가들과 판결문을 더 자세히 분석해 봤습니다.
일종의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이별 통보 등으로 시작되는 갈등의 초기 단계,
가해자는 자해위협 등으로 피해자와의 관계를 지속해보려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첫 경찰 신고도 주로 이 단계에서 이뤄집니다.
경찰 신고 뒤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으면 가해자는 더 심한 보복 폭행을 가하거나 스토킹에 나서기도 합니다.
이 단계까지도 접근금지 등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조처가 없으면, 살인 같은 치명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 살인이 일어나기 전 폭행 등 다른 피해가 먼저 발생한 경우는 42%,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했던 경우도 전체 사건의 23%에 달했습니다.
폭행이나 피해자의 신고는 명백한 살인의 전조지만, 이 단계의 대응은 한계도 있습니다.
<인터뷰> 이경하/변호사,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그 이전에도 계속 누적되고 지속 반복된 교제폭력이 살인까지 급속히 정말 빠르게 급속발전하는데 그 시간이 정말 한두 달 정말 짧다. 그래서 사실 피해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게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거를 판결문을 보면서 많이 느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살인의 전조로서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 통제 단계에 주목합니다.
<인터뷰> 허민숙/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어떤 강압적인 행위를 강압적 통제라고 합니다. 친밀한 사이에서 있는 상대방에게 뭘 입을 것인지, 어디로 갈 건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무슨 일을 할 건지, 언제 귀가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다 상대방이 결정해주는 것을 얘기해요. 상대방의 주체는 하나도 없고 내가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명령하고 지시하고 그것에 대해서 순종하도록 계속 요구하는 거, 이거를 강압적 통제라고 얘기합니다.
상당수 교제 살인 판결문에서 가시적 폭력이 나타나기 이전에 '강압적 통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허민숙/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내가 누굴 만날 건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 할 건지를 상대방한테 다 보고해야 되고 다 지시를 받아야 해요. 이런 생활을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다, 수용하기 어렵다. 이제 그만 만나고 싶다, 이제 헤어지고 싶어, 맞지 않는 것 같아 이런 얘기를 했을 때 가장 많이 살해당하는 거. 그래서 강압적 통제가 특히 친밀한 관계의 폭력에서 여성이 사망하는 그것에 아주 무서운 전조증상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방송일시 : 2024년 8월 27일 (화) 10시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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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sail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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