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까지 고려한 선수에게 알카라스는 왜 졌을까?[박준용 인앤아웃]
시즌 마지막 그랜드슬램 US오픈에서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빌리 진 킹 국립테니스센터에서 열린 남자단식 2회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 3위)가 세계 74위 보틱 판더잔출프(네덜란드)에게 1-6 5-7 4-6으로 무릎을 꿇었다.
경기전만 하더라도 세계랭킹이나 커리어에서 월등히 앞선 알카라스의 승리가 당연히 예상됐다. 전 세계 1위 알카라스는 그랜드슬램 네 차례 포함 총 15개의 우승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고 판더잔출프는 개인 최고 세계랭킹 22위까지 올랐지만 투어 대회 결승에만 두 차례 진출했을 뿐 우승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판터잔출프는 지난해 부상 후유증으로 올해 롤랑가로스 1회전 탈락 후 은퇴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자 경기가 열린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는 판더잔출프의 승리를 축하는 박수와 더 이상 알카라스의 경기를 볼 수 없다는 아쉬운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알카라스가 US오픈에서 2회전 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그랜드슬램에서는 지난 2021년 윔블던 이후 약 3년 만이다. 알카라스가 그랜드슬램에서 단 한 세트도 따지 못하고 패한 것 역시 2021년 윔블던 이후 약 3년 만이다. 당시 알카라스는 2회전에서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에게 4-6 1-6 2-6으로 졌다. 특히, US오픈은 알카라스가 지난 2022년 자신 첫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했던 의미 있는 대회라 이날 패배는 더욱 쓰라렸다.
알카라스는 1, 2세트를 내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팬들은 알카라스가 연속 세 세트를 따 역전 드라마를 쓸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망과는 달리 3세트에서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두 차례 잃으며 결국 무릎을 꿇었다. 돌이켜 보면 2세트 게임 스코어 5-5에서 더블폴트로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내준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알카라스의 폼은 본인조차 실망스러울 정도로 최악이었다. 특히, 주무기라고 할 수 있는 포핸드는 방향을 잃은 듯 허공을 가르며 베이스라인을 한참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포핸드 위너는 5개에 불과했고 언포스드 에러는 무려 12개를 범했다. 백핸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핸드 위너는 겨우 1개, 언포스드 에러는 8개를 기록했다.
서브 통계 역시 올 시즌 평균 수치를 밑돌았다. 올 시즌 알카라스의 첫 서브 성공률은 66%, 첫 서브 득점률은 72%에 육박했다. 두 번째 서브 득점률 역시 57%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첫 서브 성공률은 61%, 첫 서브 득점율은 60%에 불과했다.
알카라스는 최고의 선수도 어떤 날에는 흔들릴 수 있다는 테니스의 예측할 수 없는 본질을 보여 준 셈이다.
알카라스의 부진 조짐은 US오픈 직전에 열린 신시내티오픈에서부터 있었다. 가엘 몽피스(프랑스)와 2회전 도중 경기가 풀리지 않자 라켓을 여러 차례 바닥에 세게 내리꽂으며 화풀이를 했고 결국 패했다. US오픈을 앞두고 현지에서 가진 연습 도중에는 오른쪽 발목이 살짝 돌아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 윔블던 우승 후 파리올림픽과 신시내티오픈에 출전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알카라스는 “코트에서 상대와 경기를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내 감정과 경기를 했다. 득점하고 실점하는 과정이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다. 그리고 상대는 생각보다 많은 실수를 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관리하고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라면서 “경기력을 전혀 끌어올릴 수 없었다. 경기 내내 같은 지점에 머물러 이기거나 앞서 나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것에 대해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윔블던 이후 강행군을 펼친 것에 대해서는 “올림픽이 끝난 뒤 충분한 휴식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부족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에너지가 부족했다”라면서 “하지만 나는 이것을 핑계로 삼고 싶지 않다”라고 밝혔다.
반면, 판더잔출프는 다양한 네트 플레이 전략으로 상대를 압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1세트 게임 스코어 4-1에서 위너와 다름없는 알카라스의 백핸드 발리를 로브로 리턴한 후 알카라스의 트위너 샷을 백핸드 발리로 득점한 장면은 압권이었다. 경기 내내 덤덤한 표정으로 보여준 침착한 경기력은 오히려 알카라스보다 한 수 위처럼 느껴졌다.
대어를 낚으며 지난 2021년 8강 이후 다시 한번 대회 3회전에 진출에 성공한 판더잔출프는 “스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적인 면에서 안정적인 경기를 했고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아직 알카라스를 이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몇 시간 후나 내일 감정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투어무대는 정말 힘들다. 대회에서 시드를 받지 못하면 시너와 같은 어려운 상대를 1회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지만 결국 많이 지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승리를 하면서 더 많은 자신감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한 일이다. 윔블던 이후 더 많은 경기를 연속적으로 하려고 했고 이것이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판더잔출프는 3회전에서 25번시드 잭 드레이퍼(영국, 25위)와 맞대결을 펼친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은퇴까지 고려했던 판더잔출프가 과연 돌풍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 SPOTV 해설위원(loveis55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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