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좌파의 탈 쓴 ‘파시즘 극우’ 정치인인가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4. 9. 1. 09:00
[노정태의 뷰파인더] 다인종 국가 대한민국에서 민족주의 내세워 선동해서야…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등은 이념 분쟁이었으며, 판이한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다 근대적‧세속적이며 자유, 평등, 물질적 복리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해 분명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서구의 민주주의자는 소련의 공산주의자와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의 민주주의자가 러시아 정교를 신봉하는 민족주의자와 생산적 대화를 나누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20세기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만의 시대가 아니었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전체주의가 있었다. 전체주의는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여러모로 달랐다. 전체주의는 혈통으로 맺어진 민족 공동체라는 전근대적 가치에 기반을 뒀고, 세속적 자유 대신 지도자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요했다. 따라서 평등과 물질적 복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다. 개인보다 더 큰 가치, 요컨대 국가‧민족의 영광을 강조하며, 구체적 개인에겐 무한한 희생과 봉사를 강요했을 따름이다.
전체주의‧파시즘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역사학자인 로버트 O. 팩스턴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과학대학 명예교수의 저서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에 따르면 파시즘은 승리자가 되기 위한 진화론적 투쟁에서 선택된 민족들이 승리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보편적 가치도 거부한다. 정치 이념이라기보다 정치 운동에 가까우며, 파시스트의 기본적 태도는 집단적 참여 의식과 흥분을 고취시킬 수 있다면 이념‧강령 따위는 상관없다고 여긴다.
공동체가 개인에 앞서며, 개인의 권리 및 법적 절차를 존중하기보다는 민족의 운명을 먼저 생각한다. 그렇기에 파시즘은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달리 태생적으로 반(反) 국제주의적 성격을 나타낸다. '우리 핏줄', '우리 민족', 그리고 '우리를 괴롭히는 저 나쁜 놈들'로 이루어진 세계관이 파시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파시즘은 자기 민족의 부흥을 위한 비법을 지키기 위해 배타적 행태를 보였고, 그렇기에 '파시즘 국제 조직'의 성립은 불가능했다.
"‘뉴라이트'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쿨한 자칭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도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폄훼할 것이다."
이 문장의 취지는 분명하다. '그들'은 이해 못하는 '우리'의 감정을 강조함으로써, 두 집단 간 선을 긋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이다. 얼핏 생각하면 일본일 것 같지만 잘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조 대표는 '뉴라이트'와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를 지목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흥분‧열광을 등에 업고, 자신과 정치적 지향과 색채가 다른 누군가를 향해,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전형적인 파시즘의 언어다.
그러므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좌파가 아니다. 그의 정치적 포지션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그것도 '매우 오른쪽'이다. 보편적 기준을 놓고 보자면 분명히 그렇다. 조 대표는 극우다. 민족주의적 적개심을 선동하며 본인 스스로도 그에 사로잡혀 있는 극우 정치인이다.
2024년 늦여름, 조 대표는 그런 사람이 돼 있다. 자신이 친일파라 몰아세우고 있는 현 정권에 대한 증오를 넘어, 심지어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을 향해서까지, 뜬금없는 적개심을 표출하고야 마는 사람. 조 대표 스스로나 그의 지지자들로서는 납득하기 싫겠지만 '글로벌 스탠더드'가 그렇다. 조 대표 식으로 정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을 세상은 "극우"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좌파, 모든 공산주의자가 국가‧민족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공산주의 운동의 전개 과정은 민족주의적 열정을 흡수하고, 민족주의적 대중 감정과 타협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국가와 민족의 틀을 벗어난 보편적 인류 해방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조국혁신당, 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내 강경파가 보여주고 있는 늦여름의 민족주의 선동엔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 윤석열 정부를 몰아세우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인지, 아니면 한미일 군사협력을 방해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야권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상식적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지 오래다.
● 교토국제고 고시엔 우승에 웬 뉴라이트 운운?
