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이어 국감…몰아치는 야, 몸 사리는 정부기관

윤호우 기자 2024. 9.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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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국회 끝나기도 전에 국감철로 접어들어 피감기관들 긴장
제3차 방송장악 청문회가 열린 지난 8월 21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여당 의원 전원이 퇴장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주간경향] “22대 국회에서 의원들의 상임위가 정해지자마자, 상임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중심으로 해서 어떤 형식으로든 각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열라는 주문이 내려왔다.”

민주당 관계자 A씨의 이야기다. 현안이 집중된 국회 법제사법위(법사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과방위)에서 먼저 청문회 봇물이 터졌다. 지난 6월 21일 법사위에서 채 상병 특별검사법 입법 청문회가, 과방위에서 방송통신위(방통위) 설치·운영법 개정안 입법 청문회가 열렸다. 지난 5월 30일 22대 국회가 개원한 뒤 석 달 사이에 무려 13회의 청문회가 각 상임위에서 열렸다. 가히 ‘청문회 국회’라고 할 만하다.

사문화된 조항 발굴, 청문회 국회 만들어

앞서 21대 국회에서는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입법·조사 청문회가 통틀어 5회밖에 열리지 않았다.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서도 각각 4회뿐이었다. 22대 국회에서는 개원한 지 석 달 사이에 이를 2배 이상으로 뛰어넘었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이전 국회에서는 상임위가 매달 열리고 있는 마당에 청문회라는 것을 굳이 열 필요가 없었다”며 “국회에 오래 있던 관계자도 중요한 안건이라는 사유로 청문회 제도를 동원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그간 국회에서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조항을 ‘발굴’해 ‘청문회 국회’를 만들었다. 기존의 입법 청문회는 새로운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 여야가 전문가를 초청해 의견을 듣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청래 법사위원장(민주당)은 지난 7월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그동안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았던 국회법 조항이 참 많다”라며 “국회법 제65조 제1항에 의거해 중요한 안건 심사에 필요한 경우 청문회를 열 수도 있다”는 ‘국회법 사용설명서’를 읽었다.

지난 6월 중순 야권만 참여해 연 22대 국회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국회 상임위에 불출석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상임위에서 국무위원 등 정부 관계자의 출석은 여야의 합의가 있어야 사실상 가능하다”면서 “이들의 출석을 끌어내기 위해 찾은 묘안이 청문회였다”고 말했다. 청문회의 경우 불출석에 대한 적절한 사유를 인정받지 않으면 고발당할 수 있다. 민주당 의원이 상임위원장인 상임위에서 청문회가 시작됐다. 어쩔 수 없이 출석한 윤석열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청문회에서 호되게 당하자, 여당인 국민의힘은 결국 국회 상임위에 복귀하기로 했다. 복귀 후에도 야당 상임위원장이 있는 상임위의 청문회 바람은 거셌다.

청문회의 형태는 법안을 만들기 위한 ‘입법 청문회’에서 진실을 규명하는 ‘조사 청문회’로 바뀌었다. 방송장악 청문회가 대표적이다. 오로지 윤석열 대통령 추천 인사로만 구성된 ‘2인 방통위’가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와 KBS 이사 등을 일방적으로 선임한 것이 청문회의 조사 대상이 됐다. 3차에 걸쳐 청문회가 이어지자, 엉뚱한 곳에서 사달이 났다. 방통위 직원이 ‘청문회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여당 의원들에게 탄원성 공문을 보낸 것이 적발됐다. 야당은 이를 두고도 방통위를 줄기차게 몰아붙였다. 김철현 교수는 “청문회에서 피감기관에 여러 가지 자료를 요구하면 기관 내부에서 자료를 취합하는 것도 힘들지만, 자료에 대한 엄청난 정무적 판단을 거쳐야 한다”면서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청문회는 서막에 불과하다”면서 “이제 국정감사 시즌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을 찾는 방문객이 부쩍 늘어났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피감기관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일부 피감기관 고위관계자들은 청문회 증인으로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미리 손을 쓰게 마련이다.

국감 또는 청문회에 적절한 소명 없이 불출석하면 고발당할 수 있다. 참석하더라도 위증을 하면 처벌받는다. 이 점에서 국감이나 청문회는 성격이 비슷하다. B씨는 “처벌을 받더라도 기껏해야 벌금형이 나오겠지만, 나중에 고위 공직자 승진이나 법인 이사 자격 취득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면서 “공공기관은 물론 사기업에서도 청문회나 국감 증인 출석은 예민한 문제”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맷집 강해진 측면도 있어

국감은 청문회보다 더 센 기능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청문회는 출석 동행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지만, 국감이나 국정조사의 증인은 동행명령 대상이다. 청문회 국회가 끝나기도 전에 국감철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정부나 공공기관이 또다시 긴장해야 할 상황이다.

청문회 국회가 야당에 마냥 이로운 것은 아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청문회 국회는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에서 비롯됐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청문회가 야당의 분풀이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진영 논리가 주를 이루면서 청문회가 희화화되는 측면도 있을 뿐더러 과도한 청문회가 정국 피로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평론가는 “서명운동처럼 국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문회 자체가 갖는 한계도 있다. 김 교수는 “야당이 결정적 한 방 없이 파상 공세만 펼치면서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맷집이 강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청문회·국감 외에도 국정조사나 특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 등 야 6당은 지난 8월 28일 청주 오송참사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채 상병 사망사건이나 방송장악 시도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벼르고 있다. 김 교수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 보듯 여당 동의가 없는 야당만의 국정조사는 한계를 갖고 있다”면서 “국정조사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야당으로서는 여야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정조사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는 특검이 있다. 김 교수는 “이전의 국회 사례를 보면, 검찰이나 특검처럼 수사권을 가진 주체가 관여해야 국정 의혹에 대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했다”면서 “지금 청문회 국회는 정치적 논란만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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