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피소드] "흐지부지 안 되길"‥용기 낸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들의 당부
"나를 갉아먹는 기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하대 졸업생 유 모 씨는 1년 넘게 텔레그램 딥페이크 합성방에 들어가 직접 가해자를 특정할 자료를 모았습니다.
모욕과 조롱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멈추지 않은 건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정부를 보며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왜 문제가 커지고 나서야 해결에 나서는지 화가 나기도 합니다.
처음 용기를 내 피해를 말한 피해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보며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사용하는 피해자들의 이름은 모두 성까지 바꾼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인하대 졸업생 유 모 씨는 지난해 1,200명이 참가한 텔레그램 방을 발견했습니다. 방 이름에는 '인하대'와 자신의 이름이 모욕적으로 적혀있었고, 오고 가는 대화 역시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경찰에도 신고해봤지만,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몇 개월 만에 수사가 종결됐습니다.
결국 유 씨는 직접 가해자 검거에 나섰습니다. 1년간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 증거 자료를 모으며 대화 내용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그사이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쏟아졌고, 그 속엔 성희롱과 욕설이 난무했습니다. 연락을 받지 않으면 지인들을 해치겠다며 협박하고, 결혼식까지 찾아가겠다고도 했습니다.
[유 모 씨/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여성] "'이거는 너 때문에 지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거다. 얘는 지인들 팔아 넘기는 애다' 이렇게까지 얘기를 했거든요. '너는 어떻게든 끝까지 쫓아갈 거다. 네가 결혼하면 몰래 가서 뷔페에서 밥을 먹겠다.', '애를 낳는다면 너의 애까지 이런 일을 만들 거다. 평생을 쫓아가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 보고 이제 한숨밖에 안 나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1년 넘게 증거를 모은 끝에 가해자 중 극히 일부가 검거됐습니다. 언론사 제보도 준비하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목소리 낸 다른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유 모 씨/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여성] "저도 정말 1년 넘게 진행하면서 중간에 포기해야지라는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나를 갉아먹는 기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보도 후 피해자들이) 수사 중지를 당해서 잊고 살았는데 다시 시작하게 됐다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봤어요.'위로가 됐고 자기도 용기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 이야기들로 저도 다시 힘을 내고 있거든요."
수개월간 보도를 준비하며 만난 피해자들은 마음 한켠에 각기 다른 모양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이젠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다가도 당시 피해 상황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피해는 계속되지만 가해자를 잡을 수 없다는 얘기에 단념하다가도 분노가 치솟는다고 했습니다. '진짜 내 몸이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누가 내 합성 사진을 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평화롭던 일상은 점차 곪아갔습니다.
보도 이후 중고등학교생 여성 군인 등 연령과 직군에 관계없이 피해자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피해 학교 이름이 적힌 명단이 돌기도 했고, 학생이 교사를 상대로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디지털 성범죄의 뿌리를 뽑아달라'고 지시했습니다. 교육부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잇따라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딥페이크 등 허위 영상물을 소지하거나, 시청·구입한 행위도 처벌하는 규정을 만드는 등 입법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허위영상물에 대한 처벌 기준을 현행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등의 입법 논의도 시작됐습니다. 불법 영상물을 자율규제할 수 있도록 텔레그램과 핫라인 구축도 추진한다고 합니다.
수사 기관도 적극 검거에 나섰습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 수사과는 '딥페이크 집중대응 TF'를 꾸리고 내년 3월까지 집중 단속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최근엔 텔레그램에서 이른바 '지인 능욕방'을 운영한 20대 남성을 붙잡아 검찰에 넘기기도 했는데, 피해자는 246명에 달했습니다. 이외에도 피해자들의 신고로 딥페이크 합성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이들이 하나씩 검거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쏟아지는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책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왜 정부가 이전에는 적극 대응하지 않았는지 씁쓸하기도 합니다.
[전 모 씨/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여성] "화가 났죠. 제가 갔을 때만 해도 못 잡는다, 잡을 방법이 없다. 이렇게 무기력하게만 해주시다가 이렇게 파장 커지고 나니까 한두 명씩 잡히고 있잖아요. 그러면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찾다 보면 뭐라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것 같아요. 그때 빨리빨리 잡았다면은 이렇게까지 피해 규모가 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유 모 씨/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여성] "이렇게 오래전부터 일어났던 일을 지금 다루는 게 어떻게 보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암울해요. '이미 전부터 진행이 됐었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심하게 피해를 입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이렇게 법안을 만들고 강화해야 되고 이런 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면 확실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만들어도 잡히지 않을 거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유 모 씨/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여성] "형량을 높이면 이게 경각심이 커지는 거긴 한데 사람들이 지금 당장에 '이걸 하면 벌을 이만큼 받는대' 보다는 '나 못 잡아'가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서."
[차 모 씨/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여성] "(딥페이크 텔레그램 방은) 언제든 그냥 바로 또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니까…법안들이 시작만 아니라 끝마무리도 잘 됐으면, 흐지부지 안 됐으면 좋겠어요."
여러 대책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피해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여전히 텔레그램 방에선 '절대 잡히지 않는다'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 참가자들도 있습니다. 이번 파장이 일궈낸 관심이 수많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정책 마련으로 이어질 때입니다.
이승지 기자(thislif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32478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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