● 자유주의‧공산주의는 적어도 ‘국제주의’라는 공통점 있건만…
● 세상을 ‘우리 민족 vs 민족의 적’으로 바라보는 파시즘의 이분법
● 조국‧조국 지지자 인정 못 해도 세계는 이들을 ‘극우’로 본다
● 20세기 반공 파시즘, 21세기 반일 파시즘… 군사독재와 뭐가 다른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8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 한국어 가사가 울려 퍼졌다. 한국인이 세운 일본 학교인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고시엔'에서 연장 10회 승부치기까지 이어지는 접전 끝에 우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고시엔이 일본인의 정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볼 때 매우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칠 듯하다. 하지만 그것을 예상하는 일은 어렵거니와, 현재 우리에겐 다소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밖에 없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제패가 오히려 지금 대한민국의 정신적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좌파의 탈을 쓴 극우 정치가 의회의 상당 부분을 잠식해버린 나라다.
8월 22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 바로 그 증거다. 그는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는 기사를 링크하며 이와 같이 본인의 소감을 덧붙였다.
"재일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 학생 및 야구부 선수의 다수는 일본인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의미심장한 한국어 교가를 부른다. 이 학교는 1947년 재일 조선인들이 세운 학교로 오랜 동안 정식 학교 인가를 받지 못했다. 결승 진출 소식에 뭉클하다. '뉴라이트'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쿨한 자칭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도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폄훼할 것이다. 교토국제고 필 우승!"
조 대표가 대중적 감성이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을 하는 것은 드물긴 해도 없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특히 "‘뉴라이트'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쿨한 자칭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도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폄훼할 것"이라는 말이 그렇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누구를, 혹은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을 염두에 두고 뜬금없이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를 비난하는 걸까.
8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 한국어 가사가 울려 퍼졌다. 한국인이 세운 일본 학교인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고시엔'에서 연장 10회 승부치기까지 이어지는 접전 끝에 우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고시엔이 일본인의 정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볼 때 매우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칠 듯하다. 하지만 그것을 예상하는 일은 어렵거니와, 현재 우리에겐 다소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밖에 없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제패가 오히려 지금 대한민국의 정신적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좌파의 탈을 쓴 극우 정치가 의회의 상당 부분을 잠식해버린 나라다.
8월 22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 바로 그 증거다. 그는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는 기사를 링크하며 이와 같이 본인의 소감을 덧붙였다.
"재일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 학생 및 야구부 선수의 다수는 일본인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의미심장한 한국어 교가를 부른다. 이 학교는 1947년 재일 조선인들이 세운 학교로 오랜 동안 정식 학교 인가를 받지 못했다. 결승 진출 소식에 뭉클하다. '뉴라이트'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쿨한 자칭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도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폄훼할 것이다. 교토국제고 필 우승!"
조 대표가 대중적 감성이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을 하는 것은 드물긴 해도 없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특히 "‘뉴라이트'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쿨한 자칭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도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폄훼할 것"이라는 말이 그렇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누구를, 혹은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을 염두에 두고 뜬금없이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를 비난하는 걸까.
자본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이 발언은 매우 중요하다. 조국혁신당은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 300개 의석 가운데 12개를 차지하고 있는 원내 제3당이다. 조국혁신당은 그 당이 탄생한 과정 및 현재 명칭만 봐도 알 수 있듯 '조국'이라는 개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의 사고방식과 캐릭터가 조국혁신당이라는 정당과 그 아래 모여 있는 12인의 국회의원의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면에서 조 대표의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 비난 발언은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발언의 의미는 그리 모호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20세기 정치사를 놓고 보면 오히려 너무도 명료하다. 사실 조 대표는 일각의 비난과 달리 '좌파'조차 아니다. 그의 정치적 포지션을 20세기 역사에서 찾자면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 어딘가, 즉 '전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까진 자유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세 가지의 정치사상이 세계를 지배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에 등장한 것은 자유주의다. 자유주의엔 공식적 생년월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출현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여러 도전에 응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정치사상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곡물법(corn law)' 폐지다. 곡물법이 제정된 것은 1815년, 유럽을 점령한 나폴레옹이 영국과 일전을 벌일 무렵이다. 전시 상황에서 자국 농민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대부분이 지주이던 영국 귀족들은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여하는 법을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영국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패권국이 된 후에도 곡물법은 폐지되지 않았다. 이는 산업혁명을 겪으며 경제적으로 도약하던 영국의 발목을 잡았다. 도시로 몰려드는 산업 노동자에게 더 저렴하고 많은 식량을 제공해야 하는데, 곡물법 때문에 수입 곡물의 가격이 턱없이 높게 유지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 힘을 기른 산업 자본가와 상인이 지주와 귀족을 이겼고, 곡물법은 1846년 폐지됐다.
