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으로 굴러온 복덩이' 이시영이 말하는 '기회'의 소중함
올 시즌 초 최지묵이 장기부상으로 아웃되면서 급하게 서울의 이시영을 임대로 수혈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에게 기대를 건 수원팬들은 많지 않았다. 성남을 떠나 서울로 이적했지만 좀처럼 기회를 받지 못했고, 그나마 받은 기회도 자신의 실수로 날렸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 이시영에게 있어 슈퍼매치 라이벌 클럽인 수원 삼성으로의 이적은 그에겐 도박 또는 기회였다. 비록 지금은 K리그2에 있지만, 그가 기회를 받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이시영은 기회를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018년 프로에 입단한 이후 가장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임했을 정도로 그에게 수원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리고 수원팬들은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그의 활약에 환호를 보냈다. 감독이 염기훈 감독에서 변성환 감독으로 바뀌었음에도 수원의 오른쪽 풀백은 바로 이시영이었다.
11경기 무패행진을 펼칠 때에도 이시영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2020년 자신이 임대로 있었던 서울 이랜드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변성환 감독 부임 이후 첫 패배를 기록했을 떄에도 이시영은 라커룸에서 분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수원에 진심이 되어갔고, 수원팬들은 그에게 많은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지난달 31일 펼쳐진 충북청주전도 그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다. 포백 라인으로 나선 이시영에게 이날 전반전은 그야말로 최악 그 자체였다. 상대에게 위기를 허용했고, 전반에만 2골을 실점하며 하프타임을 맞이했다.
이시영은 "전반전은 우리가 바뀐 부분도 있었고,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세트피스 실점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신경을 많이 쓰고 훈련도 많이 했는데 거기서 실점하면서 분위기가 상대에게 많이 넘어갔고, 그 분위기를 빨리 추스르지 못하고 연속 실점하면서 좀 흔들렸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악몽과도 같았던 전반전을 회상했다.
멘탈붕괴에 빠질 수도 있었던 이시영을 다잡은 것은 바로 변성환 감독의 하프타임 불호령이었다. 이날 변 감독은 부임 이후 선수들에게 가장 큰 화를 냈다. 변성환 감독이 계획했던 도전적인 플레이를 하지않고, 위축된 플레이를 보이는 선수들의 자세와 세트피스 등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에 대한 큰 호통이 수원의 라커룸을 울렸다. 이시영은 당시 라커룸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감독님께서 우리 경기력에 화가 많이 나셨어요. 따끔하게 혼날 것은 혼났고, 혼난 후에 감독님이 정신 집중해서 후반전 뒤집자고, 10골을 먹어도 되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축구를 하자 하셔서 후반전에 나가서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변성환 감독의 헤어드라이어가 선수들에게 자극이 된 것일까. 수원은 후반 초반부터 충북청주의 골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점은 이시영이었다. 본래 오른쪽 풀백이지만 변성환 감독의 주문에 따라 중앙까지 들어와 공격진에게 패스를 찔러줄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였다.
이시영은 이에 대해 "전술적으로 움직임은 팀에서 원하는 부분이고, 감독님께서 게임 플랜을 짜셨을 때 원하시는 부분을 참고해서 응용해서 한다. 유기적으로 움직일 때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공간을 찾아 들어가길 바라셨기 때문에 그렇게 플레이를 했다."리고 전적으로 팀이 주문하는 플레이를 실행했다고 설명했다.
팀을 위해 이시영은 자신의 포지션에서 노력했고 후반 20분 그 결실을 보았다. 이시영의 패스를 받은 뮬리치가 원터치 후 강력한 슈팅을 날렸고, 공은 충북청주의 그물을 출렁였다. 2021년 성남 시절 이후 오랜만에 합작해낸 이시영-뮬리치의 콤비 플레이었다.
이시영은 "뮬리치와는 인연이 긴 것 같다. 성남 시절에는 매년 어시스트를 해준 것 같은데, 올해는 뮬리치가 계속 자기한테 볼을 달라고 하는데, 플레이가 잘 나오지가 않아 뮬리치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잘 준비해가지고 좋은 득점 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라고 오랜만에 만들어낸 합작품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이시영의 킬패스 하나는 잠들었던 수원의 멘탈리티를 깨우는 기폭제가 되었다. 후반 39분, 뮬리치의 패스를 받은 마일랏이 감각적인 밀어넣기로 동점골을 터뜨리며 2대2를 만들었고, 수원은 2연패의 위기에서 승점 1점을 따내며 지난 서울 이랜드전 패배로 쳐진 분위기를 반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극적인 무승부에도 이시영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승리를 할 수 있었음에도 승리를 하지 못한 분함과 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이시영은 "중요한 경기였고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에 꼭 이겨야 되는 경기였는데 승리하지 못해서 좀 많이 아쉽고 따라가는 경기를 하였지만, 앞으로는 미리 선제 득점을 해서 이겨야 될 경기는 꼭 이기고 와야 될 것 같다."라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경기 후에도 변성환 감독은 기뻐하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 라커룸에서 한참이나 선수단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했다. 상대팀인 충북청주의 선수들이 모두 퇴근을 하고 난 후에도 한참의 시간을 더 지나고 나서야 수원 선수단은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이시영은 "혼난 것은 아니고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감독님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했고, 우리들도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과 칭찬하는 부분도 있었다. 받아들여야 할 부분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간략히 설명했다.
경기가 끝난 이후에서도 변성환 감독은 '기회'를 강조했다. 감독이 기회를 주었을 때 선수들은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시영 역시 이에 대해 동의했다. 그는 "감독님도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에게 기회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고, 기회를 주고 쉽게 되는 건 없다 이런 식으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셨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2018년 성남에 입단한 이후 기회를 찾아 광주와 서울 이랜드, FC서울을 거쳐 수원 삼성까지 오게 된 이시영 역시 그 기회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사실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다. 나도 연차가 쌓이면서 이게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 알고, 또 그렇기 때문에 항상 후회없는 경기를 하기 위해 매주 정말 노력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감독님의 말씀에 공감하고 하루하루 아침을 시작할 때부터 오늘 하루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경기장에서 좀 더 간절하게 뛰고 있다."라고 자신이 찾아온 기회를 잡아나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다.
수원팬들은 매주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그에 대해 '쓰러질 것 같다'라는 농담 섞인 걱정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경기를 뛰는 것이 힘들기보다 즐겁다. 이시영은 "체력적인 문제는 특별히 느낄 건 아니다. 다 똑같은 조건에서 뛰는 것이고, 감독님이 원하시는 플레이 스타일이 있고 게임 플랜이 있기 때문에 그거에 맞춰서 또 열심히 뛰는 것 같다. 힘든 것보다는 재밌게 즐기고 더 발전하려고 하고 하다 보니까 이제 더 뛰게 되는 것 같다."라고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수원 삼성에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이시영, 이제 그에게 남은 목표는 K리그1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현재는 주춤한 상황이지만,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이시영과 선수들, 그리고 수원의 코칭 스태프들은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K리그1을 정말 가고 싶습니다. 몇 경기 남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매 경기 결승전이에요. 이제는 정말 승점을 놓치면 안 되고, 저희가 질 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왔을 때도 팬들에게 승격하겠다고 약속했었고, 감독님도 분명히 승격에 대해서 전하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꼭 승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몬스터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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