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30조 새 먹거리 시장 열린다…지속가능항공유 확대에 경쟁 불붙는 정유업계
2025년부터 항공업계 일정 비율 사용 의무화
눈치 보던 정유사, SAF 시장 선점 속도 낼 듯
지속가능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정유사들도 SAF 생산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항공업계에선 수요가 없어 SAF를 생산해도 이를 내다팔 곳이 없었지만 제도와 시장이 모두 자리를 잡게 되면 설비 투자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SAF 전용 생산설비를 갖춘 정유사는 아직 없다. 전 세계적으로 SAF 시장이 넓어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그동안 ①법·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았고 ②시장 수급 상황은 불확실하고 ③원가 부담이 상당해 구체적 생산 계획을 마련하지 못했다. 때문에 항공유보다 세 배가량 비싼 SAF를 항공사가 사야 할 유인이 없었다. 업계는 이번 발표를 통해 확실한 수요처가 생길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국내 한 정유사 관계자는 "SAF 생산을 위해 필요한 폐식용유 등이 원유보다 세 배 정도 비싼데 (이를) 사겠다는 항공사가 없어서 그동안 생산하지 않았다"며 "SAF를 제값 주고 팔 수 있는 시장이 열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유사들이 너나 없이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SAF는 주로 폐식용유, 해조류, 사탕수수, 바이오매스 등 폐자원을 원료로 생산한 친환경 연료로, 기존 화석연료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을 80∼90% 줄일 수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글로벌 SAF 수요는 2022년 24만 톤(t)에서 2030년 1,835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모더인텔리전스는 글로벌 SAF 시장 규모가 2027년 215억 달러(29조1,970억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익성·시장 불확실성 해소되면서 구체적 로드맵 나올 듯
우리나라는 세계 1위 항공유 수출국으로, 국내 정유사들은 이미 SAF 생산을 중요한 숙제로 여기고 생산 준비에 나서고 있다. 업계는 SAF를 포함한 친환경 연료 분야에만 2030년까지 총 6조 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대한항공 여객기에 주 1회 SAF 공급한다. 국내 공항에서 출발하는 상용운항 정기노선 여객기에 처음으로 국내 생산 SAF를 공급하는 것이다. 알 히즈아지 에쓰오일 CEO는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국산 SAF 상용운항 첫 취항식 행사에서 "향후 국내는 물론 해외의 수요 증가에 대비해 안정적으로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SAF 전용 생산시설 건설을 적극 검토 중"이라며 "국내 최초 국제노선 여객기에 SAF를 공급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아 안정적 제품 공급을 최우선으로 차세대 친환경 SAF 생태계 확장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올 1월 국내 최초로 바이오 원료(폐 식용유, 팜 잔사유 등)를 정제설비에서 시범 처리(co-processing)하였으며, 4월부터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항공유 국제인증(ISCC CORSIA)을 획득하며 본격적인 탄소저감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2026년 이후엔 국내 SAF 전용 생산 설비 조성을 검토 중으로 올 하반기부터 전용 공장을 짓기 위한 기초 작업에 들어간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폐자원 기반 원료 업체인 대경오앤티에 지분을 투자하면서 SAF 제조 원료 확보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은 2026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면서 올해 말 SAF 생산 테스트를 진행하는 한편 미국 인피니움사와 그린수소 및 이산화탄소를 통해 SAF를 생산하는 이퓨얼 기술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올 6월 일본 ANA항공에 SAF를 공급해 국내 정유사 최초로 이미 SAF 해외 수출에 나섰다. 2025년 이후엔 연간 생산량 50만 톤(t) 규모 SAF 공장을 완공하겠다는 방침이다. GS칼텍스 또한 2023년 대한항공과 국내 최초로 SAF 공급 및 실증 시범운항을 진행했으며 2025년 2분기(4~6월) 생산을 목표로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 바이오원료 정제 시설을 짓고 있다.
다만 시장 수요가 확보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시장이 안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당근'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 생산 및 판매된 SAF에 대해 갤런당 최대 1.75달러의 세제 혜택 줘 SAF 공급 업체의 설비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도 9월부터 최대 30엔의 SAF 생산 세액 공제를 시행한다. 기업들의 투자 및 기술 개발도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신속한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SAF 생산도 결국 친환경·신기술 개발인 만큼 투자 세액 공제와 동시에 생산 세액 공제 인센티브도 마련된다면 국내 정유사들이 글로벌 SAF 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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