공교롭게도 공산주의 역시 그 무렵 한 단계 도약한다. 1848년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공산주의 운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공산당 선언 이후 공산주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공산당 선언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본주의가 발전하지만 그 모순이 극에 달해 결국 몰락하고 말리라는, 이른바 '역사 유물론'의 관점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 혹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닌 뜻밖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19세기 당시 상황을 비슷한 눈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자본주의가 봉건적 구태와 압제를 타파했음을 인정한다. 자본가가 주도한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류의 생산력이 전에 없이 증진됐고,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거나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으로 인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국제주의'라는 의외의 접점을 하나 더 갖게 된다. 앞서 살펴본 곡물법 폐지의 함의를 곱씹어 보자. 외국에서 값싼 수입 곡물이 들어오면 자국의 농업 생산자가 그 전에 비해 불리해지는 것은 필연적 사실이다. 그러니 농민, 혹은 소작농을 거느린 지주 등 토착 세력은 국제 무역과 교역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반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국경이 점점 더 낮아지고 결국 사라지는 세상을 지향한다.
공산주의 역시 국제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앞서 인용한 공산당 선언의 문장 가운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에서 '만국'이라는 말은 그저 수사법으로써 쓰인 표현이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의 힘이 일개 국가를 넘어서고 있다고 봤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 혁명 역시 일개 국가 단위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벌어져야 할 공산주의 운동을 총괄하는 최상위 조직의 이름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19년 3월 소련 공산당의 혁명가들이 설립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1943년 코민테른(Comintern)으로 대체됐는데, 이 또한 아주 분명하게 '국가 이후의 세계'를 바라봤다. 무장 군대를 포함한 모든 가능한 수단으로, 완전한 국가 소멸이라는 과도적 단계로 이행함으로써, 전 세계 자산계급의 전복 및 세계적 소비에트 공화국의 건립이라는 목표를 추구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조 대표의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 비난 발언은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발언의 의미는 그리 모호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20세기 정치사를 놓고 보면 오히려 너무도 명료하다. 사실 조 대표는 일각의 비난과 달리 '좌파'조차 아니다. 그의 정치적 포지션을 20세기 역사에서 찾자면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 어딘가, 즉 '전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까진 자유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세 가지의 정치사상이 세계를 지배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에 등장한 것은 자유주의다. 자유주의엔 공식적 생년월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출현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여러 도전에 응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정치사상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곡물법(corn law)' 폐지다. 곡물법이 제정된 것은 1815년, 유럽을 점령한 나폴레옹이 영국과 일전을 벌일 무렵이다. 전시 상황에서 자국 농민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대부분이 지주이던 영국 귀족들은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여하는 법을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영국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패권국이 된 후에도 곡물법은 폐지되지 않았다. 이는 산업혁명을 겪으며 경제적으로 도약하던 영국의 발목을 잡았다. 도시로 몰려드는 산업 노동자에게 더 저렴하고 많은 식량을 제공해야 하는데, 곡물법 때문에 수입 곡물의 가격이 턱없이 높게 유지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 힘을 기른 산업 자본가와 상인이 지주와 귀족을 이겼고, 곡물법은 1846년 폐지됐다.
