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군인·연인 공통점은 女, 뒤질 팔자였다고?”....딥페이크라는 무서운 성범죄 [방영덕의 디테일]
돌을 던진 자가 웃으며 답합니다. “아니지, 나는 그냥 내 길을 가고 있었고 그 길 위에 너희들이 있었던 거지. 그러니 남탓하지마, 뒤질 팔자였던 거니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나온 대사의 일부입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돌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주인공들을 보며 기자는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로 인한 피해자들이 떠올랐습니다.
‘딥페이크(Deepfake)’는 인공지능 AI의 심층 학습을 뜻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과 ‘가짜(fake)’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실제 영상이나 사진들을 서로 짜깁기해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를 의미하죠.
며칠 전, 진보당이 경찰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처음에 모르는 사람에게 텔레그램으로 연락이 왔다. 갑자기 제 개인정보를 보내더니 제 얼굴과 합성한 사진을 보내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화방에 들어가 정보를 모으고 방을 나왔는데 또 다른 개인정보와 사진을 다시 보내왔다. 다시 연락이 올까봐 무서웠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럼에도 그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같은 경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다면 누구에게나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하기 위해서라고 했죠. 특히 “제발 혼자 있지 마라. 본인의 탓이 아니다”라는 말에 가슴이 ‘쿵’,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전 여자친구, 대학 동기는 물론 여중, 여고생부터 여군, 선생님까지 성착취물 대상으로 삼는 딥페이크 공포가 퍼지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누구라도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 아찔하고요. 그 기술에 익숙한 10대가 딥페이크 범죄 피의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큰 충격입니다.
신고 접수된 건은 대부분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여성의 얼굴에 나체 사진을 합성하며 가짜로 만든 성관계 영상까지 허위 영상물을 생성하고 유포하는 경우입니다.
최근 3년간 전국 경찰에 신고된 딥페이크 성착취 범죄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는데, 올해 들어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물은 텔레그램과 같은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경찰은 익명성이 상당 부분 보장되는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온상이라고 보고 수사를 확대 중입니다. 서울경찰청은 22만명 가량이 참여 중인 한 텔레그램 채널에서 성범죄물이 확산한 혐의를 수사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지난달 공개한 ‘연도별 성적 허위영상물 시정요구 현황’을 보면 올해 6월까지 총 6071건의 시정요구를 결정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결정한 시정요구 건수가 지난해 전체 시정요구 건수(7187건)의 84%에 달합니다.
방심위는 디지털성범죄 피해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심의를 통해 사업자들에게 음란물을 규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시정요구 결정을 해왔습니다.
방심위의 성적 허위영상물 시정요구는 2021년 1913건, 2022년 3574건 등 매년 두 배 가까이 급증했는데요. 이같은 추세로 볼 때 올해 전체 성적 허위영상물 시정요구는 1만 건을 넘길 것으로 전망됩니다.
초등학교 동창생, 전 여자친구, 친구의 여자친구는 물론 학교 선생님까지.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은 주변의 ‘아는 사람’을 주로 노리는 모습입니다.
최근 서울대, 인하대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만들어 유포한 대화방 운영자들이 검거됐는데요.
이들은 이른바 ‘겹지인방’이란 이름으로 참가자들이 서로 같이 아는 특정 여성의 개인 정보를 공유하고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해 유포했습니다.
아예 ‘지인 능욕방’ ‘지인 박제방’ 도 있습니다. 이런 대화방에서는 서로의 지인 딥페이크 제작물을 맞교환하며 2차 유포가 이뤄집니다.
아는 여성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해 음란물에 쓸 얼굴 사진을 받아내자거나 불법촬영한 사진을 공유하자는 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대화방 참여자들은 성착취물을 올릴 때 피해자의 이름, 직업 등을 다 공개합니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실제로 불법촬영물에 찍힌 것이나 다름없는 고통을 겪습니다. 직장생활과 학교생활이 어렵게 되고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원치 않는 연락을 받으며 협박을 당합니다.
왜 지인을 노렸냐는 질문에 딥페이크 성범죄자 가해자들은 “아는 사람이니까 더 실감나고 재밌다”고 말합니다.
