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고 날 수 있어. 위험해" 현실이 된 그 말…32살 청년의 마지막 일터 [스프]

조윤하 기자 2024. 9. 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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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피커] 구로역 산업재해로 목숨 잃은 청년들…"죽지 않는 철도를 위하여"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구로역'을 지나쳤을 겁니다. 서울역을 가든, 시청을 가든 늘 거쳐야 하고, 큰 쇼핑몰과도 연결돼 있어 이용객도 많습니다. 저 역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자주 구로역을 지나가곤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던 '구로역'은 32살 정석현 씨에겐 마지막 일터였습니다.


 

새벽 근무 도중 6m 아래로 추락해 숨진 정석현 씨

석현 씨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로역으로 출근했습니다. 졸업한 지 1년 만에 코레일 전기통신 직렬에 합격한 그는 역사 내 전기·통신과 관련된 설비를 보수하고 점검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지난 9일 새벽에는 '구로역 9번 선로'를 점검했습니다. 동료 2명과 함께 약 6m 높이의 전기모터카 작업대(바스켓)에서 고압 선류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 10번 선로를 지나던 선로점검차가 작업대와 부딪혔습니다.

충돌과 동시에 석현 씨는 6m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질 새도 없이 석현 씨는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석현 씨와 함께 일했던 31살 윤 모 씨 역시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함께 일하던 노동자 2명도 다쳤습니다. 30대 노동자 2명이 일터에서 스러진 건 찰나였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주가 되어갑니다. 구로역을 지나는 열차는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평소처럼 운행합니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말이죠. 구로역에 생긴 간이 추모 공간을 제외하면 달라진 건 없어 보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쩌면 청년 2명이 스러진 사고를 너무 빨리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석현 씨의 누나를 통해 석현 씨를 기억해보고자 합니다.
 

코레일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한꺼번에 터졌다

고 정석현 씨 유족
"늘 구멍은 많았습니다. 다만 그전까진 석현이가 그 모든 구멍을 운 좋게 피해 갔는데, 그날은 모든 구멍들이 겹겹이 쌓여서 사고가 터진 것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사고가 안 난 게 신기할 정도예요."

유족은 축적돼 있던 코레일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서 이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부실한 안전 매뉴얼과 부족한 인력,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소통 등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던 문제점이 사고를 야기했다는 지적입니다.


1) "관제 책임자가 달라서"…부족했던 소통

유족은 '9번 선로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왜 열차가 바로 옆 선로를 지나갔는지' 의문이 많습니다. 5~6m 높이의 작업대에서 일을 하는 건 사실상 공중에서 작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왜 인근 선로에서 열차가 출발했냐는 겁니다.

하지만 금천구청역에서 구로역으로 향하던 선로 점검차는 출발 당시 금천구청역의 발차 지시를 받고 출발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구로역 9번 선로에서는 노동자 4명이 작업을 벌이고 있었는데도 금천구청역에서는 '발차가 가능하다'고 지시한 이유, 해당 선로들의 관제 책임자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하철 1호선 열차가 지나가는 구로역 5~9번 선로의 관제책임자는 서울교통공사입니다. 무궁화호 열차가 지나가는 구로역 10번 선로의 관제 책임자는 코레일입니다. 이원화된 관리 주체 간 소통이 원활히 이뤄졌다면, 9번 선로에서 노동자가 작업하고 있다는 상황이 사전에 공유됐을 것이고, 10번 선로에 있던 열차는 발차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유족의 설명입니다.
 
고 정석현 씨 유족
"일단은 관제 책임자가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관리 주체가 달라서 공유가 안 됐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 시스템 자체가 이해가 안 갔어요. 관제 책임자가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이 돼야 하는데 아예 서로 단절돼 있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2) 부실한 안전 매뉴얼, 현장과 괴리된 작업계획서

석현 씨가 올라가 있던 작업대는 2년 전에 바뀐 신형 바스켓이었습니다. 이 바스켓은 좌우 180도로, 최대 4m까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9번 선로와 10번 선로의 거리는 고작 1.5m였습니다. 바스켓이 10번 선로 쪽으로 조금만 틀면 충돌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석현 씨의 작업계획서에는 작업 구간이 '구로구 내 5~9호선' 이라고만 명시돼있습니다. 석현 씨는 '구로역 10번 선로'에서 추락했는데, 정작 사고가 발생한 '10번 선로'는 석현 씨의 작업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겁니다. 인접 선로를 지나는 열차와의 충돌 가능성에 대한 언급 역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선로 간 거리가 가까운 탓에 작업자와 열차 간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건 예측 가능한데, 작업계획서는 현장과 괴리가 있었습니다.

유족 측을 대리하고 있는 전준철 노무사는 "9번에서 작업하더라도 10번 선로를 넘어서 교체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작업 환경이었다"고 지적합니다. 바스켓의 이동 반경 상 10번 선로를 반드시 넘게 돼있는데, 작업계획서에는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죠. 작업계획서 내 작업구간으로 명시하지 않다 보니 선로 점검차 발차 명령이 내려졌다는 게 전 노무사의 설명입니다.

