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악덕 직업소개소? [세상에 이런 법이]

최정규 2024. 9. 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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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투수 역할이 중요하다.

4년 넘게 일했다가 3년 치 임금을 떼인 이주노동자나 추운 겨울 불법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 가족은 '한국 정부가 악덕 직업소개소'라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를 제기하기도 했다.

돌봄 노동자로 불러놓고 갑자기 '가사관리사'로 둔갑시키고, 생계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임금도 안 주려는 꼼수를 부린다면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들어온 이주노동자에게 한국 정부는 '악덕 직업소개소'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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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우리가 자주 하고 듣는 말. 네, 그런 법은 많습니다. 변호사들이 민형사 사건 등 법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 자화상을 담아냅니다.
8월6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 시범 사업으로 필리핀 국적 이주노동자 100명이 입국했다. ⓒ연합뉴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투수 역할이 중요하다. 선발투수가 경기를 길게 끌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의 순간 등판해 마무리를 책임지는 구원투수도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에 지역 소멸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는 이주민을 구원투수로 등장시켰다. 일손이 필요한 곳마다 없는 비자도 만들어가며 이주노동자를 투입하고 있다.

서울시 또한 ‘탄생 응원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도입한다. 시범 사업으로 필리핀 국적 이주노동자 100명이 8월6일 입국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이에 발맞춰 유학생과 결혼이민자 부모까지 5000명에 대해 가사 돌봄 취업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과연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가 저출산·고령화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원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처음부터 심각한 파열음이 들린다. 한국과 필리핀 정부가 이번 시범 사업을 위해 체결한 업무협약서를 보면 이주노동자를 돌봄 노동자(Caregiver)로 표기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서울시는 ‘가사관리사’로 호칭한다. 고용노동부 운영 홈페이지(워크넷) 한국직업사전에는 가사관리사 직무를 ‘가정을 방문하여 청소, 세탁, 요리 등의 가사 업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표준직업 분류상 ‘[9511]가사도우미’로 분류한다.

업무협약서에 ‘동거가족을 위해 부수적이며 가벼운(incidental and light) 가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지만, 주 업무가 돌봄 노동자라면 ‘가사관리사’라는 명칭이 아닌 ‘육아 도우미’라고 붙이는 것이 맞다. 명칭부터 엇박자이다 보니 시작 전부터 업무 범위에 대한 갈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국에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돌봄 자격증까지 받고 들어온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이런 호소도 들린다. “우리는 가정부가 아닌 돌봄 도우미입니다!”

서울시는 아직도 ‘100만원 가사관리사’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이를 반대하는 고용노동부와 법무부에 계속 읍소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생활 안정뿐만 아니라 그 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특히 돌봄 노동의 대상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한국 정부, 악덕 직업소개소 되려 하나

출신 국가의 임금수준이 낮으므로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 또한 상식에 맞지 않는다. 출신 국가는 임금수준이 낮은 만큼 의식주에 드는 비용도 낮다. 한국의 2024년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는 71만3102원이다. 생계급여는 선정 기준이 최저 보장 수준인데 이 수준의 임금을 받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노동자가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의 품질 하락은 바로 우리 아이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경기도 포천 한 농장의 비닐하우스 옆에 마련된 기숙사에서 이주노동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고용허가제도는 2004년 8월17일 시행되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한국 정부 소개로 일면식도 없는 사장과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다 임금 체불, 산업재해 등 피해를 보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4년 넘게 일했다가 3년 치 임금을 떼인 이주노동자나 추운 겨울 불법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 가족은 ‘한국 정부가 악덕 직업소개소’라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를 제기하기도 했다.

필요해서 구원투수로 데려왔으면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 돌봄 노동자로 불러놓고 갑자기 ‘가사관리사’로 둔갑시키고, 생계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임금도 안 주려는 꼼수를 부린다면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들어온 이주노동자에게 한국 정부는 ‘악덕 직업소개소’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악덕 직업소개소의 소개를 받고 들어올 이주노동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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