공교롭게도 공산주의 역시 그 무렵 한 단계 도약한다. 1848년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공산주의 운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공산당 선언 이후 공산주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공산당 선언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본주의가 발전하지만 그 모순이 극에 달해 결국 몰락하고 말리라는, 이른바 '역사 유물론'의 관점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 혹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닌 뜻밖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19세기 당시 상황을 비슷한 눈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자본주의가 봉건적 구태와 압제를 타파했음을 인정한다. 자본가가 주도한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류의 생산력이 전에 없이 증진됐고,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거나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으로 인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국제주의'라는 의외의 접점을 하나 더 갖게 된다. 앞서 살펴본 곡물법 폐지의 함의를 곱씹어 보자. 외국에서 값싼 수입 곡물이 들어오면 자국의 농업 생산자가 그 전에 비해 불리해지는 것은 필연적 사실이다. 그러니 농민, 혹은 소작농을 거느린 지주 등 토착 세력은 국제 무역과 교역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반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국경이 점점 더 낮아지고 결국 사라지는 세상을 지향한다.
공산주의 역시 국제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앞서 인용한 공산당 선언의 문장 가운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에서 '만국'이라는 말은 그저 수사법으로써 쓰인 표현이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의 힘이 일개 국가를 넘어서고 있다고 봤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 혁명 역시 일개 국가 단위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벌어져야 할 공산주의 운동을 총괄하는 최상위 조직의 이름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19년 3월 소련 공산당의 혁명가들이 설립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1943년 코민테른(Comintern)으로 대체됐는데, 이 또한 아주 분명하게 '국가 이후의 세계'를 바라봤다. 무장 군대를 포함한 모든 가능한 수단으로, 완전한 국가 소멸이라는 과도적 단계로 이행함으로써, 전 세계 자산계급의 전복 및 세계적 소비에트 공화국의 건립이라는 목표를 추구했으니 말이다.
‘우리' vs '反 우리'의 파시즘식 이분법
정리하자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산업혁명 이후 출현한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력을 인정한다. 자본주의를 더 키우기 위해서든, 맞서 싸우기 위해서든 국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관점도 공유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이렇듯 서구에서 만들어낸 정치 이념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세계적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1927~2008)은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이 오묘한 데칼코마니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등은 이념 분쟁이었으며, 판이한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다 근대적‧세속적이며 자유, 평등, 물질적 복리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해 분명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서구의 민주주의자는 소련의 공산주의자와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의 민주주의자가 러시아 정교를 신봉하는 민족주의자와 생산적 대화를 나누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20세기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만의 시대가 아니었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전체주의가 있었다. 전체주의는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여러모로 달랐다. 전체주의는 혈통으로 맺어진 민족 공동체라는 전근대적 가치에 기반을 뒀고, 세속적 자유 대신 지도자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요했다. 따라서 평등과 물질적 복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다. 개인보다 더 큰 가치, 요컨대 국가‧민족의 영광을 강조하며, 구체적 개인에겐 무한한 희생과 봉사를 강요했을 따름이다.
전체주의‧파시즘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역사학자인 로버트 O. 팩스턴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과학대학 명예교수의 저서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에 따르면 파시즘은 승리자가 되기 위한 진화론적 투쟁에서 선택된 민족들이 승리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보편적 가치도 거부한다. 정치 이념이라기보다 정치 운동에 가까우며, 파시스트의 기본적 태도는 집단적 참여 의식과 흥분을 고취시킬 수 있다면 이념‧강령 따위는 상관없다고 여긴다.
공동체가 개인에 앞서며, 개인의 권리 및 법적 절차를 존중하기보다는 민족의 운명을 먼저 생각한다. 그렇기에 파시즘은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달리 태생적으로 반(反) 국제주의적 성격을 나타낸다. '우리 핏줄', '우리 민족', 그리고 '우리를 괴롭히는 저 나쁜 놈들'로 이루어진 세계관이 파시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파시즘은 자기 민족의 부흥을 위한 비법을 지키기 위해 배타적 행태를 보였고, 그렇기에 '파시즘 국제 조직'의 성립은 불가능했다.
군사독재 시절이나 쓰던 말이 버젓이…
이를 토대로 조 대표가 내놓은 문제의 발언을 다시 한번 보자.
"‘뉴라이트'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쿨한 자칭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도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폄훼할 것이다."
이 문장의 취지는 분명하다. '그들'은 이해 못하는 '우리'의 감정을 강조함으로써, 두 집단 간 선을 긋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이다. 얼핏 생각하면 일본일 것 같지만 잘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조 대표는 '뉴라이트'와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를 지목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흥분‧열광을 등에 업고, 자신과 정치적 지향과 색채가 다른 누군가를 향해,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전형적인 파시즘의 언어다.
