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높아진 주담대 문턱에 실수요자 직격탄
"내년 초 결혼할 예정이라 서울에 아파트를 사려고 대출 계획을 일찌감치 세웠다. 평생 살 내 집을 마련한다는 심정으로 자금 형편에 맞춰 50년 상환 대출을 받을 계획이었는데, 느닷없이 상환 기한이 30년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당장 부족한 돈을 어디서 융통할지 비상이다."(30대 초반 직장인 A 씨)
"몇 주 전 7월 아파트 매매계약을 할 때는 은행 금리가 3.4%가 채 안 됐는데 지금은 4.2%에 육박한다더라. 정부가 얼마 전까지 '디딤돌'이니 '버팀목'이니 해서 저금리 정책자금 대출을 공급하지 않았나. 오르는 집값은 잡지도 못하더니, 이제 대출 사다리를 걷어차 내 집 마련을 막는다."(온라인 커뮤니티 게시 글)
"집값은 못 잡고 '내 집 마련' 막나"
7~8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22차례에 걸쳐 주담대 금리를 인상했다. 올해 들어 급증한 가계대출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22조5285억 원(8월 22일 기준)에 달한다. 전달 대비 6조7902억 원 늘어난 규모다. 가계대출은 올해 들어 7월까지 23조3289억 원 급증했다. 가계대출이 늘어난 주된 원인은 주담대 수요 증가다.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565조8956억 원으로, 올해 들어 7월까지만 추산해도 29조8579억 원이 증가했다. 특히 7월 주담대 증가 규모(7조5975억 원)는 월별 대출 잔액 집계를 시작한 2014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리인상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자 은행들은 수도권 주담대 기한 축소, 거치 기간 폐지, 주택 한도 축소 등 추가 조치에 나서고 있다. 9월 2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으로 주담대 한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출에 각종 제약이 더해지는 상황이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집 사라' 시그널 준 셈"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까지도 각종 저금리 정책 대출을 유지했다"며 "집값은 오르고 대출 길은 열려 있으니 수요자로선 당연히 매입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앞으로 주택 공급은 충분하니까 패닉 바잉을 하지 마라'는 신호 대신 '지금이라도 집을 사라'는 시그널을 준 셈"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분석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시장에 함부로 개입했다가 결과적으로 집값을 어마어마하게 올려놨다. 이런 부동산 실정(失政)에 따른 불만 속에서 집권해서인지 윤석열 정부는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결국 부동산시장이 과열되자 간접적 형태로 시장에 개입하고 나선 방법이 대출을 옥죄는 것이다. 정책 대출로 집값을 부양하고 실효적인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놓지 않다가 갑자기 대출 문턱을 높였다. 시장 참여자로선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부동산시장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 수요자들은 불안감에 일단 집부터 사야겠다고 결론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집값 상승 '풍선 효과' 우려도
문제는 정부가 차주(借主)들의 원성을 감수하고 대출 길을 좁히더라도 집값 안정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출 규제 강화만으로는 주택 가격이 더 상승하기 전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수요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차주가 받을 수 있는 대출 규모가 줄면 비교적 집값이 낮은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외곽과 경기 일부 지역은 주요 단지를 중심으로 매입 문의가 늘었다고 한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노도강(노원·도봉·강동구),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 서울 외곽의 경우 아직 공식 부동산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최근 거래 증가가 감지된다"며 "실수요자 입장에선 대출 길이 좁아졌다고 주택 매입을 포기하기보다 서울 외곽이나 경기 등 차선책을 찾아나서게 된다"고 말했다.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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