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패키지’에서 의료개혁만 떼내자는 사람들[노원명 에세이]
언론의 촉수는 여론 풍향대로 움직인다. 또한 레밍 기질이 있어 한쪽이 제대로 풍향을 감지했다 싶으면 우우하고 그쪽으로 몰려간다. 그 돌진의 기세는 맹목적으로 맹렬해서 없던 풍향도 생겨날 정도다. 지금 언론이 새 현상처럼 주목하는 응급실 뺑뺑이는 전문의파업 이전에도 심각했다. 나는 2023년 6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명색이 선진국에 살면서 사고를 당하면 받아주는 응급실도, 재깍 달려오는 의사도 없다. 괜찮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까. 운이 좋다면 평생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한국은 응급치료가 운의 영역에 맡겨진 나라였고 그때는 모든 언론이 의사수를 왜 안늘리느냐고 아우성을 쳤다. 지금은 ‘의대증원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고 모순되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나무랄 수는 없다. 여론은 원래 합리적이지 않다. 몸속의 암보다는 손끝 상처에서 나는 피 몇 방울에 더 크게 반응한다. 또 건망증이 심해 어제 했던 말과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다.
여론에 편승해서 먹고사는 산업이 언론이다. 간혹 언론이 쓰는 것이 여론이 되기도 한다. 정치도 언론과 비슷하다. 변덕스러운 여론에 올라타야 하고 양 떼 몰듯 여론의 흐름을 이리저리 옮길 수 있다면 천하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가 언론과 다른 것은 책임의 지점과 강도다. 언론은 그때그때 여론을 제대로 좇아가지 못할 때 시장에서 심판받는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세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레밍은 어느 정도 언론의 숙명이다. 정치는 훨씬 복잡하다. 여론은 처음 정치를 향해 ‘너 왜 안 쫓아와’ 나무라다 기껏 쫓아가면 ‘너 왜 이랬다저랬다 해’하고 나무란다. 몇 번 스텝이 엉키면 선거에서 심판받고 주저앉으면 역사에서 심판받는다. 언론은 잠시 부끄럽고 말지만 정치는 10년, 20년 ‘야당살이’에 심각하면 ‘폐족’이 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쇠고집, 수다스러움, 성내는 버릇, 제한된 인사풀, 말술, 그리고 평균치를 넘어서는 아내사랑으로 정치적으로 ‘아마추어’ 취급을 당하는 일이 잦다. 그런 단점을 고치려면 대통령을 종신직으로 바꿔야 한다. 조선의 종신 임금들은 더러 오래 재위하면서 노련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5년 단임의 대통령을 선출했을 땐 그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패키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선출제 국가에서 지도자를 고쳐쓰는 경우는 없는 법이다.
윤 대통령의 장점은 ‘올바른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 아닌가 한다. 그는 임기 초 화물연대 파업에서 타협 대신 가치를 앞세워 변화를 이끌어냈다. 윤 정부의 대일 관계회복은 밑도 끝도 없는 친일논란을 양산했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의료개혁에서 놀라운 용기와 뚝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면 이런 ‘돈 안되는’ 싸움은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보수적 세계관을 지닌 아마추어 대통령이기 때문에 가능한 전투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보수층은 의료개혁 문제로 쪼개지고 있다. 전투가 장기화할수록 반대 목소리는 커지고 그에 편승하는 보수층도 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이라는 패키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듯하다. 화물연대 파업과 싸우는 윤석열, 반일 종족주의와 싸우는 윤석열과 의료 귀족주의와 싸우는 윤석열은 분리될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이 의료개혁에서 철수하면 역사전쟁에서도 철수하고 노동 개혁에서도 철수하게 돼 있다. 연금개혁은 생각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편하게 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보수층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조석지변의 여론을 따라 뺑뺑이를 돌면서 운이 좋으면 다음 정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몰가치함이 이 나라 보수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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