이는 거꾸로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주게 됩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에 대해 더 분노하고, 주변 사람 모두를 의심케 하는 요소가 됩니다.
또 범죄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뿐 아니라 피의자 역시 용돈벌이 등을 이유로 한 10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입니다.
현재 SNS상에서는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이 만들어진 지역과 학교 명단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실제 이 학교 소속 학생들의 피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명단에 올라 있는 전국 중·고교와 대학교 이름만 수백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2023년 경찰에 신고된 허위영상물(딥페이크 범죄를 통해 편집된 합성음란물) 사건의 피해자 총 527명 중 59.8%(315명)는 10대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20대(32.1%), 30대(5.3%), 40대(1.1%) 등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큰 비중입니다.
허위영상물 피해 미성년자는 2021년 53명에서 2022년 81명, 2023년 181명으로 2년 만에 3.4배가 됐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딥페이크 제작이 쉬워지자 가해자 중 미성년자 비중도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허위영상물 범죄 혐의로 입건된 전체 피의자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65.4%, 2022년 61.2%에서 2023년 75.8%로 커졌습니다.
올해 1∼7월은 73.6%로 역시 높은 수준입니다. 20대 피의자는 36명(20.2%)으로 1020을 합하면 93.8%에 달합니다.
그러다보니 그와 같은 앱에서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 범죄란 인식조차 잘 못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처벌 수준도 약합니다.
현행 법률 중 딥페이크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성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14조의 2′가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 촬영 및 영상물을 음란하게 편집·합성하거나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입니다.
그런데 유포할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합니다. 혼자 만들어 혼자 보는 것은 처벌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더욱이 딥페이크 영상물을 소지하거나 구입하는 수요자에 대한 제재는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딥페이크 성착취의 피해자가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일 경우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아동·청소년성착취물의 제작·배포 등)가 적용됩니다. 문제 영상을 소지·시청하면 1년 이상의 징역, 제작·배포할 경우 최소 징역 3년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법정에선 범죄 전력과 연령, 반성 여부 등을 모두 고려해 형량을 정하다보니 실제 처벌 수준은 약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몇년 간 10대들 사이 일어나는 디지털 성범죄가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메타버스와 공간 동영상, 생성형 AI 등장으로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디지털 세계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 심층 분석한 책 ‘불안 세대’ 저자입니다.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메타와 애플이 사용자에게 다른 사람은 상상만 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세계라도 돌아다니게 해주는 헤드셋을 제공한다”며 “때문에 불가능한 몸매를 가진 ‘완벽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3차원 포르노는 훨씬 강력한 미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10대들의 일상에 깊게 파고든 디지털 구덩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덫이 되고 맙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결혼할 여친이 男 57명과 성관계, 별점 매긴 ‘X파일’에 남친 경악 - 매일경제
- “어르신, 운전면허 반납하면 60만원 드려요”...전국서 가장 많이 주는 곳 어디? - 매일경제
- 혼자 강에 간 3세 손자 숨져…할아버지는 휴대폰 SNS에 푹 빠져 몰랐다 - 매일경제
- “시원하게 헐벗겠다”…‘파격 노출’ 산다라박, 워터밤 끝나자 한 일 - 매일경제
- “옷 다 벗으면 아이폰 줄게”…나이트클럽 ‘옷 벗기 대회’에 러시아 발칵 - 매일경제
- “저다운 배드민턴 보여주겠다”…고향서 환대받은 안세영, ‘협회 언급’ 없었다 - 매일경제
- “사람도 車도 순식간에”…서울서 또 ‘도로 위 날벼락’ 싱크홀 발생 - 매일경제
- “축의금 넣어야 식권 발급”…결혼식장 키오스크에 ‘하객=돈 vs 편리하다’ - 매일경제
- ‘무기한 단식 투쟁’ 임현택 의협회장, 6일만에 중단…“의식 저하로 위험해져” - 매일경제
- ‘성추행 혐의’ 피겨 이해인,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출전 어려워졌다…3년 자격 정지