유족은 '공중 작업 시 인접 선로를 차단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고 토로합니다. 철도노조 역시 이전부터 '작업 중인 선로 양쪽으로 인접한 선로는 운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3) 부족한 인력과 허술한 법

유족은 '하다못해 고속도로 보수작업을 할 때에도 신호수 역할을 담당하는 인력이 있는데, 선로 작업 때는 왜 해당 인력이 없었는지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선로 간 간격이 좁고, 인접선로 작업 중단조차 지켜지지 않는데 작업 환경을 관리하는 운행 감시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충돌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궤도를 점검하는 경우'에는 열차운행감시인을 배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선로 순회 등 단순점검 작업에는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철도노조는 이전부터 현장 안전관리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 2019년 10월, 경부선 밀양역 부근에서 선로작업을 하다 노동자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철도노조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정한 안전인력 확보를 법률에 명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인력이 부족해 작업 현장에서는 안전 감시업무 담당 노동자가 관리·감독 업무까지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아예 분리해서 별도 안전관리 인력을 두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법 개정은 없었습니다. 게으른 국회와 현장을 반영하지 않는 법은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고 정석현 씨 유족
"코레일이라고 하면 안전장치는 물론 시스템도 잘돼 있을 줄 알았어요.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2중, 3중을 기대하긴커녕 기본 안전장치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던 느낌입니다. 늘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인데 누군가의 기지로 사고를 막았던 거죠. 얼마든지 대형 사고가 터질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일이 보이면 덤벼들어"... 사측 발언에 또다시 무너진 유족

사고 발생 3주가 지나가지만, 유족은 사고 직후 어떤 초동 조치가 이뤄졌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구로역 내 CCTV에는 사고 현장이 찍히지 않았고, 운행하던 선로점검차에 블랙박스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블랙박스는 전원이 켜지면 2분 간격으로 저장되고, 일주일 동안만 저장되는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사고 발생 나흘 전인 8월 5일 오후부터 사고 당일인 8월 9일 새벽 5시까지 촬영된 영상은 저장되지 않았습니다. CCTV와 블랙박스, 영상 촬영 장치는 있었지만 사고 현장을 기록한 영상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겁니다.
 
고 정석현 씨 유족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영상이 전혀 없으니 초동 조치가 잘됐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충돌사인지 추락사인지 석현이가 왜 숨졌는지도 영상을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데 지금은 전혀 확인이 안 되니까... 평소에 블랙박스 관리가 전혀 안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고, 도대체 관리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안 한 건지, 제대로 한 게 뭔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숨진 노동자를 대하는 코레일의 태도는 유족에게 또다시 상처가 됐습니다. 사고 발생 당일(9일),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유족을 찾아갔습니다. 면담 자리에서 한 사장은 유족을 앞에 두고 '일하는 분 입장에선 눈에 일이 보이면 덤벼드는 것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서 찾는 듯한 발언을 가족들 앞에서 내뱉은 겁니다.
 
코레일 한문희 사장 (지난 9일, 유족 만나서)
"몸 잘 아끼고 하라는 얘기를 해도 일하시는 분 입장에서는 눈에 일이 보이면 그걸 막 덤벼들어서 하는 것도 있어요. 그러지 말아야 되는데. (중략) 본인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분들이었던 것 같다. 자기 일을 더 잘해보려고 했던 분들인 것 같아서..."


사고 당일 코레일 사장으로부터 이 발언을 직접 들은 유족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석현 씨 유족은 '정말 (석현이가) 실수로, 잘못해서 이 사고가 발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코레일 측은 "직원의 탓으로 돌리려는 취지는 아니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을, 동생의 죽음을 마주한 가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유족에 따르면 코레일 측이 유족에 제시한 합의금에는 석현 씨의 퇴직금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석현 씨가 회사를 그만두면 당연히 지급되는 퇴직금이 산업재해 합의금에 담겨있는 겁니다. 또, 사우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모금액까지 합의금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측이 산업재해 합의금에 석현 씨의 퇴직금과 사우 모금액 등을 넣어 합의금 부풀리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고 정석현 씨 유족
"코레일 측에서 사망자가 생겼을 때 부담하는 페널티적인 보상금은 없다고 느껴졌어요. 산재보험금은 보험공단에서, 직원 상해보험금은 보험사에서 내는 거잖아요. 사고가 발생하면 지급되는 금액 외에는 코레일이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은 크지 않은 거죠. 이래서 지금까지 코레일이 개선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껏 수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그동안 코레일이 어떤 페널티를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위험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석현 씨는 지난 2018년 입사했습니다. 졸업 1년 만에 취업한 거니, 또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일찍 취업에 성공한 편에 속했습니다. 유족은 '그래서 더 (석현 씨가)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장점을 찾으려고 했었다'고 기억합니다. 석현 씨 누나는 코레일에서 현장 업무를 맡을 수도 있다는 말에 되레 취업을 말렸는데, 코레일에 입사하겠다고 결정한 건 석현 씨였을 만큼 자부심도 강했습니다.

입사한 지 1년이 되던 해, 경남 밀양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석현 씨는 누나들에게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철도 현장이 워낙 위험해서 한 이야기였겠지만, 누나들은 석현 씨의 그 말이 사실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 했습니다.
 
고 정석현 씨 유족
"누나들이 잔소리를 하잖아요. 밀양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냐고 하면서 이직을 권했어요. 당장 회사 옮기라고요. 그런데 석현이는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보니까 장점을 찾으려고 하더라고요. 본인도 '나도 언제든지 그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라는 얘기를 하면서도 코레일에 다니는 걸 좋아해서 저희가 말려도 계속 다녔습니다. 그때가 너무 후회스러워요. 그때 다른 회사로 옮기라고 더 강하게 얘기했어야 됐는데... 정말 가족밖에 모르던 아이였거든요. 지금도 아침마다 잠에서 깨면 석현이가 없는 현실이 너무 괴롭고 믿기지 않아 눈을 뜨고 싶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석현이가 '누나야, 내가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 나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성실히 일했을 뿐인데'라고 말하는 거 같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조윤하 기자 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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