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CEO 전격 수사, 그 이면에 숨겨진 프랑스와 러시아의 의도는 [스프]

김혜영 기자 2024. 9. 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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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빽]
 

'딥한 백브리핑 : 딥빽', 복잡한 국제 이슈를 김혜영 기자가 쉽고도 깊이 있게 설명해드립니다.
 

텔레그램 CEO이자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구금됐다가 예비 기소된 사건을 두고 여러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표현의 자유'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외교적으로도 민감한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프랑스와 러시아의 이야기입니다.

러시아는 두로프의 체포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자, 사실상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결정이라며 프랑스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수사의 일환일 뿐, 정치적 결정이 아닌 판사의 사법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분들 중에는 '러시아가 왜 유독 이번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라고 궁금해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이번 편을 마련해 봤습니다. 특히, 내외신 각각에서 보도된, 두로프에 대한 혐의 개수와 혐의 명도 제각각이어서 헷갈렸던 분들을 위해 저희가 프랑스 검찰에 직접 확인한 혐의 사실도 말씀드리겠습니다.
 

표현의 자유 논란 촉발한 '두로프 전격 체포'

우선, 사건 개요입니다. 두로프는 현지시각 8월 24일 저녁 8시쯤 프랑스 파리 외곽 르부르제 공항에 전용기를 타고 내렸다가 프랑스 수사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그런데 워낙 전격적으로 체포가 이뤄졌기 때문에 당시 이 장면을 포착한 언론은 없었습니다. 체포 이후에야 처음으로 프랑스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려지게 됐는데, 사실 체포 다음 날까지도 프랑스 사법 당국에서 두로프를 어떤 혐의로 체포한 건지를 밝히지 않아서 추측 보도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억압이라는 비판들이 나왔습니다.

엑스(X·옛 트위터)의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는 체포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 "이런 일(플랫폼 운영자 체포)이 벌어지면 나중에는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당할 수 있다"고 비꼬았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 럼블의 CEO도 "검열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프랑스 검찰 자료에 적시된 혐의 12가지는

이렇게 '프랑스 당국이 헌법적 가치까지 부정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면서, 프랑스 검찰은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이 26일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두로프의 혐의 12가지를 전격 공개했습니다.

지금 그래픽에 나온 게 모두 두로프의 혐의들입니다. 그래픽에 적시된 것이 불어/영어로 기재된 표현을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라 더 정확한 내용인데요. 가독성을 위해 약간 축약한 버전을 글로 순서대로 나열해 설명해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1) 우선 조직된 집단의 불법 거래를 허용하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을 방조했고, 2) 프랑스 당국이 법적으로 승인된 감청을 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문서를 당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공을 하지 않았고, 3) 그리고 아동 음란물 소지를 방조했으며,


4) 또 아동의 성적 착취 이미지를 배포했고, 5) 마약 밀매에 관여했고, 6) 자동 데이터 처리 시스템 작동을 망가뜨리려고 여러 정보 등의 판매를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7) 두로프는 또 조직적 사기 범죄를 방조했고, 8) 범죄 조직에 가담했으며, 9) 조직된 집단의 범죄 자금 등을 세탁했으며,


10) 인증 절차 없이, 기밀 보장을 위한 암호화 서비스를 제공했고, 11) 암호화 수단을 사전 신고 없이 제공하고, 12) 수입하기도 했다, 이렇게 총 12개 혐의였습니다.

두로프는 이 12개 혐의에 대해서 4일간의 심문을 거친 뒤에 보석금 500만 유로, 우리 돈 약 74억 원가량을 내는 조건으로 풀려났지만, 출국이 금지되고 또 일주일에 두 번은 경찰서에 출두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예비기소 되면서 혐의 줄었다?... 프랑스 검찰 "12개 혐의" 확인


