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의 이름으로 죽여라”...女선생님 살해 시도한 어린 무슬림 남학생의 사연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9. 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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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32] 영화 ‘소년 아메드’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신은 위대하시다!”

소년(이디르 벤아디)은 그렇게 외치고는 여교사(메리엄 아카디우)를 칼로 찌르려 했다. 하지만 아직 완력이 부족했던 탓에 교사는 그의 공격을 피했다. 어린 벨기에 소년은 주변에 충격을 남긴 채 소년원에 입소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칫솔을 갈면서 살해 도구 제작에 집착했다. 소년원의 외부 프로그램에서 잠시 틈이 났을 때, 소년은 다시 교사에게 달려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소년은 이처럼 교사 살해에 매달리게 됐는가.

아메드(오른쪽)는 자신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주며 난독증까지 극복하게 도와준 이네스(왼쪽)를 살해하려 한다. [영화사 진진]
선생 때문에 이슬람교가 사라질 것이라 우려하는 소년
다르덴 형제의 ‘소년 아메드’(2019)는 맹목적인 신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배경은 인구의 7%가 무슬림인 벨기에다. 이곳에서 아메드를 포함한 이슬람교도는 자기들끼리 모여 아랍어를 익히며 이슬람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한다.

특히, 아메드는 식료품점에서 일하며 이슬람교리를 가르치는 이맘(오스만 모먼)이라는 남자를 추종한다. 그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기를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준 선생 이네스에게 적개심을 품게 된다.

이네스가 아랍어를 노래로 쉽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아랍어는 쿠란으로 배워야 한다고 믿는 아메드는 이네스가 배교자라고 생각한다.

“예언자의 신성한 언어를 노래로 배우는 건 배교다” 아메드는 그렇게 믿었기에 교사 이네스를 살해하려 한다. [영화사 진진]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이맘조차도 살해를 지시한 건 아니었다. 이맘은 “알라의 이름으로 너를 적대시하는 자들과 싸워 그들을 죽이라”고 가르쳤지만, ‘죽이라’는 건 과격한 표현이었을 뿐이다. 아메드가 그처럼 광폭한 일을 벌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신념의 속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린 시절부터 특정 사상과 종교에 매달린 사람이 훨씬 더 광적으로 파고들기 쉽다는 것이다. 이맘은 아메드를 책망하며 “모스크가 폐쇄되고 나도 벨기에에서 추방되면 좋겠냐”고 묻지만, 이는 무책임한 말이다. 어린 소년의 영혼에 자신의 가르침이 어떤 식으로 가닿을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아메드는 1년 전만 해도 다른 친구들처럼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노출된 뒤 그는 급속도로 물든다. [영화사 진진]
영화는 아메드의 순수한 영혼이 아직 남아 있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소년원 프로그램으로 농장 일을 도우러 간 아메드의 표정을 통해서다. 차갑고 쌀쌀맞은 표정을 유지하려 했던 아메드는 자신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또래 소녀를 보며 순간 미소짓게 된다. 물론, 이성에 마음이 열린 자기 모습을 곧 반성하고, 더 강한 여성혐오를 드러내긴 하지만 말이다.
소녀가 자신에게 접근하자, 아메드는 순간적으로 무장 해제 되기도 한다. [영화사 진진]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단락) 추락한 소년을 구하러 온 건…
반성할 줄 모르던 아메드는 소년원에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여교사 이네스의 집을 향해 달려간다. 신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다. 교사의 방으로 바로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한 그는 벽을 타고 올라간다. 그러다 뚝 떨어져서 머리를 다치고, 오랜 시간 일어나지 못한다.

아마 하반신이 마비됐을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아메드를 구하러 온 건 신이 아니라 교사 이네스였다. 아메드는 처음으로 사과한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소년원에서 난폭하게 행동하다가 제지당하는 아메드 [영화사 진진]
‘우주의 전부’로 믿었던 것이 무너지는 경험은 축복일 수도 있다
관객은 소년의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메드가 온전히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을 고백한 것이라고 쳤을 때, 이건 아메드가 구원받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 있다. 신의 명령이라고 믿었던 것을 수행하던 도중에 아메드는 목숨을 잃을 상황에 빠졌다. 신은 아메드가 다치도록 내버려뒀을 뿐 아니라, 그가 치료받을 수 있게 돕지 않았다. 외려 아메드가 배교자라고 비난했던 이네스만이 소년을 도우러 왔다. 그제서야 그는 남을 죽이려고 했던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벨기에 거장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 자주 드러나는 구조다. 형제 감독은 한 사람이 우주의 전부라고 여겼던 것이 무너지는 사건은 그에겐 외려 축복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자전거 탄 소년’(씨네프레소 60회 참고)에서 두 사람은 자기를 방치하는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아이를 등장시킨다. 소년은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여성을 계속 외면하며 일탈을 일삼는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오롯이 인정할 수 있게 됐을 때 모든 것을 내던지고 여성에게 달려간다.

다르덴 형제는 하나의 가능성이 완전히 끊어졌을 때, 사람은 외려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영혼이 파멸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소중했던 사람이 떠나거나 몸을 상하는 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단 것이다. 상실을 통해 이 세계와 보다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말이다.

‘소년 아메드’ 포스터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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