그러므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좌파가 아니다. 그의 정치적 포지션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그것도 '매우 오른쪽'이다. 보편적 기준을 놓고 보자면 분명히 그렇다. 조 대표는 극우다. 민족주의적 적개심을 선동하며 본인 스스로도 그에 사로잡혀 있는 극우 정치인이다.
2024년 늦여름, 조 대표는 그런 사람이 돼 있다. 자신이 친일파라 몰아세우고 있는 현 정권에 대한 증오를 넘어, 심지어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을 향해서까지, 뜬금없는 적개심을 표출하고야 마는 사람. 조 대표 스스로나 그의 지지자들로서는 납득하기 싫겠지만 '글로벌 스탠더드'가 그렇다. 조 대표 식으로 정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을 세상은 "극우"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좌파, 모든 공산주의자가 국가‧민족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공산주의 운동의 전개 과정은 민족주의적 열정을 흡수하고, 민족주의적 대중 감정과 타협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국가와 민족의 틀을 벗어난 보편적 인류 해방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조국혁신당, 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내 강경파가 보여주고 있는 늦여름의 민족주의 선동엔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 윤석열 정부를 몰아세우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인지, 아니면 한미일 군사협력을 방해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야권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상식적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지 오래다.
8월 28일 조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신친일파 척결! 뉴라이트 거부! 릴레이'라는 제목의 게시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일진회(一進會)' 회원 같은 자들이 정부와 학계의 요직에 임명되고 있다"며 "조국혁신당은 야당·시민사회와 함께 친일 밀정들을 하나하나 색출해 국민께 고하고 친일 밀정 정권 축출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대체 이건 무슨 말인가. 밀정, 색출, 축출 등, 군사독재 시절에나 쓰였을 법한 어휘들이 버젓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 8월 20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 정책위의장으로서 '친일 반민족 행위 찬양자 공직 진출 금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을 찬양 고무하면 감옥에 보내겠다는 국가보안법과 다를 게 없는 발상이다. 20세기의 대한민국이 반공 파시즘에 시달렸다면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반일 파시즘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에 울려 퍼졌다고 뿌듯해하면서 반일 선동을 해대는 조 대표에게 묻고 싶다. 그러한 반일 선동이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더 좋은 나라가 되는 데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청춘의 불꽃을 태우며 꿈의 구장에서 시합을 한 일본 학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한국은 이미 인구의 5%가 외국인인 나라다. 사실상 다인종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대중 선동을 자신들의 정치적 주무기로 삼는 세력이 원내 제1당과 제3당을 이루고 있으며, 의석수는 개헌선에 육박한다. 실로 섬뜩한 일이다. 전체주의 세력의 준동을 억누를 수 있는 진정한 보수, 참된 진보 정치의 부활을 고대한다.
대체 이건 무슨 말인가. 밀정, 색출, 축출 등, 군사독재 시절에나 쓰였을 법한 어휘들이 버젓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 8월 20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 정책위의장으로서 '친일 반민족 행위 찬양자 공직 진출 금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을 찬양 고무하면 감옥에 보내겠다는 국가보안법과 다를 게 없는 발상이다. 20세기의 대한민국이 반공 파시즘에 시달렸다면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반일 파시즘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에 울려 퍼졌다고 뿌듯해하면서 반일 선동을 해대는 조 대표에게 묻고 싶다. 그러한 반일 선동이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더 좋은 나라가 되는 데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청춘의 불꽃을 태우며 꿈의 구장에서 시합을 한 일본 학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한국은 이미 인구의 5%가 외국인인 나라다. 사실상 다인종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대중 선동을 자신들의 정치적 주무기로 삼는 세력이 원내 제1당과 제3당을 이루고 있으며, 의석수는 개헌선에 육박한다. 실로 섬뜩한 일이다. 전체주의 세력의 준동을 억누를 수 있는 진정한 보수, 참된 진보 정치의 부활을 고대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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