프랑스 당국은 이러한 내용의 명령을 내리면서 이른바 '예비기소'를 제기했습니다. 예비기소란, 판사가 범죄를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추가 조사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추가 조사를 통해서 더 밝혀낼 부분이 있는지 판사가 시간을 준 것이기 때문에 실제 두로프가 본기소가 되는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몇몇 언론은 두로프가 4일간의 검문을 거친 끝에 총 12개 혐의에서 6개 혐의로 줄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해서, 저희가 지난 26일 프랑스 검찰이 밝힌 혐의와 28일에 밝힌 혐의를 비교해 봤습니다. 얼핏 보시면, 형식적으로는 기존 12개 혐의에서 6개 혐의로 절반이나 줄어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희가 하나하나 프랑스어를 번역하고 색깔로 내용을 구분해 봤더니, 사실상 겹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프랑스 검찰에 보다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서면 질의를 했습니다. 4일간의 심문 끝에 두로프에 대해 적용한 혐의가 줄어든 것이냐, 아니면 기존 그대로의 혐의를 가져가는 것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검찰은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6개 혐의로 줄어든 게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총 12개 혐의로 보는 게 맞다고 확인했습니다.


프랑스 검찰은 지난 28일 공개 자료에서 이번 수사가 지난 2월에 착수하게 된 경위와 관련해, 텔레그램이 아동 음란물, (마약) 밀매, 온라인 증오 범죄 등의 여러 사건에 등장했지만, 다양한 수사 당국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면서 "다른 프랑스 수사기관과 유럽연합 형사사법공조기구인 유로저스트 내의 다양한 파트너들, 특히 벨기에의 파트너들도 같은 의견을 공유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이번 사안의 문제 인식이 단순히 프랑스 검찰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의 사법기구들도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러한 혐의들에 대해 두로프의 변호사는 "소셜네트워크의 책임자가 자신과 관련 없는 범죄 행위에 연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프랑스 언론에 말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6일 이번 수사가 말하자면 텔레그램 길들이기 의도 아니냐, 이런 의혹을 받자, 두로프의 체포가 "정치적 결정이 전혀 아니다", "온전히 판사들의 결정에 달린 사안"이었다,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프랑스에 불쾌감 숨기지 않는 러시아…"양국 관계 최악"

러시아는 그러나 그 바로 다음 날부터 보란 듯이 정치적 의도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수위가 경계하는 정도였습니다. 두로프가 러시아 자국의 시민권자인데 프랑스가 정치적으로 그를 탄압하는 것일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ㅣ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
"만약 (두로프의 혐의가)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직접적인 통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될 것이고, 심지어는 대기업 총수에 대한 직접적 협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것은 분명히 정치에 뿌리를 둘 것이며..."

하지만 그 이후 러시아에서 나온 반응을 보면 점차 톤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두로프 사건이 정치적이라는 것은 완전히 명백하다"고 주장했고,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수천만 명의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격노하고 있다"며 관련 국제기구에 "프랑스의 행동을 비난해야 한다"고 촉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두고 "러시아와 프랑스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평가했습니다.

러시아가 유독 불편해하는 이유

물론, 이번 수사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른바 적절성 논란, 즉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소유자에게 이용자들의 범죄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또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한 사법적 절차가 맞느냐, 이런 문제 제기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러시아 당국의 비판적 시각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제기하는 데 러시아가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텔레그램을 상당히 중요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비판 제기가 과연 자국 시민권자를 위한 순수한 목적이 맞느냐, 이런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러시아가 지금 프랑스에 갖다 대는 비판의 잣대가 '정치적 의도'인데, 사실 그들 스스로도 그 '정치적 의도'로 이 문제를 대응하고 있다는 겁니다.

앞서 러시아 통신기관은 2017년에 테러 공격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텔레그램 사용자의 대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암호 해독 키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지만 텔레그램 측이 계속 거부한 바 있습니다. 이에 러시아 법원은 2018년에 차단 판결을 내렸는데, 러시아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이 차단 조치를 해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당국은 텔레그램과의 일종의 '냉각기'가 끝난 이후, 시점상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 들어선 이후에 당국의 입장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텔레그램 채널을 활발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군에서도 군인들의 핵심 소통 수단이자, 선전전의 주요 수단으로 텔레그램을 적극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러시아 정치 전문가인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콘스탄틴 소닌은 "러시아군 전문기자들이 러시아의 어떤 기밀이 공개될지 걱정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혜영 기자 kh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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