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의 근간과 멀어져 버린 ‘에이리언: 로물루스’ [영화와 세상사이]

송상호 기자 2024. 9.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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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에이리언 시리즈의 최신작 ‘에이리언: 로물루스’(이하 ‘로물루스’)가 지난 8월14일 국내 개봉했다. 1979년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을 내놓은 뒤 올해로 45주년을 맞은 에이리언 프랜차이즈는 정식 4부작, 프리퀄 시리즈에 이어 프레데터 캐릭터를 동원한 외전 콘텐츠나 게임까지 외연을 넓혀왔지만, 2017년 개봉한 프리퀄 두 번째 영화인 ‘에이리언: 커버넌트’가 실망스러운 흥행 성적을 낸 이후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다.

이 시점에 등장한 ‘로물루스’가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평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하지만 ‘로물루스’는 시리즈에 대한 관심도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절대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 이유는 ‘로물루스’가 에이리언 세계관에 깔린 토대이자 근간을 은근슬쩍 간과하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겉으로만 보면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한 애정과 헌사로 가득해보이지만, 정작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을 다루는 데엔 실패했다.

‘로물루스’는 1979년 리들리 스콧이 빚어낸 뒤 이어진 테마를 되살리는 방법을 모르는 결과물로 보인다. 오히려 그걸 도구로만 활용하기에 바쁘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에이리언 시리즈를 뻔한 장르물의 틀에 가둬버리는 데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폭력과 번식력을 강하게 내뿜는 생명체 ‘제노모프’는 단단한 외피로 둘러싸인 덕분에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이 가능하고, 체내엔 산성 혈액이 흐르고 있어 자가 방어기제 역시 완벽하게 작동한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다른 괴수·크리처물이나 호러·스릴러 장르물과 다른 노선에서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선명하게 각인된 제노모프의 존재감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이 생명체가 어떻게 우리들 눈앞에 나타나게 됐는지 따져보는 일이다. 이때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 있다. 제노모프가 자연 발생한 미지의 존재인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인지 판가름하자는 말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묘사된 요소들에만 집중해 보자. 이 미지의 생명체들이 어째서 다른 생명체에 의존해 태어나야만 하는지, 또 그 숙주로 채택된 존재가 인간이기에 과연 그들이 인류와 어떤 관계에 놓여야만 하는지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나. 서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영화를 움직이는 힘은 바로 그로부터 출발한다.

결국 이 시리즈에선 생명체들 사이에 형성되는 현상을 어떻게 영화 언어로 풀어낼지 고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장르의 동력을 자아내는 공포 자체가 바로 서로 다른 생명체들이 각자를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인간과 제노모프가 굳게 닫힌 투명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숨죽인 채 서로를 의식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통상의 장르물이라면, 장면을 자주 전환하고 기괴한 음악을 삽입해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집중할 테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 숙주가 되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에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 그런 인간과 문 하나 사이의 거리만큼 가까워진 제노모프의 맹목적인 목표 의식이 빚어내는 잔혹함 말이다. 하지만 ‘로물루스’는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다루는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로물루스’의 후반부에는 주인공 레인이 쏟아지는 제노모프 무리를 퇴치하는 액션 신이 기다리고 있다. 에이리언 2편 속 인간들처럼, 레인은 펄스 소총을 들고 제노모프에게 사정없이 총알을 쏟아붓는다. 이 과정에서 레인은 선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중력 발생 장치의 주기를 활용해 위기를 영리하게 극복한다.

이 신에서 감독은 불리한 조건에서 인간이 어떻게 제노모프를 상대하는지 상세히 조명했다. 총기 액션, 무중력 상태와 중력 상태를 오가는 인간의 몸짓 등을 비롯한 장르의 쾌감 요소가 밀도 있게 나열된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하지만 핵심이 빠져 있다. 달려드는 여러 마리의 제노모프가 공포의 대상이 아닌 게임 속 처리 대상인 유닛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인간에게 집착하는 면모나 그 경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와 상호작용하는 레인 역시 제노모프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액션의 스펙터클만 강조된 채, 이미지의 향연만 생산되는 셈이다.

게다가 감독 페데 알바레즈는 자신의 전작 ‘맨 인 더 다크’를 상당 부분 빌려와 이번 영화를 구성하는 데 활용했다. 이곳의 제노모프는 ‘맨 인 더 다크’ 속 눈이 먼 노인이고, 레인을 비롯한 주인공 청년들은 그 영화에서 눈 먼 노인의 집을 털러 들어간 좀도둑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로물루스’가 우주에서 벌어지는 ‘맨 인 더 다크’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로 문제다.

또 알바레즈는 리들리 스콧의 1편과 제임스 카메론의 2편을 적절히 배합해 ‘로물루스’를 빚어냈다. 또 스스로 에이리언 시리즈의 팬을 자처하는 감독은 한 편 안에 지금까지 이어져온 에이리언 영화 속 명장면이나 중요한 소재 등을 아낌없이 녹여냈다. ‘로물루스’에서 합성인간 앤디가 위기에 빠진 레인을 도와줄 때 내뱉는 대사 ‘get away from her, you bitch’가 2편에 등장했던 리플리의 대사였던 것만 봐도 그렇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결국 알바레즈의 ‘로물루스’는 감독의 전작들과 지금껏 공개된 에이리언 프랜차이즈를 버무린 결과물일 뿐이다. 모든 이미지와 레퍼런스들의 총집합체라는 점에서 안전한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지향점을 설정하는 데 실패한 껍데기일 뿐이 아닌가.

재밌게도 ‘로물루스’는 프랜차이즈의 유산을 적극 활용했지만, 역설적으로 정작 시리즈의 근간을 제대로 파악해서 빚어낸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러니 이 영화를 두고 “에이리언 시리즈를 태동하게 한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단정 지으면 안 된다. 오히려 시리즈의 근간을 은근슬쩍 호러, 스릴러, 스페이스 오페라 따위의 장르 관습으로만 덮어버린 위장술처럼 느껴진다.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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